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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Jul 29. 2022

인문학을 뭘로 가르친다고? (9)

게임이 거기서 왜 나와?

 언제나 좋은 것은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마치 프로그래밍 언어가 권한과 자율성이 높을수록 능력이 좋은 언어인 동시에 쓰기 어려운 언어인 것과 비슷하죠. 게이미피케이션은 교육에 있어서 매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로 부정적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게임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해서 게임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려는 다른 면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게임에 대한 논란은 최근에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게임의 폭력성, 선정성부터 중독성에 집중하여 게임을 악의 근원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관련된 사람들은 매번 게임 관련 논란이 나오면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죠. 하지만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게임은 '특정 대상층'을 제외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게임을 객체화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케이스들이죠. 










 흔히 'RPG'라고 쓰고 '롤플레잉'이라고 부르는 장르는 게임계에서 아주 오래된 장르입니다. 롤 플레이의 의미는 '역할 수행'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특정의 위치와 역할을 수행하여 진행하는 게임인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것들도 이러한 롤플레잉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 형태가 아닐 뿐이죠. 이러한 롤플레잉을 통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 해보지 못한 역할을 수행해볼 수 있습니다. 옛날 게임에서는 영웅적이거나 용사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복수에 불타는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RPG는 TRPG가 기 시초에 가깝습니다. 그걸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옮긴 것이죠.


 시대가 지나면서 대작 RPG들이 탄생하고, RPG와 시뮬레이션이 뒤섞인 장르들도 탄생합니다.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몰입감을 선사하고 더 탄탄하고 서사적인 내용을 다루기 시작했죠. 아직도 어린 시절 판타지 스타,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같은 게임의 캐릭터와 스토리가 기억나는 건 열심히 한 탓도 있겠지만 그 내용에 서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D에 도트로 찍힌 캐릭터로는 몰입이 어려울 만도 하건만 우리의 상상력은 그 갭을 메워줄 수 있었습니다. 게임 안에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도 있었고, 액션, 모험 등등 모든 요소들을 만나볼 수 있었죠.




 그 시절만 해도 게임의 영향으로 폭력성 이런 이야기는 그저 웃기는 소리에 가까웠습니다. 마치 피시방에서 갑자기 전원 내리고 분노 테스트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였죠. 게임이 갖고 있는 폭력성은 2D의 쪼가리들이 보여주는 제한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고 3D 그래픽이 그럴듯한 시대가 오면서 다시금 이러한 논란은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폭력적인 게임이나 선정적인 게임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큰 논란거리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논란인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콘텐츠에 비해서 '대상 연령층이 낮다'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TV 광고에서는 항상 게임을 어린아이들이 즐기는 모습으로 대상화했습니다. 누구나 게임은 아이들이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같은 시기에 게이머 연령층이 훨씬 높았던 일본의 광고를 비교해본다면 훨씬 더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게임은 아이들이 즐기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폭력성과 선정성 같은 문제가 나오죠.


 고작 30여 년도 안된 일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저에는 여전히 게임은 아동과 청소년층이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이죠. 스팀에서 열심히 게임을 구매하는 요즘 게이머들은 도저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대중의 인식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게임의 폭력성이나 잔인성은 실제로 영화나 다른 콘텐츠에 비해서 특별히 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되는 측면이 있죠.




 또 다른 측면은 게임이 갖는 상호 반응성에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른 영상매체들은 일방적 전달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비해서 게임은 참여 또는 조작을 기반으로 합니다. 물론 게임에 따라 정도는 다릅니다. 어떤 게임은 정말 깊게 관여해야 하는데 비해서 어떤 게임은 거의 구경만 하면서 선택지만 클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세계는 심오해서 그렇게 마우스로 선택만 하는 게임조차도 프로게이머가 존재합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바둑이나 장기, 포커와 같은 것들도 유사점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직접적인 참여에서 오는 몰입이 존재합니다. 흔히 마케팅에서도 자꾸 개방형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스스로 선택을 했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네'나 '아니오'로만 결정하다 보면 뭔가를 했다는 느낌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이 무언가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특정 즐거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발자들이 의도한 것이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다 하더라도 말이죠. 


전에도 말했지만 트롤은 관심을 먹고 삽니다.


 거기서 나왔던 것이 '트롤의 문제'입니다. 어떠한 게임도 트롤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인간이 항상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관찰된 시점에서 이미 예견된 부분입니다. 심지어는 그게 드문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걸 '귀인 오류'가 아니라 '귀인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편향성으로 이야기해야 할 만큼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는 것이죠.




 사실 수많은 교육들은 이미 게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 교육을 위해서는 문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퀴즈'들은 이미 게임의 일종입니다. 우리에게 하여금 어려운 두뇌활동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죠. 아마 문제를 직접 출제해 본 사람들이라면 더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는 메커니즘은 결국 문제를 푸는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고하게 될 것인가 유추하여 설계됩니다. 그리고 정확히 모를 경우 하게 될 실수까지 같이 설계하는 것이죠. 물론 종종 오류가 나기도 합니다. 그 문제 출제 역시 사람이 한 것이다 보니 그런 부분이 생기죠. 


틱택토는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실 게임은 일상생활과 선을 명확하게 지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보도블록을 걸어가면서도 새로운 게임을 생각해냅니다. 보도블록의 가장자리만 밟고 가는 게임이라든지 한 가지 색깔만 밟고 가는 것 같은 게임들을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종류의 일이나 반복 작업들도 숙련된 움직임을 통해서 재미를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흥이 나도록 스스로 BGM(back ground music)을 만들어서 부르곤 하죠. 우리는 그걸 노동요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게임이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면이 현실과 겹치는 케이스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관찰하거나 내보이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을 겪거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자신은 좀 더 멋있거나 다른 무언가가 있길 바라는데 자기 자신이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면 크게 실망하거나 자기 자신을 감추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주 발생합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같은 '이상적인 창조물'들과 현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오로지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러한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역할 수행 놀이'의 핵심은 게임적 요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넷 상에서는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떠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는데, 심지어 모바일 세대라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부분이 게임이 광의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의 위험함이죠. 협의의 의미의 게임만을 본다면 커뮤니티는 '스토리 콘텐츠'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범'에서는 비껴나갑니다.










 사실 게임은 굳이 교육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게임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NFT와 같은 블록체인 기반의 모든 것들은 결국 게임으로 몰려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유튜버로 갈아치워지고 있고 그 유튜버 중 많은 영역이 게임 스트리머입니다. 게임에 유리한 스마트폰과 패드를 넘어서 게이밍 노트북의 무게가 휴대 가능한 2kg이 안 되는 수준으로 나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날붙이는 쓰는 사람이 어떻게 주의하며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흉기가 될지 유용한 도구가 될지가 문제이듯, 게임도 어떻게 사용되는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성에 따라서 증폭시키기도 하고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모든 게임이 사람을 망가뜨린다면 게임 스트리머가 저렇게 인기 있을 리가 없겠죠. 오히려 게임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모두에게 공감이 가능한 체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에 교육요소를 억지로 밀어 넣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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