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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딜레마

프로가 되는 것

책임감이 희소가치가 된 사회

by 게인

얼마 전,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오랫동안 교육을 하면서 가졌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교육을 통해서 꿈꿨던 인재상은 뭘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프로페셔널' 해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그렇더군요.


애초에 제가 교육에 발을 담게 된 이유 자체가 HRD(Human Resources Development), 즉 인적자원개발에 의한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자원화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개인에게는 그 개성과 가치가 존재하지만 인간이 단독으로 혼자 살아가지 않는 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안에서 타인에게 어떠한 가치를 갖게 되는가, 또는 타인과 함께 무언가를 할 때 특별한 시너지가 발생하는가와 같은 부분들이 이런 '자원'이라고 부르는 부분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치가 있는 부분들은 물론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인문학 자체가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설정이 중요하죠. 우리는 꼭 타인에게만 가치가 있을 필요가 없지만 스스로만 가치가 있다고 우겨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결국 전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죠.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뭘까요?


여러 가지의 조건이 있겠지만 핵심을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책임감과 그에 대한 신뢰'라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떠한 일에 있어서 프로라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맡겨도 된다는 뜻이죠. 그러한 책임감 있는 태도와 결과에 대해서 우리는 신뢰를 부여하고 그 신뢰의 가치에 의해서 더욱 그 사람 자체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이게 프로의 탄생인 거죠.


프로의 정의가 '돈을 받는 것'이라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엄청나게 광의의 정의입니다. 돈 주고 일을 시켜서 후회해 본 적이 없으신가요? 돈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는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도 이뤄집니다. 다만 보통은 프로일 것을 기대하고 돈을 지불할 뿐이죠. 그리고 거기에서 수많은 사기가 일어나죠.


handshake-g4602e0482_1920.jpg 신뢰와 돈의 문제는 본질을 어긋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프로의 정의는 '전문가'와도 닿아있습니다. 저는 자주 말합니다만, 전문가라는 단어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전문가라는 단어의 느낌으로 봤을 때는 프로보다도 더 상위인데, 실제로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프로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버젓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죠.


전문가라고 나와서 방송에서 떠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프로페셔널의 기본 조건이 책임감과 그에 기반한 신뢰라면 이미 거기에서 지금 행동하는 전문가들의 대부분은 에러라는 이야기죠.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HRD의 기반에 있는 교육들은 사실 사람들이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교육들이 대부분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팀워크와 같이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교육이나 개인에 대해서 파악하고 알아보는 교육들이 다수 섞여있습니다. 물론 최소 대기업급이 되어야지만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겠지만요. 특히나 지금처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회에서는 기업에서 직원들을 '인적자원'으로 양성하려는 생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hr-process-g61c1f1be3_1920.png 기업은 이제 인재를 키우지 않습니다. 그저 뽑아서 쓰기만 할 뿐이죠.


그럼 이들은 어디에서 '인적자원'이 될 수 있는 인재로 자라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HRD를 들고 공교육 연령대로 내려갔던 것이었죠. '인적자원'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을 테니 그러한 경영학적 단어를 전부 빼버리고 저는 HRD에 있던 교육들을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서 문화예술교육과 인문학 교육 등에 담아서 전달하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HRD에서 하던 교육들 자체가 실제로 너무 인문학적이거나 문화교육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보니 대부분의 교육을 접해도 사람들은 이게 HRD 교육이라는 것을 모르더군요. 제가 말하지 않는 한 아마 제 교육적 목표에 대해서도 알아채기 어려웠을 겁니다.




갑자기 교육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사회의 가장 큰 기반이자 이슈 중 하나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신뢰와 가장 큰 연관을 맺고 있는 단어는 '원래는' 책임감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고 그에 대해서 신뢰를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 사회는 지금 얼마나 책임과 신뢰를 연결하고 있나요? 갈수록 우리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그리고 신뢰에 대한 책임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더욱 프로페셔널이 필요한 시대에 역방향으로 주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시대의 핵심 코드인 '탈중앙화'는 듣기에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책임감의 부재'라는 극명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에 루나-테라 상황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죠. 실제로 수많은 DAO나 Defi 같은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모델들 역시 쉬쉬 하고 있지만 같은 문제를 겪습니다.


apocalypse-gaccebdbfa_1920.jpg 신뢰와 가치의 변동이 극심해지면 국가간의 신뢰도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탈중앙화가 꼭 행복한 이름은 아니죠.


