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지' 본 적 있으세요?
우리는 수많은 판독기와 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서는 바코드를 찍고, 버스에서는 교통카드를 찍습니다. 고도화된 칩이든 아니면 좀 더 단순화된 기술이든 이것들이 많은 것을 판독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은행에 가보면 위조지폐 판독기도 있습니다. 당장 ATM만 사용해도 심하게 훼손되거나 위조의 가능성이 있는 돈은 뱉어내 버립니다. 아니 그 이전에 ATM기가 카드나 통장을 읽을 때 이미 한번 판독을 합니다. 이미 대부분의 시험은 OMR카드로 대체되거나 온라인 체크를 통해서 시험이 진행됩니다.
스포츠에서는 VAR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Video Assistant Referee)라고 불리는 시스템으로 긴박하고 정밀한 판독을 요하는 스포츠에서 논란의 여지를 줄이고자 도입되었습니다. 물론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이미 많은 스포츠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구기종목에서 더 많이 활용되는 측면이 있죠.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던 판독을 이제는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기계에게 절대로 넘길 수 없는 판독이나 평가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투표권 같은 게 있죠. 우리는 민주주의적 판단을 기계에 맡기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개표 조차도 기계에만 완전히 맡기기에는 두려움이 있어 직접 수개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투표 자체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정치적 판단에 대한 판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예전에 '망해버린 키워드 - 평가'라는 글에서 심사위원에 관해서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심사한다면 명확한 기준과 '공정성'을 가지기를 기대합니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는 '공정하지 않게' 자신만이 유리하게 통과하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공평하기 위해서 바꾼다는 미명 하에 심사 기준이나 평가항목이 기이하게 바뀌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다는 거죠.
그렇게 많이 봐왔던 방법이 어째서 계속 유효한 걸까요? 그게 계속 유효하지 않다면 시도를 하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계속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판독기 자체를 조작하면 판독의 결과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
사업이라는 특정 항목에 대해서는 일부의 심사위원이나 심사기준만을 조절하면 가능하지만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선거나 마케팅에서는 그게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충분히 가능하죠.
우리가 무언가를 심사하거나 평가를 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해 정보를 보고 판단을 합니다. 물론 판단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주로 보는 항목이 바뀌기도 하고 빠지기도 합니다. 정치인을 '잘생겨서' 뽑는 경우도 있고, 동향이라 뽑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이 같아서 뽑는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을 부각하는가에 따라서 평가는 천차만별입니다. 부정적인 노출을 늘리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지고 긍정적인 노출을 늘리면 긍정적인 견해가 늘어납니다. 당연히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보려는 목소리도 있죠.
문제는 그런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리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미디어가 자신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오만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신을 통해서만 재생산될 수 있다는 거죠. 한동안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위협을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새 수많은 물타기가 진행되고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정치권 보듯이 옳고 그름이 아닌 그저 대립의 구도로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디어와 언론과 같은 부분과 야합한다면 대중이라는 판독기를 고장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중적 인기'라는 것에 민감합니다.
유튜브에서, SNS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죠. 그리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면 그것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이라는, 수많은 사람을 거친다면 그것에 대해 '평가'나 '판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수많은 '원히트 원더'를 봤습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정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사라진 사례도 많습니다. 한 때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로 '슈가맨'이라는 프로에서 지나간 가수들을 조명하면서 '원히트 원더'로 알려졌던 가수들도 많이 근황을 드러냈죠.
굳이 음악뿐이 아니더라도 대중적인 유행은 일시적인 붐처럼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40대라면 어릴 때 다마고치를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게 뭐라고 누구나 하나씩 갖고 싶어 했죠. 셀제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번거롭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시간을 고정적으로 써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기는 시들해졌고, 다마고치는 '유행이 지나간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가 패션업계일 겁니다. 하지만 패션업계의 유행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디자이너의 디자인에 대한 가치는 과연 지금의 브랜드 파워에 걸맞은 걸까요? 아니면 대기업의 파워게임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유행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패션은 시간이 지나도 '복고'처럼 돌아올 수 있는가 하면 어떠한 종류의 패션은 다시는 유행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복고'로 다시 유행하는 패션들의 경우도 일시적인 유행일 뿐, 그것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행과 같은 취향은 사실 판독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일시적 유행'과 '공정한 판독을 거친 가치적 평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니 실제로 그러한 구분이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요?
