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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딜레마

사기의 문화

익숙해진 것들은 문화가 된다

by 게인

저는 의외로 사기를 많이 당했습니다.


'아니 별별 똑똑한 척하는 소리는 다하고 다니면서 사기를 많이 당했다고?'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의 비판적인 사고는 사기를 많이 당해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간단하게는 시외버스에서 물건을 강매하는 사기나 학습지 같은 사기를 당했고 크게는 취업사기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월급을 떼인 적도 있고, 결국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직접적 사기만 당하고 있는 건 아니죠.








사기의 가장 적합한 대상은 2종류로 나뉩니다.


'절박하고 절실한 사람들'과 '욕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자의 가장 대표적인 예 중 하나는 보이스 피싱입니다. 가족 또는 지인으로 위장하여 급한 척하거나, 아니면 검찰 및 수사기관을 표방하여 겁박을 하는 방식이 자주 쓰입니다. 대출 사기 같은 경우도 비슷한 점이 있죠. 대출로 대박을 내려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어려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출을 하는 것인데, 그러한 절박한 사정을 이용합니다.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는 상처를 후벼 파는 종류의 사기라는 점이 가장 치명적입니다.


후자는 투자 사기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급여를 저축하고 돈을 모으는 사람을 낮추어 보는 이상한 풍습이 생겼습니다. 마치 재테크가 대단한 삶의 미학이나 진리인 것처럼 부추기고, 그러한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거지'가 되는 것처럼 보는 것이죠. 물론 그러한 재테크로 돈을 번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종잣돈이 있으면, 아니면 그 이상으로 빛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데도 있죠.


그런데 후자의 사기는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안전 자산은 없다지만 최소한 1등급 은행들이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수익을 노리지 않으면 최소한 손해 보는 일은 줄일 수 있습니다.


후자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 돈을 만든다'라는 인식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규모의 경제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생각보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너무 유혹적인 말입니다. 내가 지속 가능한 다른 노력과 능력 없이 '어떤 방법으로 돈을 모으든' 그 돈이 돈을 더 불려준다니! 그래서 사기를 쳐서 돈을 번 사람들도 그 돈으로 '돈이 돈을 만들게' 하려고 부동산이나 주식, 코인 같은 투기 자본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시 돈을 잃는 구조입니다.


stock-market-gdfb1afe80_1920.jpg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큽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코인은 그 자체로 '사기'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국가적으로나 법적으로 사기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고 그 개별적인 행위에서의 사기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그에 비해서 리스크는 엄청납니다. 그래서 사기가 아닌 투기라고 불리는 것이기도 하죠.




우리는 사기라는 단어를 엄청나게 크거나 심각한 케이스만 들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사기에 의해서 풍비박산 나는 경우가 너무도 많으니까요. 개인적인 기억으로 시급이 1500원이던 20살 시절에 30만 원짜리 사기를 당하고 남몰래 몇 달간 속앓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려 한 달을 일해야 모을 수 있던 돈이었으니까요. 누구한테는 얼마 안 되는 사기여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많은 부분들은 사기성을 띄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즉, 사기는 우리한테서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가까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traffic-signs-gd615b949e_1920.jpg 거짓말은 사기를 만드는 아주 기본적이고 간단한 요소입니다.


