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1)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기를 당합니다.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맨날 똑똑한 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기에는 취약합니다. 본인의 행동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저 역시 사기를 자주 당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얼마 전에도 사기에 가까운 일을 겪었으니까요.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합니다. 세상이 사기 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믿을만하다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비율이 높을까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지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해 대인관계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추락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대 후반에 대인신뢰도는 65% 안팎을 전전하고 있었으나 코로나 이후에 50.3%라는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언론 보도와는 다르게 기관 신뢰도가 오히려 상승했죠.
이렇게 사람들에게 전반적으로 '불신'이 깃드는 것과 정 반대로 실제로 사회 전체는 점점 더 '신뢰사회'로 흐르고 있습니다. 의심과 불신이 난무하는 신뢰사회라니... 어떻게 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운전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대 중반을 넘어서 면허를 따게 되었을 때의 저는 운전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이렇다 할 정확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운전 자체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의 10년 이상 수동기어 차량만 운전하고 다녔는데 그게 오히려 운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뉘앙스에서 느껴지시겠지만 지금은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운전 중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죠.
그냥 마음 편하게 운전하면 되는데 내가 너무 급한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도 해보긴 하는데, 그와 별개로 도로 위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운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운전의 가장 큰 특징을 '약속'과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운전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차선이라는 약속을 지킵니다. 신호도 지키죠. 차선 변경을 할 때면 깜빡이를 켠다는 약속도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운전에 관한 '약속'들이 운전과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 서있는 보행자는 초록불이 들어오고 차들이 정차하면 길을 건너겠죠? 그런데 내가 차 앞을 지나가는데 저 거대한 굴러다니는 쇳덩어리가 나를 들이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뭘 보고 믿는 건가요? 그게 사람들이 운전이라는 약속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신뢰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도로에 있으면 저는 다른 차들이 정상적인 방식의 주행을 할 것이라고 쉽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약속과 신뢰를 박살 내는 차량이 나타나지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거죠. 입원할 정도의 사고는 아니지만 접촉사고를 몇 번 경험하면서 더 그런 느낌을 받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한 것들의 대부분은 어떠한 약속을 사람들이 지킬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일전에 '사기'나 '다단계'에 대해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그들이 가장 악용하는 부분이 이러한 '신뢰'에 대한 부분입니다. 보험 약관이 엄청나게 길다면 누가 그걸 다 읽고 계약을 하는 게 쉬울까요? 아니면 보다가 넘겨버리게 될까요? 신뢰의 표시로 정치인에게 표를 주었을 때, 당선 후에 그들이 그 신뢰를 깨버린다 하더라도 당당하고 떳떳하지 않던가요?
약간 뜬금없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신뢰를 다루는 것은 4차 산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서 기존의 사회에서 탈피하기 위한 수많은 움직임이 존재합니다만, 그중에서도 지금 세계를 흔드는 가장 큰 움직임 중 하나는 '탈중앙화'에 관한 부분입니다.
제 브런치에서 다루는 건 오히려 일부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 '탈중앙화'가 가상화폐의 모태가 되었으며, 지금 언급되는 수많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전 웹 3.0에 대한 글에서 가상화폐 예찬론자들이 웹 3.0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봤을 때는 웹 3.0이나 가상화폐 시장이나 전부 블록체인 기반의 변화라서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탈중앙화'를 이야기하는 관점에서는 무엇이 '진정한 탈중앙화'인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NFT', 'DAO', 'DeFi'등에 대해서 제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논조였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탈중앙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커뮤니티가 그들의 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를 한다는 것은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루나-테라 사태에 글을 올렸습니다. 가상화폐 폭락에 관해서 말이죠. 가장 큰 핵심은 '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탈중앙화'의 시스템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엇을 믿을 수 있는 건가요? 루나가 그렇게 크게 사고를 친 이후에야 '폰지사기'의 일종이라면서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걸까요?
결국 블록체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미래 지향적인 것들이 '가상'을 기반으로 구성됩니다. '가상'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죠. 즉, 가상의 것들을 기반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신뢰'입니다. 그리고 보통 그 신뢰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이유는 신용카드사와 연계된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신용카드사가 순식간에 부도를 내고 그 수많은 가맹점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너무 많은 신뢰를 강요당하기에 그 모든 것의 근거를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겁니다. 그게 사기의 시작이죠.
