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더 이상 설득하지 않는가?
키보드 워리어와 악플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일일이 만나서 말다툼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제 인터넷 공간 어디서든 충분히 게시물과 댓글로 싸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컴퓨터로만 댓글 달고 싸우던 시대마저 지나가고 이제는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든 참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게시글에 '반박 시 ㅇㅇㅇ'라는 말이 자주 보였는데 보통 저 ㅇㅇㅇ의 자리에 그리 좋은 말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든가, 뭔가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단어를 넣어서 타인이 반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분쟁의 근원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겠지만 오히려 그런 무시가 더 불타오르게 만들어서 분쟁을 일으키는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가장 많이 보이는 표현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넷 밈으로부터 발생한 표현이죠.
'반박 시 님 말이 맞음'
얼마 전 정책 홍보를 위한 한 방송사의 유튜브 클립을 보았습니다.
홍보하는 정책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소비 촉진을 위한 이벤트성 정책이었습니다. 많이들 알고 있는 대만의 영수증 복권의 축소판이랄까요. 뭐 3만 원 이상 기준에 기간도 짧고 당첨 액수와 총액도 낮기에 그저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부분은 있지만 하고자 하는 건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홍보 영상 중간에 이 정책이 일종의 '넛지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영학 관련 서적들은 이슈가 되면 베스트셀러에 비교적 자주 오르내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한 때 '넛지'라는 책이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과 연결되어 언급되면서 많이 팔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노란색 표지가 기억나는 걸 보면 저도 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내용을 보면 슬쩍 팔꿈치로 찔러서 행동을 유도하는 그런 종류의 효과를 넛지 효과라고 하는데 행동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넛지의 공동저자인 리처드 탈러가 201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니 다시 재조명되는 이유로도 충분합니다. 타인의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저하시키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 특징이죠.
2000년대 초중반에는 제가 좋아했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설득의 심리학'과 같은 책들도 꽤나 주목받았습니다. 넛지나 설득의 심리학과 같은 책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중의 하나는 굳이 '언어를 통한 설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아주 독특하거나 드문 것은 아닙니다. 경영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비자행동론'같은 경우도 타인의 행동을 분석하여 그들에게 특정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넛지와 비슷하게 볼 수 있습니다.
2008년도 저서가 지금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제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겁니다. 이번 홍보 동영상에서야 직접적으로 언급을 했지만 넛지의 대부분은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죠. 넛지에 대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도, 또는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가를 설명할 필요도 별로 없다는 것이 넛지의 특징입니다. 오히려 넛지에 대해서 언급할수록 넛지의 효과가 역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넛지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 소모성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은 텍스트와 주장을 실시간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영상을 통해서,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의견을 어필합니다. SNS는 내 생각을 가감 없이 인터넷상의 사람들에게 던지고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 의견의 숫자만큼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지만, 세상이 그만큼 '논쟁'에 익숙해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갈등에 대해서 '악플'과 '소모적 논쟁'에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낮은 국가 중 하나지만, 문맥상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방향으로 측정한다면 생각보다 문맹률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글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논리적인 기반은 같은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논쟁이 쉽게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논리를 포기하고 이미지로 승부를 보거나 아니면 아예 '넛지'처럼 행동을 슬쩍 유도하거나 교정하는 방향을 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2011년에 힌두교 요가 구루인 자기 바수데브에 대한 기사가 포브스에 기고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아는 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러한 밈이 유행하게 된 것에도 나름 이유는 있습니다.
위에서 다뤘던 대로 악플과 키보드 워리어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 후반에 시작된 커뮤니티들을 기반으로 한 갈등들이 극에 달했습니다. 특히 방향이나 성별은 정 반대여도 전투적인 성향은 똑같은 갈등 지향형의 커뮤니티들이 인터넷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인터넷은 전쟁터입니다.
