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생각 없이 말하지 마세요.
한 때 커뮤니티에 떠돌던 '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는 별생각 없이 말한 건데 상대방이 화를 내서 당황스러워요'라고 말하자 듣고 있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생각 없이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내용이었죠.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서 많은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자주 보였습니다.
과연 그 사람은 왜 별생각 없이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많은 공감을 눌렀지만 과연 우리의 행동도 그렇게 되고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이 도는 커뮤니티들이야말로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별생각 없이 말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들입니다. 타인이 화를 내는 감정 소모와 내가 생각을 해가면서 말해야 하는 '피곤함'의 값에 대해서 계산을 해봤을 때, 우리는 보통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오프라인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더 많이 보겠지만 그건 '피곤한 일'이라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피곤한 일을 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필터링하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죠. 그게 바로 '익명성'에 기댄 인터넷이 되는 거고요.
그래서 거기서 트롤의 문제도 탄생하는 겁니다.
생각의 부재가 근원에 있다는 거죠.
인간은 대부분의 행동에 있어서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 꼭 들이마시는 것과 내쉬는 것을 생각해서 하지 않습니다. 걸어가려고 할 때, 팔과 다리에 직접적인 명령의 절차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들에 있어서 사람들은 '루틴'이라고 부르는 일정한 행동 틀을 마련해서 직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익숙하게 행동합니다.
여기에 이 루틴을 보조해주는 장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익숙하게 행동을 하다가도 뭔가 이상하거나 위험상황이 닥치면 몸이 알아서 반응합니다. 공이 날아올 때 눈을 감는다든지 손을 들어 몸을 가리는 행위가 생각을 통해서 벌어지진 않죠. 이렇게 우리는 생각이 없어도 행동이 가능한 루트가 몇 가지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오히려 루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루틴은 우리 생활에서 몇 % 나 될까요? 저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갈 때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아이들이 이러한 루틴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해야 하는 행동이 하루 중 얼마나 될까요? 관성에 의한 행동은 얼마나 될까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 자신들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결정하고 학원에 가고 싶다고 결정해서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인문학 교육을 갈 때면 아이들에게 늘 이런 이야기를 해줬죠.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서 결정하는 비율이 어려서 부모가 결정해줘야 하는 시기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고3이 될 때까지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결정권이 너무 적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20살이 되면 선택권이 생깁니다. 그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되면 얼마나 능숙한 선택의 삶을 살게 될까요? 그들의 자유가 인터넷에서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생각을 거세하고 책임이 없이 내뱉는 것에 익숙한 삶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사회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활용해 왔습니다. '도덕', '윤리'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죠. 어떠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일일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어렵다면 이것을 일정한 행동 패턴으로 만들어서 '루틴'의 일종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이나 웃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사회가 유지되어 왔어요.
그럼 이러한 '윤리'나 '예의범절'을 루틴의 일종으로 돌려서 막아왔던 사회는 왜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요? 그중 한 가지 원인은 '익명성'의 발생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익명성에 숨어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워낙 드문 일이라서 소설에나 나오는 주제였습니다. 얼굴을 감추고, 또는 신원을 감추고 정의로운 활동을 하는 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주제죠. 옆집 밥그릇 숫자도 알만큼 밀접한 사회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익명성과 자유로운 삶은 말 그대로 동경 그 자체였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설명드렸듯이 익명성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동하지만은 않습니다. 트롤의 근거이기도 하죠. 우리는 익명이라는 울타리에 숨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익명성은 사회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죠.
또 다른 원인은 얼마 전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경험의 감가상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의 시대는 변화가 매우 느렸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행동들이 루틴이 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그 행동을 대를 이어 전해줄 수 있을 만큼 사회의 변화가 느렸습니다. 그런데 사회의 변화 속도는 우리의 어릴 때 배웠던 예의범절에서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밥 먹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아이들이 식탁에서 핸드폰을 보는 사회를 수십 년 전에 예의범절을 만들어 놨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들에 맞춰서 예의범절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충분한 사회적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반발하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것이고, 우리가 흔히 아는 '윤리'가 통하지 않는 상황들이 왕왕 생기게 된 것이죠.
결국 이러한 괴리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유명한 말을 만들어내고, 꼰대가 전 세대적으로 쓰이는 아주 기이한 환경을 만들어냈습니다.
'과거에서 누적된 지혜'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 부정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것들은 더 이상 현명하거나 보편적 가치를 가지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예의범절은 시대에 맞게 발전하지 못한 꼰대의 전유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예의범절이나 관습은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관습적으로 내려온 행동의 근원에는 어떠한 사고와 이유가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행동만이 이어져 내려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그 행동도 수정되어 결국 알 수 없는 행위들만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그들은 정신보다 행위를 남긴 것일까요? 그들의 후손들이 정신을 이어받으면 그 정신에 맞게 생각해서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데, 후손들이 '그 피곤한 삶'을 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현시대의 행위는 현시대 사람들의 몫입니다. 아니 몫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빠른 시대의 변화는 피곤하더라도 직접 생각해서 행동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누리게 된 자유와 지식은 행동에 너무 많은 고민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과부하가 걸린 대부분은 '생각하는 삶'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미뤄둡니다.
그리고 타인과 연결된 삶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삶을 우선으로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와의 트러블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걸 무시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합니다. 익명성의 뒤에 숨어버리기도 하고 진보적 사고라는 이름을 방패로 내걸기도 합니다.
사회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지속성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가능성이라 생각하고 자유롭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소속감을 잃어버려서 벌거벗었다는 느낌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사회는 결국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자유와 책임은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사회에만 속해있는 것도 아니며 다양한 사회적 신분에 동시에 엮여있습니다.
아들이자 남편이고 아빠이면서 회사의 팀장이고 동네 아저씨이고 밴드의 보컬이고 협회의 임원이고 브런치의 작가이고... 그 외에도 너무도 많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인데 말이죠. 나이가 먹고 하나씩 사회적 관계가 늘어갈수록 개인의 자유가 줄어든다고 느끼는 것은 책임이 그것을 상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생각 없는 말'을 던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생각 없이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우리는 익명성의 뒤에서 다시 만나지 않을 누군가에게 생각 없는 말을 던질 겁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내가 피곤하거든요. 그리고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피하고 서로 가면을 쓴 채 웃으며 돌아섭니다. 어차피 인간은 결국 혼자니까요.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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