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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Mar 24. 2022

익명성과 책임감, 그리고 트롤

트롤의 인문학

 리그 오브 레전드, 일명 롤(LOL)이라고도 불리는 게임은 최근 몇 년간 세계 최고의 게임들 중 하나였습니다. E-sports가 하나의 산업이 된 이래로 수많은 프로를 배출한 게임들 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위치에 올라와 있죠. 특히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하는 종목이라 더욱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롤계의 전설이 있죠. 


 20여 년 전, 스타크래프트가 처음으로 E-sports의 문을 열던 당시만 해도 그건 그냥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때도 세계 대회도 있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랭킹 1위를 하던 시절이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그냥 게임일 뿐이었죠. 그러던 스타계를 뒤흔든, 말 그대로 전설이 된 인물이 있습니다. 한 때 '스타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Slayers_Boxer'라는 닉네임을 쓰던 임요환이 그 주인공입니다.


 깔끔한 외모, 그리고 기상천외한 전략을 동반한 실력. 아직도 대학교 도서관에서 교내신문에 '임요환이 파이어뱃 한기로 몇십 킬을 올렸다'라는 기사가 실렸던 걸 본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E-sports가 생겨난 건 어느 한 명 만의 노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 임요환의 지분이 높다는 것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롤에도 살아있는 레전드가 있습니다. '롤은 몰라도 페이커는 안다'는 말이 있죠. 'FAKER' 이상혁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역대 우승 전적, 인성, 행동, 심지어는 원팀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점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선수입니다. 27살이라는 게임계에서는 노장(?)에 속하는 나이지만 이번 시즌 소속팀의 스프링 리그 전승을 이끌며 여전히 새롭게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게 서론을 가져온 이유가 있습니다. 


 며칠 전 리그 오브 레전드 개발자 블로그에 '드디어' 트롤 관련 제재 강화에 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아무리 리폿(신고)을 하여도 그것이 제재 대상으로 반영되지 않았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해오던 클린 유저에 대한 보상 강화와 더불어 신고를 제재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서로 부모의 안부를 묻기로 유명한 롤에서 갑자기 이렇게 트롤 행위 관련한 강경책을 내놓게 된 것은 위에 언급한 '페이커'선수의 영향이 큽니다. 평소 행동과 언행에 있어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페이커 선수가 최근 솔로 랭크 방송 도중에 트롤러를 만나고, 솔로 랭크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는 강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원래 롤 자체가 워낙 트롤이 많은 게임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페이커'를 타깃으로 트롤을 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음에도 무려 10년 가까이 말을 아끼던 페이커의 반응에 롤계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트롤 대상자였던 중국 프로게이머는 이례적으로 소속팀의 징계와 함께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이번에는 게임사인 라이엇 조차도 입장을 밝힌 셈입니다. 






 저는 평소 인문학 이야기를 하며 트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인문학에서 늘 이야기하는 타인에 대한 관찰에는 트롤도 그 범위에 들어가 있습니다. 트롤들은 왜 트롤을 하는 걸까요?



트롤은 관심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라이엇에서는 그동안 트롤을 방치했던 이유 중에 하나로 트롤과 실력 미달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일부러 하는 트롤인지 아니면 그저 실력이 부족한 것인지 판별하려면 직접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AI를 통해서 자동으로 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죠. 이러한 변명은 모든 종류의 AOS 게임에서 다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트롤러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제가 분석한 '트롤'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행동이 여러 명의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반응을 얻게 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거나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방해하거나 난장판을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특히 현실 세계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경우에는 그것이 자신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하루만 보고 다시 안보는 사람들이 아니면 그렇게 하기 힘들죠. 


 롤처럼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에는 사회성을 담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아주 잘하는 사람은 굳이 트롤을 해서 주의를 끌 필요가 없죠. 보통은 입으로는 다른 이유를 주워다 섬기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력으로 다 찍어 누를 수 있다면 굳이 트롤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10명이서 하는 게임이지만 트롤 한 명이면 9명이 시간과 기분을 전부 소모합니다. 혼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거나 영향을 줘본 적 없는 사람일수록 트롤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본인 스스로는 잘 모르는 겁니다. 본인이 지금 주변 사람들에게 정확히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말이죠.


