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보라서

누구 2회차이신 분?

by 게인

운전하는 사람들은 운전하고 2-3년 차를 위험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1-2년 정도 사고 안 나고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자신이 운전을 잘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자기 자신의 운전 실력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 그래서 그 시기가 가장 사고가 잘 나는 편이다. 그리고 나더라도 크게 난다. 자잘한 사고가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타게 된 차는 마티즈였다. 심지어는 내 차도 아니었고 당시 여자 친구가 언니에게서 받은 차였다. 2001년형 빨간색 수동 마티즈. 문제는 면허를 딴지 2년 째였지만 그동안 한 번도 운전을 해보지 않아서 엄청 낯설었다는 점이었다. 그건 나뿐 아니라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마치 장내 주행코스 같은 코스가 주변에 있었다. 차량을 30km 이하로만 계속 몰아야 하는 곳. 바로 대학교 교내였다. 차를 학교에 등록시키고 무려 3달 정도를 외부에 나가지 않고 교내에서 셔틀버스 타듯이 타고 다녔다. 내가 사는 곳도 학교 근처 월세집이었고 여자 친구도 학교 기숙사에 살 때라, 학교 이외에 크게 갈 곳이 없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생 대학교 안에서 셔틀버스처럼 운전할 게 아니라면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던 학교 선배들은 마침 자기가 어디 갈 일이 있는데 내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내가 도로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운전은 언제나 처음이 있는 거라면서. 4년 선배들이었지만 워낙 형처럼 친하게 지내는 선배들이기도 했고, 다들 자기들도 운전면허는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믿고 출발해 보았다. 도로주행 연수받던 시절 이후에 처음 나오는 도로. 거기다 차량은 귀여운 작은 빨간 마티즈에게 도시의 차량들은 냉혹했다. 깜빡이를 켜도 신경도 쓰지 않았고, 혹시라도 시동을 꺼트릴까 천천히 진입하는 나에게 클락션을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가를 올라가다가 결국 사달이 났다.


애초에 운전면허 시험에도 언덕에서 멈췄다 출발하는 파트가 있었다. (그때는 운전면허 간소화가 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파트를 가장 힘들어하던 사람이었다. 그 클러치 페달을 반쯤 놓고 '반클러치'라는 개념이 초보인 나한테는 참 힘든 거였으니. 그리고 고가도로의 언덕, 거기다 저녁 퇴근시간대의 러시아워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눈치 없는 빨간 마티즈는 시동이 꺼져버렸다.


지금 와서야 실소가 나오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힘없는 마티즈에 20대 건장한 남성이 4명이나 타고 있었다. 거기에 고가도로도 일반적인 고가가 아닌 올라가면서 급격히 회전하는 고가도로였다. 꺼진 시동을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겨우겨우 살리고 반클러치를 하겠다고 브레이크에서 슬슬 발을 떼는 순간 차가 뒤로 쓰윽 밀리는 느낌. 나도 모르게 다시 브레이크를 콱 밟아버렸다. 그럴수록 뒤에 차들은 가득 쌓여있고 나와 뒤차의 간격은 줄어들고... 그만큼 내 수명도 줄어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자리를 어떻게 벗어났는가는 기억에 없다. 기억이 돌아온 건 내가 첫 주행으로 번화가 어딘가 뒷골목에 주차를 하고 난 뒤였다. 출발할 때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원래 다 처음은 있는 거라던 선배들도 중간부터 긴장감에 말이 줄었고, 심지어 중간에 4단 변속 실패로 미션이 갈리는 소리를 들은 이후에는 다들 말이 없었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나는 그날 차를 거기에 버려두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음 날 낮에 결국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서 차를 찾아왔지만 오는 길에도 시동을 한 번 꺼트렸다. 그게 내 첫 도로 주행이었고, 그 뒤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또 한 2주간 도로를 못 나가고 대학교만 돌았다. 결국 그래도 그 한 번 이후에 나는 도로를 나갈 수 있었고, 트라우마였던 4단 변속을 하기 전까지는 시내에서 3단 넣고 80을 밟는 이상한 차였다. 모르긴 몰라도 폐차할 때까지 탔던 그 마티즈가 그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난 건 그 시절 내가 말도 안 되는 혹사를 자주 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처음 도로를 나가고 나서 가장 후회했던 것, 그리고 돌아와서 처음 했던 것은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를 뒤에 붙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대학교 내에서만 운전하던 나에게 초보 스티커는 별 필요 없었다. 30km 도로에서 초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교내에서는 2단 기어로 충분해서 3단도 잘 안 넣었다.




우리는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초보라고 하면 타인이 나를 무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초보운전이면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본인 스스로 초보운전이라는 것을 선언했기에 타인이 이해해주는 측면도 있다. 나만해도 갑작스레 끼어드는 차량을 보면 정신이 아찔하지만 뒤에 붙은 귀여운 문구들을 보면 아무래도 한 단계 가라앉기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초보운전인 시절은 있다. 면허는 시험을 거쳐서 나오는데 우리는 나이만 먹으면 성인이 된다. 아무도 우리에게 '어른이 되기 위한 시험'을 해보고 '어른 면허'를 지급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이가 되면 지급한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다. 마치 도로에 처음 나오는 자동차들처럼.


