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과 철학의 부재
개인적으로 이 시대의 가장 망한 키워드 중 하나로 '평가'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살짝 언급한 적이 있는데, 당연히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평가'가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정답까진 아니어도 대부분 '공정함'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그럼 평가가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판단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거나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논리적인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아직도 징병제 국가입니다. 어떻게 봤을 때는 당연한 의무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면서도 다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20대의 신체적 전성기의 나이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는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운동선수 들이겠죠.
그래서 '군면제'에 관한 논란은 매년 있었고, 그와 함께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논란도 계속 있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인기 종목인 야구와 축구 같은 경우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 많이 있었죠. 축구에서는 모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며 군면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감쌌으나 실제로는 결국 군면제가 목적이었던 적도 있었고요. 야구 대표팀은 부상을 숨기고 면제를 위해 대표팀에 승선한다거나 선발과정에서의 잦은 잡음으로 항상 시달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공정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 다를 수 있고 기준 역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순으로 한다면 그건 인기투표와 다를 바가 없겠죠. 여기서 공정함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을 눈앞에 두고 새로이 등장한 종목이 있습니다. 아. 참고로 아시안 게임 금메달 역시 병역면제가 걸려있습니다. 시범 종목이었던 종목이 정식 종목이 된 케이스인데, 바로 E-sports가 그 주인공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League of Legend, 즉 롤이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드린 야구와 축구 대표팀이 항상 논란인 이유는 바로 '프로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롤 역시 프로팀이 존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스포츠 선수의 전성기는 짧고 그 시기에 2년은 너무나도 긴 시간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처음으로 E-sports에 길을 열던 시절, 초창기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공군 ACE라는 상무 팀을 이끌어 냈습니다. 물론 승부조작이라는 대형 사건과 함께 다시 언급되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스포츠보다도 더 짧은 프로게이머의 전성기가 문제였습니다.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은 은퇴 후 군입대라는 수순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입니다. 가장 최근 은퇴한 '칸' 선수의 경우에는 2021 시즌 LCK 2회 우승과 롤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27살의 나이가 되어 군 입대를 위해 은퇴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에이징 커브'가 없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실력이 있음에도 군대를 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부분 군대 이전에 실력과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군대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은 선수들의 멘털에도 많은 영향을 주니까요.
사실 E-sports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시범 종목으로 2018년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E-sports가 참가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시범 종목이었기에 군 면제 혜택은 없었죠. 그런 문제로 당시 선수 선발 과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시기상 스프링 - MSI - 서머로 이어지는 촉박한 리그 일정 가운데 시간을 내어야 했기 때문인데요.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이 있는 자리임에도 거절한 선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단지 명예뿐이고 지면 욕을 먹는 그 자리에 희생하면서 2018년도에도 참여했던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은메달을 땄다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2022년 아시안 게임은 정식 종목이 되면서 이번에는 모두가 국가대표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팬들 역시 자신이 응원하는 팀 또는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어 군면제를 받아오기를 바라고 있죠. 열매는 달콤하니까요.
이런 난리 속에서 선수 선발에 대한 문제는 당연하듯이 관심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누구를 뽑아도, 누구를 뽑지 않아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말 그대로 '0'에 수렴합니다. 그럼 결국 비난을 뚫고 선발을 해야 하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논리적이고 명확한 기준'과 '일관성'입니다.
'롤'은 게임이다 보니 생각보다 지표의 수치화가 쉽습니다. 물론 다른 스포츠도 수치화가 가능하지만 롤은 프로그램 자체에서 기록을 해줄 수 있기에 더욱 편리하게 지표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는 지표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E-sport가 스포츠인 것이기도 합니다. 임요환이 '역대 최강의 스타 게이머'가 아니었음에도 '역대 최고의 스타 게이머'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종목이었던 스타 크래프트는 그나마 수치와 업적만으로 비교가 가능했을지 몰라도 롤은 팀 게임입니다.
예전에는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관심사는 오로지 쇼트트랙뿐이었습니다. 그러다 혜성처럼 김연아 선수가 등장해서 피겨 스케이팅이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상화 선수 등 다른 종목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빛을 본 종목 중 하나가 바로 '컬링'입니다. '팀 킴'과 '영미'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컬링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동계 스포츠 종목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팀 후지사와'와의 경기도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내는 부분 중 하나였죠.
그런데 '팀 킴', '팀 후지사와'처럼 컬링은 한 개의 팀으로 대표를 뽑습니다. 각자 맡은 포지션이 있고 합이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이죠. 축구에도, 야구에도 포지션이 있는데 왜 컬링은 각 포지션별로 대표를 따로 뽑지 않는 걸까요? 개인 능력차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팀의 합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컬링도 프로리그가 존재했다면 포지션별로 뽑자고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시안 게임 라인업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롤'판의 시선은 시즌 '플레이오프'와 더불어 아시안 게임 선발에 쏠려있습니다. 아시안 게임 선발이 아닌 올프로팀 선발만 가지고도 갑론을박이 분분한 마당에 당연한 일이겠죠.
