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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딜레마

이거 내 거! 퉤 퉤!

'최초'들이 마구 탄생하는 '선점의 시대'

by 게인

사실 선점의 시대를 처음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전방위적으로 시대가 선점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로 흘러갔으며,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거죠. 이런 선점 위주의 논리는 어떤 한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분야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가끔 TV에서 '루나 앰버시'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데니스 호프라는 사람이 1980년에 미국 지방법원에 소송을 걸어 자신의 달 소유권을 주장했고, 그 지방법원의 판례를 들어 지금도 열심히 사람들에게 달의 땅을 분양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저것이 소유권이 될 거라고 생각하든 하지 않든, 이슈화하여 그걸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죠.


space-station-gb84faa8c8_1920.jpg 남의 땅에 깃발 꽂고 뭐하는 짓입니까?


1980년대부터 전 세계를 휩쓸었던 다단계의 열풍도 선점의 논리와 닿아있습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이 거대해질수록 초기에 선점한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간다는 이야기죠. 이러한 논리는 그 뒤로도 수많은 네트워크 마케팅의 기초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바탕으로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가상화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싸지기 전에 선점을 하면 나중에 가격이 올랐을 때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죠.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주장 중 일부는 항상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돈을 번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초기 투자자들은 돈을 벌고 빠질 수 있는 정도는 형성이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보니 더욱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희생자가 아니라 일확천금의 초기 투자자일 것이라 희망적으로 생각하면서 더욱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됩니다.




이러한 선점의 논리는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나오는 사례가 몇 가지 있죠. 'Beta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Sony는 자신들이 만든 Beta방식이 비디오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더 좋은 압축력, 더 깔끔한 화면, 어느 모로 봐도 자신들이 다음 시장의 대세가 될 것이라 생각했죠. 그리고 자신들이 그 당시 전자제품 업계에 가지고 있던 영향력도 강력했으니까요. 그러나 선점은 적절한 타이밍에 오픈되지 않으면 닫힌 시장을 불러옵니다. 결국 기술을 빠르게 공개하고 풀어버린 VHS가 우리가 기억하는 비디오 시대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vcr-g66bf4a44a_1920.jpg 네? 비디오테이프요? 그게 뭔데요?


당장 애플만 하더라도 그들은 매킨토시가 컴퓨터 업계의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잡스에 의해 새롭게 설계되기 전까지 그들은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폐쇄적인 전략을 반복하고 점차 고립되어 갔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애플에게는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들은 선점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결국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그 결과로 지금은 전 세계 5대 기업에 당당히 버티고 있습니다.


삼성은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스마트폰이라는 시장을 선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옴레기'라고 불렸던 옴니아폰을 내놓았죠. 그들은 스마트폰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을 선점하였기에 엄청난 매출을 올립니다. 나중에 국내에 뛰어든 아이폰으로 인해 엄청난 비판에 휩싸였지만 이미 그때는 벌만큼 벌고 난 후였죠.


삼성의 사례처럼 지역적 시장의 특성 하에서는 선점의 논리 자체가 무너지더라도 이미 그때는 챙길만한 이득을 다 챙긴 이후기 때문에 크게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선점하려고 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도적으로 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죠. 어째서 글로벌과 내수용이 다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변명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립된 시장일수록 선점으로 얻는 이득이 극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문제가 있는 갤럭시를 안드로이드 선택지가 고립된 한국이라는 시장에서 엄청나게 팔아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교육분야는 이러한 선점 논리와 연관이 없을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닙니다. 어디든 다르겠습니까만은 우리나라 교육시장도 시장화가 두드러지는 형태입니다. 다만 사교육 시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이나 공모사업과도 연결되어 있을 뿐이죠. 전혀 먹히지 않는 개념을 이름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국내에 풀어놓고 그로 인한 명성이나 자리를 취득하는 경우는 넘치도록 많습니다. 좋은 말로는 해외의 사례를 국내에 들여온 것이라고 하죠. 지방은 더 심합니다. '지역 최초'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 싸움도 보통이 아닙니다.


trophy-ge6c126036_1920.jpg 1등이 되는 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해서 1등이 잘못한 건 아니죠.


