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필을 그리다

by 게인

나는 꽤나 유명한(?) 악필이었다.


유명한 악필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꽤나 빨리 글씨 쓰는 법을 익혔던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100원을 받고 쓰기 숙제를 해주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글자 하나하나 쓰는데 끙끙거리는데 반해서 20분이면 쓰기 숙제를 채우고도 남는 나에게 친구들은 가끔 숙제를 부탁했다.


그리고 걸렸다.


당연하게도 나의 글씨는 날림에 악필이었고, 이미 특유의 '필체'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눈에는 당연하 알아볼 수 있는 눈에 띄는 글씨였다.








내가 악필이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글 쓰는 법을 형 누나의 어깨너머로 배웠다. 이걸 부정할 수 없는 건 내가 어깨너머로 배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바로 내가 연필을 잡는 습관이다.


나를 제외한 아무도, 심지어 평생 단 한 번도 나와 똑같이 연필을 잡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의 연필 파지법은 중지와 검지의 사이에 연필을 끼우는 게 아니라 중지와 검지를 나란히 붙여 손가락면을 연필에 대고 엄지 손가락은 하늘을 보고 위로 올라간 형태이다. 아마 듣기만 해서는 감도 안 올 가능성이 높다. 나도 평생 나처럼 쓰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악필이 된 또 다른 이유는 슬프게도 공책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형편 상 공책을 사기에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고, 그래서 공책을 아껴 써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줄이 넓은 공책을 쓰기 마련인데, 그 넓은 줄을 그대로 쓰면 너무도 빨리 공책이 없어져버리기에 가운데 줄을 하나 더 넣어서 반으로 갈라서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에 나는 글씨를 항상 조그맣게 썼고, 큰 글씨를 쓰려고 하면 균형이 맞지 않았다. 변명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악필에 영향을 준 부분 중 하나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대신 '남들과는 다르게' 쓰는 바람에 눈에 띄었지만.


의외로 글짓기로 상을 많이 받게 된 나에게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글씨를 크고 바르게 쓰라고. 사실 당연한 얘기다. 어차피 원고지의 칸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그걸 그렇게 조그맣게 가운데 쓸 이유가 없으니까. 내가 쓰고 싶어서 그렇게 작게 쓴 게 아니라 아무리 처음 시작할 때 크게 써도 습관이 있어서 점점 글씨가 작아졌다. 그리고 여전히 악필이었다.


중학교쯤부터 하도 지적을 많이 받아서 "보통의" 연필 잡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젓가락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펴봤는데... 나는 젓가락질도 약간 다르게 하고 있었다. 결국 기초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했지만 바르게 잡고 쓴 글씨는 어색하고 느리고 심지어 원래의 악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악필이 탄생했다.


그 당시의 학교 수업 칠판 필기는 너무도 빨라서 빠르게 적지 않으면 순식간에 앞부분을 다시 지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속기형'의 원래 방식으로 필기했다. 덕분에 항상 필기를 놓치는 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의 노트를 빌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알아볼 수 있어야 베끼든 뭐든 할 거 아닌가...


가장 큰 문제점은 시험기간이 되어 내가 내 노트를 보다가도 긴가민가 할 때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기억력이 커버를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이건 엄청 불안정한 점이었다. 나는 잘 쓴 '어른의 글씨'를 따라서 연습해보기도 하고 정자체로 써보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내 글씨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소위 뺑뺑이를 거쳐 가게 된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뭐 지금 시대의 남녀공학을 생각하면 안 되고... 남자반과 여자반이 갈라져 있는 형태였지만, '어쨌든' 학교 안에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학교였다. (그 당시 우리 지역의 인문계 고교는 고작 10개뿐이었고, 그중 8개 고교는 남고 또는 여고였다) 두근거리는 학창생활... 따위는 없었고, 그냥 나는 문예부를 들었다.


