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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Aug 11. 2022

나를 불러주세요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살다 보면 이직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마주하게 되죠. 과연 나를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뭐라고 어필할 것인가? 특히나 이직이 처음이 아닌 분들이라면 더욱 고민이 되는 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드린 이직은 단순하게 '직장을 옮기는' 이직이 아닙니다. 종사하는 분야 자체를 옮기는 경우도 포함하는 이야기죠. 일전에 자기 PR과 자기 IP에 관한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지금의 추세는 경계의 붕괴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오던 일만 계속하게 되는 시기도 아니고, 이력과 학력에 따라서만 이동하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자기 자신을 규정짓는 부분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전에 다른 분의 브런치를 읽다가 자신이 기획자라고 쓰고는 있는데 기획자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그 고민은 저와도 연결이 되는 고민입니다.


 외부에 가장 많이 알려진 바로는 저는 기획자가 맞습니다. 그런데 기획자가 뭔가요?


 물론 기획자의 정의는 인터넷이든 정보의 세상에서든 널리고 널렸습니다. 제가 그걸 묻는 건 아니죠. 기획자를 하고 있는 분들은 정말 기획자가 인터넷에 있는 그 정의가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선뜻 대답하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획자들이 꿈꾸는 건 '실리콘 밸리'겠지만 현실은...


 저는 소개란에도 적었지만 스스로를 '커뮤니케이터'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이력서에 그렇게 적어놓으면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는 게 문제죠. 타인 하고 공유되지 않은 언어는 스스로 규정지을 뿐 불편함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뜻이다 하더라도 말이죠.


 사실 기획자의 어려운 점 역시 이 부분에 있습니다. 왜요? 기획자는 누구나 다 쓰는 알고 있는 말이 아닌가요? 그렇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한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게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획자라는 단어 또는 기획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다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같은 의미의 기획자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겁니다.




 각기 다른 기획자가 있다는 게 무슨 특별한 이야기처럼 하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시기획자, 상품기획자, 프로그램 기획자 등등 수많은 기획자들이 존재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죠. 그럼 이러한 기획자들은 같은 '기획'이라는 큰 틀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럼 이러한 분들의 공통사항만 뽑아서 '기획자'라는 단어를 추출하면 어떨까요?


 제가 만난 스스로를 '기획자'라고 부르던 분들을 위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의 특성을 몇 가지로 나눠보면 어떨까요.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이디어 제공자'가 있습니다. 제가 20여 년 전에 만났던 '기획자'라는 이름을 쓰는 분들은 보통 이쪽이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밑에서 사람들이 그걸 우르르 만드는 거죠. 그래서 기획자는 보통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지휘하는 '감독'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건 서류 작성자죠.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서류 작성자'가 있군요. 사실 가장 많이 보이는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간에는 수많은 기획 서류가 있고, 공모 사업이든 입찰 사업이든 대부분의 업무에서 서류를 집어넣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주요 내용의 뼈대를 가다듬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러한 서류를 정리해서 쓰고 사업을 집어넣는 사람들을 '기획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직종들이 서류를 안 쓰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기획자들에게 특별하게 서류나 발표능력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기획자는 '구조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제 나름대로 기획을 공부하고 쭉 해오면서 느꼈던 기획자의 가장 핵심 능력은 살을 붙일 수 있는 뼈대를 만드는 능력이었습니다. '아이디어 제공자'와 비슷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아이디어는 콘셉트이라면 구조 설계는 논리와 당위성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보통은 구조 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분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죠. 




 '콘셉트를 잡고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 내부 구조를 설계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라고 요약해 볼까요? 그럴싸한 정의가 나왔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보죠. 모든 기획자들이 이러한 기획의 영역을 전부 다루고 있을까요? 실제로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이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기보다 부분적으로 나눠서 처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초기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죠. 


  우리는 이력서에서 '기획자'를 발견하면 무엇을 기대하나요? 


 저는 사실 기획자라고 이야기할 때가 많지만 스스로는 '개발자'에 가깝다고 여깁니다. 


개발과 기획을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벽만 쳐다보는 것은 정상입니다.


 예전에 어느 업체 대표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업체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자신만의 제품을 내세울 수 있는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그게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지속 가능성'이나 '장기적 측면'을 바라보면 올바른 방향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저희도 제품을 만들긴 하지만 타 회사보다 기술에서 특별한 강점을 가진 개발자가 있는 건 아니라서요."


 저는 이게 되게 의아했습니다. 개발자의 의미가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죠. 


