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IP의 시대 - 자기 PR을 넘어서다 (1)
사실 그렇게 오래된 말이 아닙니다. '자기 PR의 시대'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던 건 말이죠.
지금 30~40대라면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 이전 세대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라며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지양했던 것과는 반하는 성향이었습니다. 그리그 그게 '신세대'라고 불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꼰대'의 세대가 되었지만요.
물론 지금도 자기 PR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은 관심을 갈구하다 못해 역으로 '관심종자'같은 단어도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만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보는 공개된 공간에 수많은 어필을 쏟아냅니다. 인플루언서, 유튜버, 블로거... 타인에게 PR 된 자신의 모습을 삶의 핵심으로 바꾼 사람들이 이 시대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구독자'를 갈구하고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조차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부탁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예외는 아니죠.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공개된 공간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언급한 자기 PR의 시대의 핵심은 지금 말씀드리는 SNS나 인플루언서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의 시대는 자기 PR의 시대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넘어섰다는 이야기죠.
'자기 PR의 시대'가 도래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알고 있는 자기 PR 시대의 핵심은 자유도와 경쟁의 증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적으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그게 드문 일이기에 성립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농부의 아들은 농부로, 학자의 아들은 학자로. 계층의 사다리가 웬만해선 작동하지 않고 신분적 구분이 명확하던 시절에는 자기 PR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기꾼은 그때도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 분야 안에서도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었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야 했지만 그게 '모두의 화두'일 필요는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성대로 살아도 크게 어긋나거나 문제가 없는 삶이었던 것이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의 세대까지도 그것은 크게 바뀌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서 잘 살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게 엄청난 신분상승이나 부자가 될 것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개인이 원했다기보다는 전쟁과 분단국가라는 불안정한 사회가 개인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부분이 컸죠. 결국 자기 PR이 필요하게 된 것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선택의 폭과 배경이나 궤적에서 벗어나는 삶의 양식의 영향이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진로가 자연스럽게 결정되던 시대는 지나갔으니까요.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 말 역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능력과 그에 걸맞은 자리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어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자본주의는 그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더 원하고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기업이 필요한 사람을 찾거나 키울 필요 없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내보이려고 앞다툰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매우 편하죠. 그렇게 동네 안에서 모든 직업이 해결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커져가는 기업들과 도시, 그리고 공장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급격하게 커진 산업화는 일본에서 부동산과 주식의 버블이 무너지고 세계 경제가 고속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춘 시기와 맞물려서 자기 PR의 시대의 정점을 지나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도가 증가된 것에 비해서 문이 좁아지기 시작한 것이죠.
경쟁은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모든 시험과 고시, 그리고 취업문까지 경쟁 없이 스무스하게 가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물론 최상위 계층이야 상관없는 이야기였을 수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적어도 경쟁의 연속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 PR, 자기 마케팅 같은 요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모난 돌이 정 맞는 시대가 아니라 모난 돌이 '낭중지추'처럼, 아니면 '군계일학'처럼 그들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 익숙하고, 타인에 비해서 자신이 눈에 띄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집단이나 분야에서 눈에 띄려면 자신이 뛰어나던가, 타인들이 못하던가 둘 중 하나죠.
당연히 그에 대한 비판도 계속 있어왔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이데아'라는 노래를 내던 시점이 1994년이었으니 정말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은 곧 취업이던 시절이라,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그 시절에는 그나마도 대학에서 끝나던 경쟁은 IMF를 지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취업경쟁까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기 시작하고, 취준생, 삼포세대 등등 그 여파로 발생한 개념들이 등장하죠.
취업 자체가 경쟁으로 바뀌고 취업 연령대가 늦어지는 세대가 되면서 결혼 역시 밀려납니다.
10년 전만 해도 30살을 넘으면 지금 같으면 큰일 날 말인 '노총각, 노처녀' 같은 말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다들 결혼이 너무 늦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40을 넘어도 쉽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숨통이 트여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좀 하려고 하다 보면 40이 되는 게 금방인 세대가 된 것이죠.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요.
그 사이에 경쟁은 훨씬 심화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자유도는 더 넓어졌습니다.
그러한 자유도의 가능성에 의해 계층의 사다리는 어떤 면에서는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유명인이 될 수 있기도 하고 누구나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오래 노력했다고 꼭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나 옛 기준의 '성공'의 압박에서 벗어나 유명해진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나이 먹고 갑자기 유명해지는 사람들도 역시 많아졌습니다. 물론 그렇게 '보일 뿐'이지만요.