얼마 전에 갤럭시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성능이 역대 갤럭시 중 최고라고 홍보했지만 그 성능 다 쓰면 핸드폰에 문제 생긴다고 성능 제한을 걸어뒀었죠. 쓰지 못할, 그리고 보장해주지 못할 성능을 홍보하는 방식은 그 글에서도 밝혔지만 갤럭시가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폐업하고 도망가버리는 회사도 아닌 대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그들은 사기를 치고 잠적하거나 도망가버리는 사기꾼들과 다르게 당당하게 버티며 사기를 사기가 아니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민감하지만 또 다른 가장 당당한 사기 집단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정치인들입니다. 정치인들의 공약은 '빌 공'자를 써서 공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선거 때는 뭐든지 해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선거가 지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무언가 해줄 거라는 이야기를 10명에게 각각 따로 한 뒤에 당선되고 나면 10명이서 알아서 싸워서 나눠가지라고 던져주곤 합니다. 다들 자기한테 특별히 신경 써준 줄 알고 있다가 때 아닌 '충성경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그럼 그들도 사기를 쳤으니 도망칠까요? 아닙니다. 이들도 매번 당당합니다. 심지어는 같은 낚시를 몇 년 주기로 반복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면서도 대박 쳤다는(?) 소문에 다시 또 당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기업도, 그리고 정치인도 속성은 초반에 우리를 마음 아프게 했던 사기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리에 대해서, 자식과 투기 사실, 위법 사실들에 대해서 거짓말과 으름장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피해는 우리에게 발생하지만 지금 내 주머니에서 긁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 소득을 저당 잡히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피해라서 사기라고 부르짖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결국 넘어가게 되는 거죠.


익숙해진 것들은 문화가 됩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부정부패도 심판받지 않는다면 문화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기도 당당하게 반복된다면 문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어떤 분야에서는 '깨진 유리창 효과'라고 합니다. 유리창이 멀쩡한 건물은 아무도 잘 건드리지 않지만 하나라도 유리창이 깨진 채로 방치된다면 그 건물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리죠.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청문회의 주요 낙마 사유였던 위장전입은 그냥 '관습'이나 '문화'처럼 넘어가게 되어버렸습니다. 자녀 입학비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에 비해서, 사외이사로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투기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일처럼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이런 것도 문화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 문화는 '있는 자들의 문화'라는 점입니다. 이런 부정수급이나 투기 같은 부정부패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향유하려면 우선 권력과 부의 고위 집단에 합류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저런 문화가 인정받게 되면 자신도 그런 위치에 갈 수 있고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정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진지함'이 '진지충'이나 'X선비'가 되고 '감성'이 '중2병'이 되고 '정의'나 '낭만'은 케케묵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는 문화를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껏 다른 글에서 말해왔듯이 사람들은 피곤한 것을 싫어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도 쉽고 간편한 것이 좋지,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전 '땡전뉴스' 시절처럼 뉴스에서 말하면 그냥 그걸 믿고 지냈던 시절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선배나 윗사람들의 말을 그냥 판단하지 않고 따라서 말만 잘 들으면 다 해결되던 시절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traffic-signs-g3b52e76a9_1920.jpg 거짓말과 잘못된 판단이 교차하면 사기가 성립이 되는 거죠.


결국 사람들에게는 '정의'가 무엇이고 '공정'이 무엇인지는 직접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의 욕망 위에 그런 이름들을 덮어서 포장하면 끝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정치인을 대상으로 '트롤리의 딜레마'에 대한 생각이나 성향을 물어보고 다니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과연 그런 인문학적인 고민에 있어서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세상은 갈수록 '사기는 당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사기를 치고 도망갔던 사람들도 당당하게 미디어에 얼굴을 들이미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기 그거 좀 쳤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가능한 것이겠죠.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라는 마음도 있을 거고요.


사기가 문화가 된 세상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골이 깊어집니다. 저는 자녀에게 '사기'를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키우기 위해서는 '타인을 의심하는 법'을 체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게 좋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타인에 대한 관찰'은 인문학의 기본적인 소양이긴 하지만 그게 사기를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인 것처럼 사기를 안 당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입니다.


초반부에 사기의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들은 절박하고 절실하거나,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조바심 나고 불안함 같은 게 없는 사람이 있긴 할까요? 아니면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요? 사실 저 두 가지 대상은 사기의 대상이기도 하고 '마케팅의 대상'이기고 합니다. '꼭 핸드폰을 사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거나 '남보다 좋은 핸드폰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사기당하고 무엇을 강매당하고 있는 걸까요?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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