 우리에게는 개발자가 뭔가 '공대생'이미지라든가 '프로그래머', '기술자'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개발이라는 부분이 단지 기술적인 입력만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개발자는 '4차 산업'의 발달과 함께 결국 내리막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의 특징인 공유와 해답은 애초에 개인의 독점적인 정보나 기술의 소유와는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모든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입 모아 이야기하듯이 코딩을 검색 없이 짜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타인의 코드를 갖고 와서 이해하고 분해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형태로 재조립을 하는 것이죠.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창의성'입니다.


 전에 다른 글에서도 한번 다루었던 '역설계'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죠. 이미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대부분의 무언가는 이전에 있던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하죠. 그럼 개발자의 핵심은 그 구조를 얼마나 이해하고 창의적인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조립하거나 정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사실 이 창의성 가지고 꽤 오랫동안 다뤄왔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의 정의가 당황스러운 경우가 꽤 나 많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다르다'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됐든 간에 뭔가 달라 보이는 걸 하면서 그걸 이유를 끌어다 붙인다면 창의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릴 때 '발명'에 관해 고민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거기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발명 과제를 내주면 가장 먼저 '지우개자' 같은 게 나왔던 가장 큰 이유라는 거죠. 다른 구조를 보고 적용하고 싶기는 한데, 그 구조가 유용한 핵심적인 이유를 모른 채로 형식적으로 '처음 보는 것'을 추구하는 겁니다.


 창의성의 기반은 '다름'이 아니고 '논리성'입니다. 남다른 무언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옷과 같은 것들은 유행에 있어서 항상 '합리적인 창의성'을 동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행 기간이 짧거나 일시적인 가장 큰 이유는 '합리적인 유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 항상 합리적인지는 않으니까요. 세간에 유명했던 것처럼 범죄자의 외모만 가지고 팬클럽을 만들고 무죄를 부르짖기도 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고 논리적이지는 않다는 거죠.


모든 논리적인 것들이 창의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창의적인 것들은 논리적입니다.




 경제의 영역에서는 그렇게 치고 빠지듯이 일시적인 붐을 일으키고 이익을 취하는 것도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창의적인 개발자'나 '창의적인 기획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어, 개그맨이다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유행어 하나로 돈을 버는 경우가 꽤 있지만 그 뒤로 그 인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창의성을 확인하는 방식이 '대중의 평가'에만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창의성의 영역이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창의성은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감탄이 나오는 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첨단 기술의 영역이라면 그 기반이 고도의 기술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논리성이 기반이라는 이야기죠. 결국 세계 수학의 난제였던 '푸엥카레의 추측'이 위상수학으로 해결되지 않고 물리학을 기반으로 해결되는 바람에 전 세계 수학자들을 소위 '멘붕'에 몰아넣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좀 멀리까지 이야기가 흘러왔는데, 결국 기획자든 개발자든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같습니다. 그리고 그 창의성은 '논리적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구조를 파악해서 필요와 논리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저에게는 기획자 또는 개발자의 구분이 더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제 자신에 대해서도 규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세간에서 생각하는 기준에서 생각하면 기획자에 가까우니 기획자라는 이름에 끼워져서 팔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어쩌다 보니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단체에서는 기획자가 만능이어야 하는 이유도 이해는 갑니다. 결국 구조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기술적으로 만능이 아니라 최소한의 구성을 이해하고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소규모 업체나 단체에서는 다른 파트를 맡아줄 사람이 없기도 하고 일일이 이해시키고 전달하는 작업에 시간이 소모되다 보니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더라도 본인이 다 처리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누적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기획자에게 만능의 능력을 기대하는 겁니다. 알아서 기획하고 서류 정리하고 디자인해서 발표까지 하는 그런 능력을 말이죠.










 얼마 전 AMD라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CPU를 제조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간의 실적을 토대로 CPU design center를 설립하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것이 연구소나 개발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점에 주목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디자이너'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자꾸 미학의 영역이나 그래픽의 영역으로 틀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는데 애초에 디자인의 역사 자체가 실용성과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기획은 디자인에 가깝습니다. 실용성을 추구하면서 특징을 지닌 설계를 하는 일이죠. 그래서 기획자는 사실 '디자이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실용성을 지닌 독특한 설계. 당연하지만 그 뒤에는 '창의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국 명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기획자'든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핵심입니다. 물론 사회가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의성에 기대어 오늘도 기획자로, 개발자로, 디자이너로 그렇게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비슷한 일들을 하면서 말이죠.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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