이런 책임감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신뢰를 우리는 '투기'라고 부릅니다. 또는 도박이라고 부르죠.





실패의 기회를 준다는 말을 '책임감이 없어도 된다'는 말로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나온, 그리고 지금도 나오고 있는 대부분의 청년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책임감'의 부재를 방치한 채로 '기회'만을 부여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년'이 하는 일에 대해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고 있는 걸까요? 그건 '청년'이어서가 아니라서 그들이 '프로페셔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실제로 프로페셔널한 청년들을 만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김없이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쓰지 않습니다. 본인들이 프로페셔널하다면 필요 없는 수식어라는 거죠. 청년이라는 집단을 줄이고, 그 타이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치적 이유로든 뭐든 그들을 모아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프로'가 되어서 청년을 탈출한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 현실에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밖에서 청년이라고 자칭하는 집단들을 보면서 그들이 '청년'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죠.


우리가 실패의 기회를 부여받는 건 '학생'일 때입니다. 우리의 배움은 끝이 없긴 하지만 적어도 '학생'이라는 신분은 그러한 기준이 됩니다. 또는 청소년이라고도 부르죠. 그래서 그들에게 사회는 아주 엄격한 틀을 적용하기보다는 조금 더 말랑말랑한 기준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들의 나이에는 적어도 책임의 무게보다 조금 더 도전과 실패의 기회를 줘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애들이 커서 된 게 어른인데 다를 게 있겠냐'라는 이야기죠. 인간이 커가면서 조금씩 성숙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그들의 논리적인 기반은 이미 어릴 때 많이 구성됩니다. 그리고 어리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이죠. 우리가 어릴 때 책임을 지우지는 않아도 '책임감'에 대한 교육을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커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뭐라도 책임을 지겠죠.


그런데 지금의 교육 대부분이 '책임과 신뢰'기반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신뢰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뢰와 좀 다릅니다. 학교 생활의 신뢰는 우리가 사회에서 하는 논리적 기반의 신뢰보다 감정적인 부분이 더 큽니다. 그래서 그러한 신뢰에 대해서 오히려 더 깊은 부분도 있고, 더 일방적인 부분들도 존재합니다. 그들이 그러한 신뢰와 책임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정리할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죠.


climbing-gdbe7a5702_1920.jpg 도전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신뢰와 기대를 받을 수 있게 준비해야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도 존중합니다. 그런데 특정 영역들을 제외하고는 그 끊임없는 도전 중 대다수가 실패했을 때, 적어도 우리는 그를 '프로'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그 실패의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어도 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책임지고 성공시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프로라고 부릅니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성공'의 기준과 '도전'과 '실패'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농구 경기에서 슛이 빗나가는 모든 사례를 실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물론 다 들어가면 더 좋겠지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경기의 승리'가 성공이지 슛 한 번의 도전이 '성공'과 '실패'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계속 슛이 빗나가면 당연히 경기를 지지 않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실패하더라도 슛 한 번의 무게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꾸준히 감당하기 위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바빴습니다. 저에게 상당히 책임이 있는 일을 맡은 상태에서 브런치에 글을 적기 위해서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스스로 부담이 많이 되어서 거의 2주간 글을 거의 적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은 늘 얘기하는 것처럼 '전문가'도 아니고 '프로'라고 부르기에도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프로페셔널의 마인드만큼은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고 (이번에도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힘들다는 것은 저도 느끼고 있기에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시대이기에 더욱 우리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부터의 모든 행동은 다 기록의 파편이 남아서 따라다니는 시대니 까요. 책임을 받아들이고 컨트롤하는 '프로페셔널'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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