이제는 특정 직장에, 또는 특정 대상에게 자신을 어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여전히 성공의 폭은 좁지만 '누구에게나 도전은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이라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등단한 작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브런치 같은 새로운 창구가 생긴 것처럼요. 한국전쟁 세대의 어르신들조차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 방송을 하고 심지어 유튜브를 가장 많이 보는 세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보기 좋은 포장이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는 '무한경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죠. 망망대해에 던져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한경쟁'은 잠시 세간에 등장했다가 부정적 의미가 커서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사실입니다. 위에서 다룬 SNS도, 인플루언서도, 유튜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상대를 꺾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해 주거나 지지해 줄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어필이 필요해졌습니다. 자기 분야의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분야끼리 결합하고 새로 만들어내면서 '분야의 유동성'이 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PR의 경쟁자가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죠. 경제인들이나 소위 전문가들이 갑자기 연예인들을 제치고 TV 패널자리를 휩쓸고 다니고 TV에 나오던 연예인들은 인플루언서로 넘어와서 경쟁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남보다 나으면 되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경쟁은 이제 특정 경쟁 대상과의 우위를 이야기하는 싸움을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PR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죠. 그럼 이렇게 경계가 허물어진 '자유의 망망대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나고'라는 유튜버가 있습니다. 지금은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300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강력한 유튜버입니다. 사실 이 유튜버가 이렇게 커지기 전부터 4차 분야에 연관이 있는지라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급성장했습니다. 즉, 4차 분야 기술로 운영하는 채널이지만 구독자가 '4차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3D펜 유튜버를 보는 사람'만이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이 사람이 대상으로 하는 구독자 층이 '4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거나 '3D펜에 관심 있는 사람'뿐이었다면 그렇게 대형 유튜버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심지어는 사나고보다 더 복잡하거나 멋진 것을 만드는 3D펜 유튜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의 콘텐츠와 IP가 어떤 특이점을 지나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필된 것이죠. 결국 경쟁 속에서의 PR이 아니라 IP로 승부를 보기 마련입니다.
이건 단순하게 특정 인플루언서나 개인만의 특정 사례가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 가요 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역주행'이라는 말을 보게 됩니다. 한 때 EXID가 그랬고, 최근에는 브레이브걸스가 그랬죠.
물론 이 그룹들이 뜬 것은 그 그룹이 그만큼 노력하고 고생했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크지만, 이렇게 역주행하지 못한 나머지 그룹들이 그만큼의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역주행으로 뜨기 전과 후의 자기 PR의 노력의 정도가 달라져서 갑자기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뜬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가 작용한 것이지만, 그들이 경쟁과 PR에서 승리한 것이 원인이다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 몇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IP의 가치'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PR효과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IP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 더 타당한 이유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죠. 물론 EXID가 그런 소규모 공연을 열심히 다니며 PR을 했기에 직캠에 노출되고 역주행을 한 것도 맞고, 브레이브걸스가 열심히 위문열차 공연을 다니며 PR에 힘썼기에 비디터에 의해 영상과 댓글이 발굴되었겠죠. 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도 PR 하는 그룹도 많은데 다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필요조건이긴 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결국 사람들은 무한경쟁 시대에서 자신만의 IP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PR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연장선에서 넘어섰다는 것이죠. 불특정 다수에게 PR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IP화 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나고는 '3D펜 장인'이라는 IP를 쓰고 있죠. 요새는 '버튜버'도 늘어나면서 아예 얼굴 없이 목소리와 가상 캐릭터로만 자기 IP를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화가지만 유튜버로 더 유명한 사람들도 있고, 어느 만화가는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보다 유명해졌습니다. 자기 자신의 작품이 IP가 아니라 개인 그 자체가 IP가 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결국 경쟁이 심화되면서 '상대보다'가 아니라 '누구보다'눈에 띄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자신만의 색을 갖추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봤을 때는 결과론적으로 도달하는 자기 IP이기도 한 것이죠.
또 다른 접근은 트위터를 비롯해서 넷 상에서는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설왕설래하는 "웹 3.0"과 같은 새로운 표준의 도래입니다.
웹 3.0을 비롯한 현재 미래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실시간 활성화'와 '분야의 장벽 파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보안기술이었지만 경제, 게임을 비롯한 전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통신 기술의 발달은 자율주행이 가능할 만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한 방향도 아닌 양방향으로 다룰 수 있게 만들었고, CPU와 GPU를 비롯한 컴퓨터 관련 기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 중 일부는 지금 내 손의 스마트폰 기술력의 반도 안 되는 컴퓨터로 우주를 계산하며 돌고 있습니다.
이제 '실시간 방송'은 방송국의 전유물이 아니고, 홈쇼핑도 '대형 방송사'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손에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에 달하는 멀티 유틸리티 장비를 들고 다니는 셈입니다. 개그맨 시험을 봐야 개그맨이 되던 시대도 지나갔고, 소속사를 통해서만 가수가 되던 시기도 지나갔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앨범 속에 오래된 빛바랜 사진이 아니라면 나 자신도 기억이 어렴풋합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기억과 추억이 사진 몇 장으로 남던 시대가 가고, 자신들의 사진과 행동이 데이터로 변환되어 웹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는 세대가 주축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과 기록들은 실시간으로 어딘가에 남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설정한 저장공간에만 남고 공유되던 웹 2.0의 시대도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들은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기록이자 IP 이기도 합니다. 특별하게 IP를 구성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IP를 형성할 자원이 모이고 있다는 의미죠.
이제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개념인 저작권은 우리의 창작활동이 무엇이든 IP가 될 수 있는 시대라는 걸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저작권을 넘어서 라이센싱의 형태도 동시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NFT처럼 말이죠. 그 모든 것이 위에 첫 번째에 언급했던 '가치'로 변환되기 때문이긴 하죠. 실제적 가치가 아닌 '평가된 가치' 말입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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