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을 찾는 것은 '전가'일뿐이다.
이 글은 사실 2021년 8월 경에 쓴 글입니다. 서랍에 넣어놓은 글을 파 내려가 보니 있었습니다. 초반에 제가 썼던 글들이 대부분 4차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이 글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읽어보고 약간만 다듬은 뒤에 올리기로 마음먹었죠. 내용을 전부 재조립하거나 섞어서 새로운 글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날 것으로 써진 글도 오랜만이라 그냥 비문인 부분만을 수정하고 아주 일부의 내용만을 추가하여 올립니다. 심지어 제목과 부제마저 그때 적어놓은 그대로입니다.
최근 혐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시물들을 읽을 일이 있었다. 그 글은 청년층과 노년층의 현실과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혐오를 이야기했다. 고시원 방에서 공무원 시험만을 준비하며 굶는 청년들... 지금은 그 공무원 시험에 대한 의지마저 줄어들었다. 사회는 그러한 약자들에 대해서 혐오를 이야기한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강요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능 정도가 마지막이다. 그 뒤의 선택은 사실 20대 이후의 선택이고 본인의 선택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20대에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job이냐 career냐 대한 문제가 아마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청년들이 job을 선택하지 않고 바로 carreer에 들어갈 생각만을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job을 거치면서 career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건너뛰고 career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속성은 계층의 사다리를 강제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같은 환경이 아닌데 똑같은 해결법을 추구하는 것.
예전에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판단했던 부분 중 하나다.
해외의 성공 사례가 있다면 환경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 가지도 아닌 그 열매만 가지고 와서 좋은 점만 부각해서 접목하려 한다고. 심지어 국내끼리도 그 짓을 반복한다.
원래 이런 것을 하려면
- 정말 성공사례인가? (성공사례에 대한 기준 필요)
-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결과의 원인과 다른 부분이다. 마지막 나온 결과에 대한 원인을 묻는 게 아니라, 이게 발생한 문제와 그 문제의 해결의 적합성의 이야기다.)
- 다른 체계 및 환경과 맞지 않는 점은 무엇인가?
-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거나 또는 환경에 더 맞게 개선할 방법은 존재하는가?
등등의 내용이 필요하지만, 이런 부분은 대놓고 말하자면 머리를 써야 하고, 사람들은 거기까지 머리를 굴리기보다 그 열매만을 취하고 싶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당히 포장해서 명예와 돈과 열매만 취하면 되는데 뭐하러 "진짜로 해결할 방법"따위를 고민하냐는 거다.
그리고 그 방법이 지금까지 대부분 그대로 먹혀오고 있다.
모든 청년들은 같은 환경에서 출발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청년이 아니라 모든 사람 자체가 그렇다. 공교육은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존재하지만 같은 공교육을 받는 다고 모두 같은 대학이나 같은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비슷한 환경을 부여받아도 그것을 소화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그렇다면 각 개인들은 자신의 환경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들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자신의 목표에 맞는 길을 설계해야 한다. 그 부분이 없는 획일적인 설계는 당연히 문제를 동반한다. 지금 공무원 시험을 보는 친구들 중에 "공무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때문에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는 얼마나 될까? 막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되더라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다.
그들 대부분은 그들이 시험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와 가정과 주변에게 책임을 돌린다. 아주 어릴 때부터 책임을 져 본 적 없는 청년들에게는 커서도 책임감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물론 20대부터 일을 하는 청년들이라고 전부 자신의 길을 잘 찾거나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 유예 기간처럼 일단 먹고사는 일을 하면서 "돈", "차", "집" 등 무언가 물질적인 것을 목적으로 job과 job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이런 경우는 선택에 대해서 사회에 대한 원망보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이용해서 돈을 벌 것인가의 고민을 하기 때문에 극단으로 치달아서 혐오로 빠지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사실 그들이 아마 가장 혐오하는 (또는 비웃는) 계층은 쉽게 해결되지도 않으면서 시험에만 매달려 세월을 보내는 비슷한 연령대의 고시원 청춘들일지도 모른다.
