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짓거리

by 게인

어린 시절, 나의 취미는 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헛짓거리'였다.


다른 표현으로는 '낙서' 또는 '그림'이라고도 한다.


형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혼자 앉아서 만화를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이미 국민학교 2-3학년 때 혼자 공책에 만화를 그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형을 보면서 자랐다. 당연히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만화를 보는 것까지 우리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항상 숨어서 봐야 했지만. 다행히 부모님은 우리끼리 '알아서 잘 노는 것'으로 인식해서 우리에게 시간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농사일에 일 년 내내 새벽부터 나가서 저녁에 별을 보며 들어오시는 부모님은 그래도 일일이 손이 가지 않고 잘 크고 있다는 점에 만족하시는 편이었다. 물론 낙서하는 것을 걸리면 여지없이 야단을 맞았지만.




형의 영향으로 나의 만화에 대한 영역은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건담을 알고 있었고, 란마 1/2을 보고 자랐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깊게 빠져있었다. 친구들이 죄다 드래곤볼에 빠져서 초사이어인만 그리고 있을 때 나는 게임잡지를 보고 '시라누이 마이'를 그리고 있었다. 당시에 오타쿠라는 표현이 없어서 다행이지 아마 있었다면 1순위에 예약되고도 남았을 인물이었다.


심지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형 누나와 만화를 더빙하면서 놀았다. 부모님이 형의 어학용으로 사주신 워크맨의 녹음 기능을 활용해서 우리는 만화책을 나눠서 녹화하곤 했다. 그리고 마치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우리가 녹음한 것을 들으며 즐거워했다. 그 테이프들이 가끔 듣고 싶어질 때가 있지만, 우리는 CD의 시대가 오면서 테이프는 다시는 듣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꾸준히 학교에서도 '그림 그리는 애' 또는 '만화 그리는 애'로 통했다. 쉬는 시간에나 공부 시간에 낙서를 하고 있는 경우가 워낙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미술과는 인연이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모자 사생대회'라는 신문사가 주최하던 당시 지역에서는 가장 큰 대회에서 상을 받았지만 문제는 내가 그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나는 그때 이미 게임잡지에 나오는 격투 캐릭터 같은 것에 빠져있었고, 멋진 캐릭터를 그리는 것을 더 선호했다. 애초에 '모자 사생대회'를 나왔던 이유 자체가 다들 참가하는 학교 행사기도 했지만 그림 그릴 수 있는 커다란 종이를 주는 이유가 더 컸다. 그래서 신나게 이것저것 그려보다가 제출용 그림은 말 그대로 '그냥' 그렸다.


오해의 소지를 좀 막아보자면 내가 천재라서 그냥 그렸더니 상 받았다는 내용이 아니라, 나이에 맞는 수준을 그렸고 그래서 상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때 그린 그림도 기억이 나고 왜 그렸는지도 생각이 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림으로 상을 받을 때의 주변 반응을 되짚어보면 '역시'라는 분위기였지만 그 뒤로 나는 거짓말처럼 그림으로 다시는 상을 받지 못했다. 매년 봄에 열리던 '불자동차'그리기 대회는 그림 좀 그린다 하는 아이들이라면 매년 상을 쓸어가는 대회였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모자 사생대회 역시 매년 열렸지만 그 뒤로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처음에 상 받았을 때 얼떨떨했고, 내가 평소에 그리는 종류의 그림으로 상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더 '만화처럼' 그리려고 했지만 나의 그림은 평면적이고 굳어있는 것 이상이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내 그림 실력의 발전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뭐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결국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인간'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나의 취미는 계속 '헛짓거리'였다. 심지어 학교에 만화동아리가 없어서 '모꼬지'라는 이름의 고교 연합 외부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였다.


결국 나의 재능은 그림에 없었는지 끝내 꽃 피우지 못했다. 마지막 불꽃을 살려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단계까지는 갔는데, 능력의 부족을 통감했다. 심지어 창업까지 해가며 도전했던 나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집착은 거기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물론 그렇다고 그 분야와 연은 끊은 것은 아니지만.






요새 둘째가 부쩍 낙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낙서를 하긴 했지만 벽에는 그리 심하게 그리지 않았는데 둘째는 손에 잡는 게 있으면 무조건 도망가서 아무 곳에나 그림을 그린다. 아무리 종이를 많이 가져다주고 노트부터 심지어 전지를 펼쳐줘도 종이 이외의 곳을 색칠하고 있다.


종이가 모자라서 그림을 그릴 곳이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속 터질 일이지만 이 녀석들은 그저 해맑게 웃을 뿐이다. 거기다 오빠랑 같이 그림을 그리는 건 좋은데, 오빠가 무언가를 그려놓으면 그 위에다 날개를 단다든지 다른 것을 덧붙여 그려버리는 일이 많다. 다행히도 첫째는 성격이 나쁜 편이 아니라서 동생이 자기 그림 위에 낙서를 해도 쿨하게 넘어가 주는 일이 많지만 "안돼~!" 하면서 도망 다녀야 할 때도 많다.


이 녀석들의 '헛짓거리'를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나는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어린 시절의 그것들은 정말 아버지의 말씀처럼 '헛짓거리'가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모든 경험이 결국 연결고리가 되어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커뮤니케이터로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이 '헛짓거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물론 둘째가 색연필 심을 뽑아서 도망치면 쫓아갈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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