저 역시 글 하나 쓸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도 성향이나 입장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에 반대되는 성향에서 공격적인 댓글을 쓰는 것이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커뮤니티 초기에는 저 역시 글을 쓰고 그 밑에서 댓글로 논쟁을 하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려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저분하게 댓글이 달리면 전체적으로 자정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숙련된 악플러'들의 시간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고 싶은 생각이 점점 없어집니다.
사람들은 이제 논리적인 논쟁을 보게 되는 것을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한 때 '100분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전국민적인 이슈였던 적도 있습니다만 현재는 사람들이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토론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은 대부분 수준 떨어지는 말싸움과 회피, 그리고 헛소리와 거짓말 같은 것입니다. 방송에서 하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청문회나 감사에서 조차 논리적이지 못한 모습들만 보입니다. 일반적인 유튜브에서 영상 댓글에서 불타오르는 것은 평범한 일이 되었고, 댓글을 막는 기능을 활용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반박 시 님 말이 맞음'은 일방적인 소통입니다.
아니 사실 소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겁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소모적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그냥 '논쟁'을 포기하고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기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뭉칩니다. 그리고 AI 기술을 통해 인터넷들은 알고리즘으로 그런 사람들을 모아주겠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돈이 되니까요.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건전한 논쟁이 안되는 원인에 대해서 더 이상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스포츠와 연예 댓글란을 막은 것은 '악플러'에 의해서 상처받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당시에도 논쟁은 불타올랐고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 악플은 댓글러들이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지금도 자기 입맛대로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댓글을 막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책임지지 못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 제약을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이 오히려 핵심입니다. 결국 댓글창이 없어진 연예와 스포츠 기사들은 기자들의 입맛에 따라 휘둘리고 있습니다.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아니면 미묘하게 비틀어 낸 것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자가 사람들에게 신뢰도가 낮은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사람들이 뉴스와 포털사이트를 멀리하는 것의 원인이 보입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반박 시 님 말이 맞음'과 같은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지지합니다. 왜일까요? 당연히 그들도 댓글에서 '반박 같지 않은 반박'으로 소모성 논쟁과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알아서 안보는 방향을 원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성향적으로 쏠리게 되다 보면 언젠가 반대 성향과 충돌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갈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친화적인 속성으로 강화되어있는 사람들의 충돌은 논리적인 충돌일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가끔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답니다. 그냥 별 의미 없는 댓글을 달 때도 많지만 어떤 글에 대해서 제 생각을 달아놓을 때도 있습니다. 10번 중 9번은 문제가 없지만 1번 정도는 제 댓글의 의미를 곡해하거나 비틀어서 공격하는 댓글이 달리곤 합니다. 제가 브런치에 4차 산업과 가상화폐 관련 글을 쓰면서 상당히 신경 쓰게 되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어조로 유튜브 관련 영상에 댓글을 달면 어김없이 물어뜯겼기 때문이죠.
우리는 공감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댓글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1번의 악플과 공격을 당해서 얻게 되는 정신적인 피해는 내가 9번의 댓글을 달아서 얻게 되는 마음의 평온이나 기쁨에 비해서 훨씬 큽니다. 인터넷은 이제 아예 논쟁거리가 안 되는 의미 없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과 어디 물어뜯을 거리가 없는지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악플러들이 주류입니다. 시민들이 논리적인 논쟁을 유도하려고 만들어졌던 다음의 '아고라'는 결국 악플과 소모성 논쟁으로 얼룩져가면서 손들고 폐쇄되었습니다. 그게 의미했던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터넷 시대의 댓글토론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세간에서는 좋지 않은 의미의 속어로 '병먹금'이라는 말을 씁니다. 심지어 해외에도 비슷한 표현은 존재합니다. 어떻게 봤을 때는 그 말을 순화시킨 것이 '반박 시 님 말이 맞음'입니다. 결국 더 공격적인가 덜 공격적인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공격성 언어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공격의 대상이 바뀔 뿐입니다. 다수는 항상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이 완전히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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