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2)
우리 사회는 오히려 갈수록 신뢰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직접 경험해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이상, 신뢰에 의해서 정보를 취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한 때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 이외에는 믿을 수 없기도 했습니다. 특히 해외를 돌아다니며 넓은 세상을 보고 오면 뭔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했죠. 그러한 직접적인 경험은 확실히 특별한 무엇을 주기도 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충족이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가능성의 영역과 닿아있기 때문이죠.
예전에 봤던 예시가 하나 있습니다. 과연 시력이 2.0이 넘는 사람과 0.5인 사람이 볼 수 있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같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시력이 2.0인 사람이 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까요?
정답이야 없겠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충분히 더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0.5인 사람이 놓치는 어떤 풍경을 더 보게 될 가능성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꼭 더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더 디테일하게 봤다고 해서 더 아름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아름답게 보였던 것들이 미세하게 보게 되면서 거칠거나 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죠. '봐서는 안 되는 부분'을 보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보는 주체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사실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판단할 것인가는 약간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미에 대해서는 절대적 기준보다는 취향적 기준이 작용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저번 글에서 다뤘듯이 사람들이 더 순진하고 더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믿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죠.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이 다뤄야 하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제3의 물결'을 기대와 함께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가나 사회의 권력이 어떠한 정보의 통제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러한 정보의 빗장이 풀리면 그 권력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언론이 최고의 신뢰와 함께 자긍심을 갖던 마지막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통제당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언론의 로망 같은 게 있었죠.
모두가 예상했듯이 결국 정보는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쏟아져 나오던 정보는 통신속도와 매체 등의 발달에 떠밀려 엄청나게 가속화되었습니다. 한 때 신문과 뉴스로만 세상을 접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 창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과 포털, 커뮤니티 등이 거침없이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신뢰'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죠.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선생님은 '지식인'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네이버의 전성기였죠. 누구나 녹색창을 알고 있었고, 메일링 서비스 일인자에서 다음 카페까지 이어지며 우위를 점하던 다음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궁금한 것을 물어봤습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이 지식인에 병역면제와 관련된 불법적인 내용을 물어봤다가 그 기록이 남아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집단지성이 실현되는 듯 보였고, 사람들은 인터넷이 주는 정보의 광범위함에 열광했습니다. 말 그대로 인터넷은 '무엇이든 알려주는' 선생님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분위기는 바뀝니다. 이전에는 그러한 인터넷의 짧은 지식이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될 수 있었지만, 인터넷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 안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들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누구나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여,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아니 정말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은 전쟁터로 변합니다. 네이버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등장했던 다음의 '아고라'는 네이버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른 의미로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어떻게 봤을 때는 커뮤니티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고 볼 수도 있었죠. 결국 수많은 정보와 주장들은 인터넷 상에서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2007년 무렵이 가장 극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그와 함께 사람들은 인터넷 자체를 신뢰하기보다 자신들의 커뮤니티 성향을 따라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주장과 다툼뿐 아니라, 이전에는 너무나도 전문적이라 다루지 않던 정보들도 인터넷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은 유튜브의 약진이었죠. 동영상을 통한 설명은 이전에 글로만 해서 전달할 수 없던 전문적이거나 세밀한 정보까지도 전달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시청각적 자극이라 직관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유튜브의 예견된 성공에 의해 인터넷 콘텐츠 시장은 급변하게 됩니다. 돈 주고 배우기도 어렵던 전문적인 기술들도 유튜브로 공유하는 시대가 와버린 거죠.
물론 그와 함께 '거짓 정보'나 '사기꾼'에 대한 부분도 같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파워블로거'가 슬슬 '파워블로거지'라는 말과 혼용해서 사용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블로그의 정보 중 많은 부분이 돈을 받고, 또는 조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실태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믿고 거르는' 정보가 되기도 했었죠. 유튜버들 역시 '뒷 광고' 논란으로 비슷한 신뢰성의 문제에 직면한 일이 있고요. 그래서 한동안 '내 돈 내산(내가 돈 내고 내가 산)'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블로거든 유튜버든 아니면 지금 저와 같은 브런치 작가들이든 '대중적인 콘텐츠'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신뢰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뢰성을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서 '구독자 수'라든가 '좋아요', '조회수'등으로 간단하게 확인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전 글에서 그것들을 '신뢰의 조각'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쏟아지는 정보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에 무언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고, 대중이 준 '인증마크'와도 같은 '구독과 좋아요'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거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봅니다. 출근길에, 아니면 출근해서라도 유튜브와 SNS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접합니다. 사실 항상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보다 그냥 '오늘은 뭐가 없을까?' 하면서 눈에 띄는 콘텐츠를 터치하거나 클릭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내가 관심 있어서 한 번이라도 클릭한 내용은 알고리즘으로 남아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계속 스크롤과 클릭만 반복하더라도 내가 관심이 있는 콘텐츠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합니다. 이게 알고리즘의 승리를 의미하는 거겠죠.