00년대 학번들은 90년대 그리고 그 이전 학번들이 졸업만 하면 직장은 프리패스이던 시절을 부러워하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시험을 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건 그 전 세대가 대학만 가면 직장이 해결되더라는 상황에 맞지 않는 해결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00년대에 IMF와 환경 변화로 취업길이 막히면서 대학원이라는 또다시 이상한 해결방안이 제시되었고, 그 결과는 석사 인플레가 일어나면서 "공부하지 않는 대학원생"을 양산했다. 학문적 탐구욕이 없는 대학생들에서 대학원생들로 바뀐 것뿐이다.
결국 그다음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자격증 천국이었다. 심지어 이건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공인 민간자격증만 해도 몇천 개고, 관심이 있어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 들어가서 민간자격증들 이름을 살펴보면 아마 다들 기함할 것이다. 공인 민간자격증이 이 정도인데 비공인 민간자격증은 어떨까? 그리고 그거에 몇십만 몇백만 원씩 가져다 바치며 취업이 될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격증은 전문성을 대변하지 못하게 된지는 꽤 되었다.
진로와 직업 앞에 놓여있는 이러한 현실들이 결국 사회로 퍼져나가 독이 되었다.
혐오는 진짜와 가짜를 가리지 않는다.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실제로 피해를 본 사람들 전부 피해자의 일종이다. 우리의 피해는 단지 물리적인 것이나 재산적인 것만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발생하지 않은 피해에 의해서 입은 정신적 피해도 피해의 일종이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구분하는 것 역시 혐오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끔씩 그들이 서로 충돌했을 때, 실제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부르짖는 사람들 앞에 밀려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피해자들은 무언가 하려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선의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리스크 게임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피해자인 척하는 것. 그리고 그 뒤의 진짜 피해자들.
2021년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의 해였고, 그중에서도 전 세계를 강타한 K-콘텐츠는 오징어 게임이었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히트한 이유는, '리스크 게임'의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단지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분도 한몫했다고 본다.
주식, 코인, 도박 등 뭔가 리스크를 지면서 큰돈을 벌어보려던 사람들.
그들 중 진짜로 큰돈을 번 사람들은 멀찍이 물러서서 웃고 있고, 그들을 보며 자기만 돈을 못 번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리스크 게임이다. 모두가 돈을 버는 win-win이 아니라 한정적인 재화를 가지고 하는 싸움이다. 심지어 어디에나 존재하는 '매개자'역할의 하우스는 무조건 돈을 번다. 누군가가 돈을 번다면 누군가는 잃기 마련이다. 그럼 결국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다단계가 한국에서 유행했던 것도, 주식이 폭발하고 코인이 터졌던 것도, 다 이런 구조의 일환이다.
바로 도박성 구조에서 오는 문제. 목적이 오로지 재화로만 치환된다면 이러한 도박성 구조에 매몰된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상황을 등에 업고 오징어 게임이 히트했지만 한국의 "콘텐츠 메인스트림"은 정 반대의 게임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절대 리스크를 지지 않는 게임을 한다. BTS도, 넷플릭스에 판권을 팔아버린 오징어 게임도, 결국 한국 메인스트림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케이스다. 그리고 최근 신드롬을 일으켰던 우영우 역시 KT가 제작지원을 했지만 메인 방송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혐오를 보기 위해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불평등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 대한 가장 큰 사회적 공감대로 '불평등'이슈를 든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들이 초반에 그리 생각하듯,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순수하게' 피해자들인 것은 아니다. 도박에 빠진 기훈이나, 고객의 돈으로 선물투자를 던지는 상우, 사기와 협박을 일삼는 무리들까지... 심지어는 알리 조차도 실제로 '불법체류자'라는 부정적 행위에 대한 결과로 발생한 피해자다.
과연 불평등의 피해자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봐야 적극적으로 리스크 게임에 들어가야 더 피해자인지, 아니면 최대한 리스크를 만들지 않고 그만큼 소소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피해자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이미 개인의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으며, 빚을 지고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보라고 비웃는 사회가 되었기에 더욱 오징어 게임에 가깝다. 심지어 미디어는 그걸 부추기고 그런 빚을 갚아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내놓는 사람들이 정무를 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보다 외국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그 디스토피아가 리얼한 현실이지만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적어도 그냥 메타포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