선점만 하면 되는 경직되고 고립된 시장이기 때문에 직접 개발하거나 만들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모방과 어레인지만으로도 선점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의 교육이나 문화 예술에서 창의성이 고사하고 이름을 선점하는 문제만이 가득한 이유입니다. 해외에서 베꼈든 타 지역의 것을 베꼈든 상관없습니다. 지역 명소가 되고 지역의 뛰어난 예술가, 유명인이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이미 선점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쉬쉬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선점된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 판단을 하는 이상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이유에서 선점된 것인지, 정말로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생각'을 필요로 하고 머리 아픈 일이기 때문에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걸 가장 잘 이용하는 계층은 당연하게도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인 들입니다.


그들이 진짜로 4차 산업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4차 산업의 이름을 먼저 가지고 와서 선점하려고 합니다. 인공지능? 먼저 단체를 만들고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제로 그 발전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상관없습니다. 당연하지만 이것은 '서로의 필요성'이 맞기 때문입니다.


각급 학교나 교육단체들은 지정된 교육을 수행해야 하고 그것이 선점된 것이든 아니든 누군가 새로운 이름을 가진 교육이라고 들고 오면 일단 수용합니다. 실제로 그 교육이 어떠한 방식이고 잘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죠.




우리는 여전히 선점의 시대 위에 살고 있습니다. 선점 자체가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뭘 하더라도 '처음'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 첫 번째가 우월하다면 그들이 선점을 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선점'이라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선점'이 가능한 조건, 그리고 그 선점에 의해서 그 분야, 그 사회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선도적인 기능이 발생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고 나서 시장이 어떻게 바뀌었고, 이케아가 들어오고 나서 시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이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게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뚫어내지 않는다면 상당히 장벽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간의 '갈라파고스'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이 어떻게 고립되고 어떻게 자신들만의 선점 싸움에 서서히 문화와 기술이 침몰해가는지를 살펴봤다면 우리의 미래도 불안하게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K-pop과 한류의 성공을 보면서 제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첫 예시인 '루나 앰버시'가 한국이 아니었듯이, 선점의 시대라는 것은 한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심지어 아주 최근에 발생한 것도 아닙니다. 역사에서도 쭉 있어왔던 일이죠. 루나 앰버시를 보면서 '봉이 김선달'을 떠올리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전 세계적인 역사에 쭉 있어왔다는 이유로 이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죠. '천동설'이 '지동설'의 위치를 선점하고 얼마나 오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문화는 과학과 다르게 정답이 없으니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보시나요?


bts-gf8a80275c_1920.png 과연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이들은 국내에서도 그렇게 평가받았을까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일부의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고, 몇 개의 문화 작품들이 해외에서 수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고점'이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낮은 저점'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내수시장을 잘 살펴본다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허들의 기준이 상당이 외부와 다르다는 것을 말이죠. 자신들의 위치를 위해서 시장 자체를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사회는 자신의 발전이 아니라 타인의 발판을 무너뜨려 우위를 고집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향상심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잠시 쉬어갈 수는 있으나 안주하면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립이 의미하는 바는 선점이라는 이름으로 우물물을 나눠갖기 위해 싸우는 개구리 싸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세히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항상 선점된 무엇인가를 뚫고 나가려는 움직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최초'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이겠죠.


선점은 언제나 달콤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보다 앞서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앞섰다고 느끼는 우월감을 좋아합니다. 동네 1위건 국내 1위건 세계 1위건 남을 제치고 우월한 위치에 섰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그러한 선점의 논리가 본질적 향상에 대한 열망의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1명 참가해서 1위라든지, 나머지 선수들이 전부 식중독으로 기권하고 1위를 해도 1위라고 기록이야 남겠지만 말이죠.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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