그게 두려워서든 아니면 상황에 따라서든 우리는 다시 학교로 숨어버린다. 전공을 위해 공부를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대학생의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아직 책임질 준비가 안되어있다. 하지만 내가 마티즈로 그랬듯이 30km 도로에서 아무리 뱅뱅 돌아도 도로 운전은 아예 다른 영역이다. 대학교 안에서야 내가 차를 끌고 돌아다니니 뭔가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선배 같았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 구역에서만 어른인 척하고 있던 셈이다.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삶을 혼자서 운전할 자신이 없을 때, 우리에게는 '초보운전'이 필요하다. 타인들이 초보운전이라서 양보해줄 수도 있고, 중간에 시동이 꺼져도 배려해줄 수도 있다. 물론 막히는 시간대에 앞에서 꽉 막고 있으면 좋아할 리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초보운전 마크를 보고 클락션을 두 번 누를 걸 한번 누르기라도 한다. 심지어 나도 주차장에서 초보운전을 단 사람이 T자 주차를 못해서 대신 주차를 해준 적이 있었다. 막고 있는 것은 짜증 났지만 초보운전이라고 인정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그리 냉정하지 않다.




누구나 인생은 초행길이다. 사실 우리의 운전도 오늘과 내일 같은 도로를 나가더라도 다른 차들을 만난다. 바닥의 상태가 다를 수도 있고, 오늘은 어딘가 공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달리지만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 있을 일을 어제 완전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초보운전이 아닌 건 모든 일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는 아니다. 그럼 우리는 언제 초보운전 딱지를 떼어야 할까?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연수를 하고 있는 운전면허학원 자동차가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그 차를 피해서 간다. 그건 그 자체로 "초보운전"의 결정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차에 빵빵거리느니 우리가 알아서 피해 간다. 그런데 그런 차들이 여러 대가 동시에 나타나서 길을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초보운전이니 충분히 이해해주게 될까?


우리가 '초보운전'에게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적당한 비율이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50%가 초보운전을 달고 있다면 나는 과연 초보운전에게 양보를 하게 될까? 아니면 초보운전이라는 말 자체를 불신하게 되는 걸까? 우리의 양보는 여유의 범위 안에 있다. 그리고 그걸 넘어서면 관용은 생각보다 줄어든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운전을 하는데 '못'하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운전을 오래 한 사람들은 금방 느낀다. 이 사람이 못해서 운전을 저렇게 하는지, 아니면 그냥 운전 매너가 더러운 건지. 운전 매너가 더러운 차들을 만나면 그냥 짜증을 내고 넘어갈 수는 있는데, 초보운전을 달고 운전을 못하는 게 아니라 더럽게 하면 정말 화가 날 때가 있다. 아마 그들이 초보운전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그들이 초보운전이라고 속이며 대접받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그런 실험이 있었다. 외국에서 진행했던 실험이었는데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꼭 필요한 사람만 떼어가라고 하면서 현금을 붙여놓은 실험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고 지나치기도 하고 돈을 떼어가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고가의 명품백을 메고 지나가던 여성이 돈을 떼어갔던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저런 것을 탐내는 것이 문제라는 사람들과 필요하다는 기준은 본인한테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측의 대립이었다. 이게 갑론을박이 되는 이유는 둘 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성, 가난함, 미숙함 이런 대부분의 기준들은 명확하지 않다. 초보운전을 언제까지 달아야 하는지 누가 명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몇 년을 타면 초보가 아니게 되는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가난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더 하다. 누군가는 당장 어렵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보다 많이 벌면서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그걸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여유가 없는 사회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잣대가 주관적이다. 내 기준은 오롯이 내 기준일 뿐이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자신보다 돈 많은 사람들에 비해 가난하다고 생각하며 세금도 떼먹고 의료보험료를 떼먹기도 하고, 아직 초보를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자신이 '프로'이거나 '전문가'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누군가는 '청년'이라는 이름을 인생의 '초보운전'처럼 달아놓고 20년 가까이 우려먹기도 한다.










아무도 인생을 처음부터 익숙하게 살지 않는다. 웹소설이라도 되면 인생 2회 차 이야기라도 하겠는데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길은 처음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어색하고 멈칫거리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사실 인생의 초보운전 스티커는 우리가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떼어버렸다. 초보라서 두려운데도 세상은 이미 나에게 뒤에서 클랙션을 빵빵거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앞 좌석 창을 내리고 팔도 걸쳐보고 나란히 선 다른 이들에게 눈에 힘도 줘보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 빵빵거리는 건 길이 좁고 모두 다 같은 길만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빵빵거리는 사람도 가다가 시동을 꺼트리는 사람도. 누군가는 조금 더 빨리 능숙해지고, 누군가는 샛길을 발견하기도 하며, 처음부터 좋은 차를 타고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는 초보운전일 뿐이다. 먼저 출발했던 부모의 등을 보고 달리다가 나란히 서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초보운전이 시작될 뿐이다. 딱지는 떼어버렸지만 평생 끝나지 않을 초보운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