그즈음의 나는 악필에도 불구하고 '펜팔'이라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애매한 시기상의 문제로 펜팔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나는 펜팔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몰랐다. 결국 '모뎀'을 통해 에듀넷이라는 'PC통신'에 접속하여 처음으로 펜팔을 구했다. (그 친구와 아직도 연락이 닿는 걸 보면 생각보다 오랜 인연이다) 2명의 펜팔을 구했고 나는 나름 만족하며 악필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다행히 착한 펜팔 친구들은 나의 악필을 문제 삼지 않았고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어느 날 문예부의 친구 한 명과 이야기를 하다가 펜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펜팔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친구 한 명이 자기도 편지 쓰는 거 좋아하는데 자기와도 펜팔을 하자고 했다. 아니 학교에서 마주칠 수 있는데 무슨 펜팔...?이라고 지금이라면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쪽지나 편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있던 시절이라 그러자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그 애의 편지에서 충격을 받았다.


종종 다른 사람들이 글씨를 잘 쓴다는 사실에 부러울 때가 있었지만, 그 애의 편지 글씨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 예쁜 글씨를 보면서 뭔가 내가 지금까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글씨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그건 글씨 쓰기의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대학교 시절 동아리에서는 각자의 별명이 적힌 노트에 공강 시간에 와서 글을 써주는 문화가 있었는데 나 역시 시간이 남을 때 다른 사람의 노트에 글을 적곤 했다. 나는 이미 숙련된(?) 펜팔러였기에 익숙하게 적을 수 있었고, 나의 글과 글씨를 본 선배 누나들과 동기들은 충격을 먹었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글씨를 예쁘게 쓴다는 이유였다.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글씨가 악필로 가고 있다. 솔직히 일 년에 직접 쓰는 글씨를 몇 자나 쓰는지 모르겠다. 컴퓨터로 적는 문서는 수도 없는데 직접 펜을 잡고 글을 쓸 일은 솔직히 없어도 너무 없다. 가끔 예전 생각을 글을 써보면 조금씩 감이 돌아오는 것 같다가도 뭔가 느낌이 다르다.


그때 그 시절, 무엇이 나를 악필에서 벗어나게 했을까?


원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거였다.


나는 글씨는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글씨는 글자로써 쓰는 것을 신경 썼다. 그런데 그 친구의 글씨는 전혀 달랐다. 동글동글하면서도 예쁘고 남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가지런하게 적고 있었다. 내가 추구하던 '컴퓨터 명조체 같은' 글씨체가 아니라 예쁘게 디자인된 글씨였다.


나는 글씨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의 악필이 예쁜 글씨체가 되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핵심은 개념의 전환이었다. 나는 글씨를 글씨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고정관념이었다. 지금이야 캘리그래피 같은 것들이 많아졌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개념도 없었다. 아니, 아마 있었어도 내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점점 비슷한 글씨를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1년여를 주고받던 편지는 더 이상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고3으로 바빠진 탓도 있지만,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같은 문예부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서로 약간의 거리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좋은 친구였지 연인의 감정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멀어진 채로 나는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고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 어렴풋이 들리는 소식이나 한 번 들었을까. 그 친구의 소식을 더 이상은 듣지 못했다. 아마도 씩씩한 친구였으니 잘 살고 있겠지. 나는 글씨를 쓸 때마다 그 친구를 가끔 생각했다.




첫째가 7살인데 열심히 글씨를 쓴다. 인터넷으로 뭘 보고는 옮겨 적는 걸 열심히 하는데, 악필이다. 뭐 어린아이들이 악필인 건 당연하지만 보고 있자면 내 옛날 생각이 나서 조바심이 난다. 연필 잡는 법도 계속 교정을 해주지만 쉽지는 않다. 나는 내가 느꼈던 악필에 대한 조언을 아이에게 대물려 준다.


"괜찮아. 글씨도 예쁜 게 좋지? 그러면 글씨를 쓴다고 생각하기보다 예쁘게 그려보렴. 우리 아들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하잖아?"


그리고 아들은 악필을 그리고 있다.








끝으로 나에게 예쁜 글씨를 가르쳐줬던 그 옛날 친구에게 한마디 적어본다.


1월 1일에 태어나서 생일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던 내 친구야. 네 덕분에 나의 악필은 그림 같은 글씨가 되었지만 고맙다는 말도 못 했지. 우리는 아마 말한 횟수보다 편지를 주고받은 횟수가 훨씬 많았을 거야. 그 글씨가 우정의 증거라고 해놓고,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졸업해버려서 참 미안했다.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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