우리는 '희소성'이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을 희소하다고 하죠. 그리고 이런 희소한 것들은 가치의 상승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가치의 대부분은 필요성에 대비한 희소성을 지니는 물품들과, '필요하지 않은데 희소성'으로 가치를 발생시키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물 가치가 아닌 현상 가치의 개념에서 말이죠. 결국 이 시대에 희소한 것일수록 가치가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신뢰'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렇게 많은 것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데 신뢰가 희소할 리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신뢰'는 잘게 쪼개져서 파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전폭적인 신뢰라는 말은 사이비에 가까운 종교집단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에 대한 신뢰를 잘게 찢어서 수많은 구독과 좋아요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가 되죠.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투표를 합니다. 예전에는 대통령 하나만을 뽑았는데, 지금은 자치단체장, 기초의원, 광역의원에 교육감까지도 뽑아야 합니다. 그러한 한표 한 표는 우리의 잘게 찢어낸 신뢰의 조각들이라는 거죠.
문제는 이러한 신뢰의 기반인 '근거'가 갈수록 낮아지다 보니 잘게 찢은 신뢰 한 조각이라도 점점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겁니다. 가치가 올라가는데 왜 문제가 되죠? 그건 '거래 가치'는 올라갔지만 '실제 가치'와 괴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즉, 우리가 신뢰를 잘게 찢어서 뿌리더라도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는 '근거를 기반으로 한 믿음'으로 작동하는 가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고파는 그런 가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마음 깊숙이 믿는 무언가에 진심으로 '신뢰'를 주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요? 아니면 배신당해도 그만인 일시적인 '신뢰의 증거'따위를 가치와 거래해서 팔아치우고 있는 걸까요?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도는 사람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뽑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연령을 고려해보면 그게 앞으로 얼마나 가게 될지는 미지수죠.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뢰의 조각을 '파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신뢰'가 아니라 '투자의 증거'처럼 작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대부분은 '투기'를 진행 중이면서도 자신들은 '신뢰'에 의한 것이라고 표리 부동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방적인 신뢰에 대해서 보답받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사기'라고 부릅니다. 누군가를 믿었는데 그 믿음을 배신당하는 거죠. 예전 세대는 사실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사회와 세계의 범위가 지금처럼 넓지 않아서 자신의 '신뢰'를 줘야 할 대상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았고 그렇게 넓게 돌아다닐 일도 별로 없었죠. 그만큼 배신당할 일도 적었을 겁니다. 그래서 사기는 '친척, 친구, 가족' 등 오히려 가까이 있던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뢰를 잘게 찢어서 세상에 뿌립니다. 그리고 그 신뢰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크게 실망하는 반응이 없습니다. 배신에 생각보다 익숙해져가고 있는 거죠. 아이러니입니다. 하나하나의 신뢰 자체의 무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잘게 찢어서 뿌릴수록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뢰 전체의 가치는 올라가다뇨? 바로 이 모순이 지금 사회를 비틀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이제 '전폭적인 신뢰'나 '맹신' 같은 경우는 위에 말씀드린 '종교적 세뇌'같은 것이 아닌 이상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이념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일뿐입니다. 대부분의 가치는 인간의 신뢰가 만들어냅니다. '종교적 믿음'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현실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것들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종교적 믿음은 우리가 동그란 '원'이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단 한 번도 정의에 맞는 완벽한 원을 볼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정의에 따라서 상상만 할 뿐이죠. 우리가 원이라고 믿는 수많은 물건들은 미시적 관점으로 당겨서 보면 '수백 각형'이거나 '수천 각형'의 각진 도형입니다. 심지어는 표면이 들쑥날쑥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원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것을 원과 같다고 믿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원이 되는 것이죠.
가끔 3D 모델링에 대해서 개념적인 부분을 강의할 때가 있는데, 그때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거시적 관점에 의해서 삼각형은 원입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외로 대학생 정도 되었다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 멘털이 부서져 나가는 경우도 많더군요. 벡터와 넙스 등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한 작업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매트릭스의 빨간약'이라고 부릅니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결국 우리는 실제로 접할 수 없는 개념이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유사한 것을 신뢰하게 됩니다. '평등', '진보', '발전' 등등 셀 수 없는 개념들이 죄다 현실에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개념을 유사하게 이야기하면 거기에 사람들이 홀리는 것이죠. 그러한 방식으로 사기가 시작됩니다.
결국 우리는 가장 많은 사기를 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가장 많은 신뢰를 뿌리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죠. 자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엄청나게 많은 것에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리모컨을 누르면 전원이 켜진다든지,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면 당연하다는 듯이 글씨가 제대로 써질 것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죠.
옛날 사회처럼 직관적이거나 경험적인 믿음과 엄청나게 인과관계를 건너뛴 신앙의 영역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엄청나게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스마트폰에 적용된 기술들의 인과관계와 근거를 다 알아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일단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배신당하는 일이 있을 때는 이렇게 말하죠. '그럴 줄 알았어'.
불신을 전제로 한 신뢰사회.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가요?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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