결국 '평가'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팀 순위로, 어떤 때는 개인 지표로, 어떤 때는 커리어로 평가한다면 논란을 더 키우는 상황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일관성이 있는 평가 지침이 나온다 하더라도 논란은 있겠지만요. 적어도 유동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비난과 소요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평가를 하는 사람'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사위원은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평가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심사위원이 같은 평가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각자 기준이 다르더라도 그 평가기준 역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심사위원이 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준을 명확하게 잡을 수 있는 심사위원진을 구성해야 합니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된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롤' 국가대표 선발을 화제로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러한 '평가'의 '일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국비 또는 지방비가 들어간 사업들은 선정과정에서 심사 및 평가를 거칩니다. 그럼 심사위원이 필요한데 일단 비용이 적은 사업은 정말 입맛대로 심사합니다. 들어오는 심사위원의 반 이상을 입맛에 맞게 채워 넣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또는 미리 정해놓은 사업을 뽑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액수가 큰 사업은 다릅니다. 공모의 경우에도 액수가 크면 심사 관련해서 나중에 감사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심사위원을 추첨제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추첨제는 또 추첨제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사에 필요한 심사위원이 6명이라면 심사위원단은 최소한 그 배수인 12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중에서 무작위로 뽑았을 때 선정이 가능하겠죠.
일단 전문 심사위원단을 12명 이상 뽑는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사가 그냥 뚝딱뚝딱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예전에 문화예술교육을 하던 시절에 '시민 심사위원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심사장에 앉혀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취지는 참 좋았으나, 그 자리에 뽑히신 분들이 그만큼 공부도 하고 나름 심사기준 같은 것도 명확하게 가지고 계셨으면 더 좋았겠죠. 대부분은 복잡한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서 그냥 별 말 못 하고 구경하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예전 브런치 첫 글에서도 밝혔지만, 전문가가 아닙니다. 사실 전문가의 기준도 모르겠습니다.
학위도 경력도 전부 중요한 요소긴 한데 그것이 꼭 전문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저의 경험에 의한 결론입니다. 저 역시 교육과 프로그램 개발을 10년 이상 몸담았지만 아직도 배우고 있을 뿐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무언가를 심사하려면 그만한 고민을 하고 기준을 정리하여 '일관성'을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 10년여 평가를 받거나 평가를 하는 자리에 가보면 그런 심사위원의 비중은 많아야 반 수도 되지 못합니다.
심사위원이 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나오는 경우도 왕왕 봤고, 심지어는 자기가 틀렸으면서도 화내면서 우기는 장면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심사 경력이 누적되어 계속 심사위원으로 들어오죠. 또는 전혀 맞지 않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심사위원으로 가 있는 경우도 많고요.
심사의 기준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실현 가능성'입니다.
위의 국가 예산 가운데 많은 부분은 나라장터를 통한 '입찰'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액수가 클수록 입찰은 심사를 거치게 되죠. 무조건 최저 입찰을 막기 위해서 입찰금액은 하한가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한가가 정해졌다기보다 그 이하의 액수는 써봤자 가점이 안 붙는 형태죠. 그렇다 보니 금액 이외에서 가점을 노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업도 실행 계획을 풀로 '직접' 짜 보면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견적이 보이는 거죠. 그럼 상대방이 들고 온 계획이 실행 가능한 계획인지 아니면 그냥 질러 본 것인지도 알 수 있죠. 적어도 심사위원은 그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입찰용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 중 하나가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제시하여 그에 대한 평가로 통과하는 일입니다. 일단 통과하면 그 뒤에 조정하겠다는 거죠.
사실 국가사업은 어쨌든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정되고 나면 진행 중에 사업자를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갑을이 뒤바뀌기도 하죠.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 계획을 못하겠다고 배 째고 드러누우면 수정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다던가... 그래서 그들이 내세우는 것이 공수표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역시 심사위원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한다고 하니까 믿어봐야죠'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따져보는 것이 심사위원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
'평가'는 우리의 삶에 아주 밀접한 기준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시험과 레벨링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평가들이 계속 실패한 키워드로 남아있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키워서 평가를 높이기보다 일확천금이나 노리고 투기에 몰두하는 그런 세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고 합니다. 춤추는 고래는 춤추라고 내버려 두고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냉정한 평가자는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무한 긍정의 칭찬꾼이 도움이 될까요? 우리에게 향상심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내일을 그저 운에 맡기고 살아가야 할 겁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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