대중이라는 판독기는 생각보다 섬세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고장이 잘 나는 편이죠. 그래서 대중을 '동물'에 비유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분노했지만 동시에 동감하고 있었죠. 대중은 영합한다거나 그저 허상을 쫓고 있다는 비판도 자주 나옵니다.
마케팅에서 대중을 움직이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고급화 전략부터 친근함을 내세우거나 특정 계층을 공략하는 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방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디어는 그보다 더 합니다. 괜히 대다수의 다른 직종이 미디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펜이 칼보다 무섭다'는 이야기는 이제 언론의 기개나 강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의 위력 과시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펜의 등 뒤에 '대중'이라는 쉽게 끌려다니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노이즈 마케팅 같은 것이다 하더라도 말이죠.
물론 당연히 마케팅과 미디어에서도 예측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1인 미디어가 활발해진 지금은 기존의 미디어와 마케팅에서도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영향력에 편입시킬 방법을 찾아냅니다. 가장 큰 조건은 '경제적 부분'이죠. 언젠가 커뮤니티처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연예인들은 그러한 대중의 판독기를 거치는 가장 대표적인 집단입니다. 그들이 대중 앞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기에 대중은 끊임없이 그들을 평가합니다. 그들은 미디어에 의해서 본성이나 본모습을 가리기도 하고 정 반대로 미디어에 의해서 악의적인 평가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매번 사례가 달라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만, 그래도 긴 시간을 거치면 적어도 대략적인 평가가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연예인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죠.
그렇게 신뢰를 쌓아왔던 연예인이다 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프로그램의 메인을 담당하는 연예인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에 달려있는 수많은 식구들의 무게를 자신이 짊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교묘하게 파고든다면 아무리 오랜 기간 자신의 평가를 유지했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신념에 반하는 일'에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 정도로 신념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누군가는 그들을 정말 믿었기에 그들을 비난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아직도 믿고 있기에 분노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미 대중이 가지고 있던 판독기의 잣대는 망가져버립니다. 애정과 신뢰관계를 파고들어서 판독기의 허점을 노린다면 판독기는 고장 나기 마련입니다. 대중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으면 그들은 마케팅과 미디어, 그리고 정치와 같은 거대한 힘들 앞에 휘둘릴 뿐이죠.
뉴스를 직접 보지 않은지가 꽤 되었습니다. 집에 어린아이들이 있어서 TV를 멀리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 뉴스나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깨진 탓이 더 큽니다. 유튜브라는 입맛에 맞춰주는 자극적인 매체가 있는 것도 한몫을 했죠. 자기 PR과 자기 IP에 대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제 대중은 하나로 뭉쳐있기보다 사방으로 흩어져 무한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TV에서 좋아하는 채널을 보는 게 아니라 수많은 유튜브에서 구독과 좋아요를 통해서 알고리즘의 방향성을 맞춥니다.
그리고 이러한 알고리즘은 마치 세상에 나와 비슷한 의견이나 관심사,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것처럼 세상을 바꿔줍니다. 더 이상 나와 다른 생각들을 놓고 논쟁을 하고 격론을 벌일 필요도 없이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더 몰두하면 그만입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나와 같이 보는 수백만 명이 있으니까요. 갈등과 논쟁이 없는 세상, 대중이라는 판독기는 판독 기능이 고장 나고서 평온을 얻습니다. 울타리 바깥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빌리지'안에는 정의와 행복이 있는 것이죠.
(*주 : 빌리지 본 적 없다는 분들이 있어서 다음 영화링크를 달아놓습니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0464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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