한 때 포털 사이트가 최후의 승자처럼 보이던 인터넷 메인 페이지 시장은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메일은 그들의 생각만큼 의사소통에 중요한 수단이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파일 전송마저도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에 그 위치를 조금씩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이메일은 유효한 연락의 수단이지만 매일 들어가서 이메일을 체크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포털사이트를 메인 페이지로 쓰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포털사이트의 핵심을 차지하던 언론과 블로그 포스팅의 신뢰 하락 문제도 한몫을 했죠.
낚시는 이제 강과 바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낚시'를 인터넷에서 경험합니다. 썸네일만 보고 들어간 유튜브는 가장 자극적인 한 장면이거나 또는 자극적인 제목을 재료로 낚시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너무 많은 자극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자극 이외에는 주의를 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극단적인 콘텐츠를 사용합니다.
수많은 사기꾼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실제로는 이뤄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것이야 말로 더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20%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가상화폐에 눈이 쏠리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그것이 논리적일 필요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은 불신하지만 신뢰합니다. 심지어는 배신당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신과 신뢰의 경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대놓고 공약은 거짓말이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거짓 공약을 내걸었던 정치인들도 그다음 선거에 버젓이 당선되고, 떳떳하게 돌아다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신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럼 불신하는 대상을 무엇을 보고 뽑는 걸까요? 무엇을 보고 우리는 '신뢰의 조각'인 표를 다시 주게 되는 걸까요? 그건 '약속'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힘'에 대한 신뢰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강자라면 그들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강한 사람들을 지지했을 때 본인에게 이득일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즉, 불신과 신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뉴스라는 매체는 불신하지만 특정 뉴스는 신뢰한다던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불신하지만 특정 유튜버를 신뢰하기도 합니다. 전체와 부분의 속성이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시처럼 말이나 행동에 대한 신뢰가 없더라도 권력과 힘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신뢰의 대상이 정확히 뭔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죠.
최근 네이버 기사에 대한 감정 표현 요소를 바꾸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가끔 네이버 기사에 대해서 뭔가 의사를 표시하고 싶은데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댓글을 달 수 없는 것도 그렇지만 몇 가지 감정 표현 선택지 안에 제가 기사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 표현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차라리 좋아요 싫어요 두 가지라면 더 쉬웠을 겁니다. '싫어요' 표현을 없애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감정표현이 등장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감정 표현이 사실 그 안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좋아요' 역시 하나의 신뢰 표시입니다. 우리는 많은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지만 사실 항상 그 의미가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게시물에는 그 콘텐츠 자체가 좋을 때도 있고, 등장하는 대상들에게 대해서 좋아요를 누를 때도 있으며, 콘텐츠의 정보가 유익해서 누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좋아요로 대신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신뢰는 정확히 말하면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걸 한 가지로 바꿔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신뢰나 불신이 겹쳤을 때 어느 면을 보는가에 따라서 결국 '호' 또는 '불호'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얼마나 불신의 속성이 있든 말든, 사람들에게 어느 특정 부분이라도 '호'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신뢰의 증거'를 받아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무언가를 활용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생각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위에서 말한 네이버처럼 선택지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고민을 하게 된다면 사실은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아요'와 '싫어요'라는 극단적인 방향성으로 치환하는 것이죠. 투표가 표를 주느냐 마느냐로 갈리는 것처럼요.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걸까요? 사실 아주 옛날부터 이러한 신뢰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수많은 고민을 거쳐왔습니다. 제가 언급하기에는 제 배움의 짧음이 드러날까 싶어 넘어갑니다만, 적어도 수많은 이들이 사유와 실재, 사유와 존재 등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고대의 철학자인 플라톤의 우상론만 하더라도 그러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편견이나 믿음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이야기했죠.
옛말에 '삼인성호'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사람이 세명이면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죠. 사람들이 믿는 것은 그런 겁니다. 저번 게시물에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완전한 원의 정의에서 벗어나더라도 원과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원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 사람이 똑같은 것을 믿을 때 그것은 '그런 것'이 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비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적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뢰의 힘과 그 가치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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