 두 번째는 일탈의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에 쓴 글 중에 '오픈월드'를 다룬 글이 있었는데요. 그때 트롤에 대해서 언급할지 말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우리가 오픈월드를 가면 터부시 되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듯이, 익명성에 가린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는 실제 친구들한테 할 수 없는 터부시 되는 행동들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반대로 하는 것처럼 말이죠. 어린아이의 그런 행동은 부모에 의해서 현실에서 제지당했겠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그런 건 없으니까요. 위에 나온 것처럼 리폿은 생각보다 의미가 없었습니다.


 세 번째는... 좀 답답한 케이스인데 본인이 트롤인 줄 모르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 양식이나 생각에 일반적인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죠. 이런 사람의 경우에는 온라인이라서, 또는 익명성에 기대서 나타나는 행동이 아니라 일상과 연결선 상에서 나타납니다. 어떻게 봤을 때는 이 경우가 가장 힘든 경우이기도 하죠. 





 

 이러한 트롤 성향은 비단 롤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류의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는 다 발생하는 성향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역시 익명에 가까운 관계로 대부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익명성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V', 본질은 가면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이 점점 현실과 웹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청소년기를 현실의 삶보다 인터넷과 SNS를 끼고 함께 살아온 세대가 20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익명성에 숨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트롤의 성향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는 '선거' 같은 것이다 하더라도 말이죠. 심지어는 유튜브나 스트리머들의 뒤에 숨어 그들을 스피커로 삼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전 글에서 언급한 알고리즘의 함정 문제로 연결이 되는 거죠. 


 트롤은 결국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의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그에 반하는 행동이 트롤이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너무 폭력적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면 개인의 행동이 충분히 강요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문제겠죠. 






 지금껏 트롤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해 왔지만 사실 트롤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이러한 철학과 '콘셉트'를 헷갈리면 안 됩니다. 외형이 그러한 것과 '논리의 기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르니까요. 자신의 행동을 일관성이 있게 설명할 논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트롤이다 하더라도 논리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시청 앞 1인 시위 같은 것이 있겠군요. 만일 그 시위가 진짜로 자신의 행위와 그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해당하지만요. 


 즉, 위에서 라이엇이 '트롤을 구분하기 어렵다'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트롤을 행동을 기반으로 딥러닝을 통해서 결정하기에는 인간의 행위에는 철학이 들어간다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행동은 전혀 다른 의도 하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선거 때마다 양쪽으로 흔들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우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매번 철학적 사고가 바뀌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닐 겁니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부분이나 다른 의도로 행동할 수 있는 거고, 누군가는 철학적 소신에 의해서 행동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걸 어느 쪽에 투표했다는 행위 단 하나로 모두 싸잡아버릴 수 없다는 것처럼요. 타인의 행동에서도 이유와 철학이 있는 행동과 욕망과 편의 또는 충동에 의한 행동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기저를 형성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삶 안에서 구축되어야 하는 '사고의 결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의 결실은 자신을 인지하고, 타인을 인지하고, 사회 전체의 구성을 인지하고 그리고 관찰하는 과정들을 통해서 구성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거죠. 고전만 달달 읽어서 좋은 문구에 감탄하는 인문학 교육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과 자신의 행동의 근원을 바라보는 관찰과 사고에 기반한 인문학 교육이 말이죠. 








 결국 이 사회가 잃어버린 교육 중 하나는 '공동체, 팀, 집단'이 유기적으로 구성되는 힘입니다. 우리는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오픈월드'처럼 느껴지는 가상공간에서 마음껏 일탈행동을 즐기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현실 세계에서도 그런 '자유처럼 보이는 것'을 꿈꾸는 것이죠.


나혼자 다른 동작을 해도 되는 건 자유 아닌가요?


 그래서 '대학교 조별과제'는 '밈'이 되어버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팀으로 일하게 되면 정말 미칠 것 같은 일들을 점점 많이 겪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직장에서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회형태를 구성하게 되는데 자신들의 세대와 맞지 않는다며 그러한 사회성을 거부합니다. 모든 직장은 좋은 형태의 사회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형태를 구성하죠. 그리고 돈은 필요하지만 그러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괴리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꾸 이러한 것을 사회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회도 '일정 부분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일 뿐, 같은 환경이나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모두 그들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도망쳐서 도달한 곳에 천국은 없는 것일 뿐이죠. 모든 권한은 책임을 수반합니다. 개인은 누구나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사회도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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