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은 말이 많다

그 말을 믿은 순간 당신은 사기를 당한 거다.

by 게인

제목의 명제는 거짓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적은 것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은 진실과 별개로 사실이 된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가르치는 일을 오래 했기 때문이라는 건 변명이고, 나와 친한 사람들은 거의 다 원래부터 내가 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 때문에 사기꾼이 말이 많다는 것을 변명해주려는 것은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나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말이 없던 사기꾼과 말이 많던 사기꾼을 만났다면 누구나 말이 많던 사기꾼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기억'이 존재할 테니까.


거기다 영업직을 '사기꾼'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치한다. 나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말로 커버하려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많은 사기꾼'에 대한 기억이 자주 겹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말없는 사기를 더 많이 당한다. 말이 없다는 것은 '정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행동이나 외모 등 여러 가지 다른 정보들이 존재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은 없다. 실제로 말이 많으면 그 사이에 허점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말이 많을수록 사기가 들통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실제로 말이 많은데 사기가 성공한다? 그 사기꾼은 '잘하는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즉, 말 많은 사기꾼은 두 가지 유형이다. 말이 많아서 들통 나 버린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유려한 말솜씨로 사람을 홀리는 사기꾼이거나. 그래서 말이 많은 사기꾼은 어떤 방향이든 기억에 남아버린다. 그런데 말없는 사기꾼은 기억에 없거나 아니면 심지어 사기를 당했다는 것조차 모를 때도 있다.


'사기꾼이 말이 많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 사기꾼이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이 많아야만 관심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말이 많다. 만일 누군가가 어차피 사야 할 물건을 사는 것이라면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럴 경우에는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런 사기가 진짜 잘되는 사기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후관계를 뒤집어서 유추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기꾼은 말이 많다'는 명제가 사실이 아님에도 이미 그렇게 믿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그걸 뒤집어서 이야기한다. '말이 많으면 사기꾼'이라는 완전히 벗어나버린 명제로 말이다. 과묵하거나 진중하다며 말이 없는 사람을 포장한다.




절대로 내가 말이 많아서 억울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낯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 누구에게나 말을 많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대화 상대'다. 타인의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티키타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말을 많이, 그리고 잘하려면 그만큼 타인의 이야기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말이 많기만 하다면 상대방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다 이야기가 핵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빙빙 돌아서 들어간다면? 더욱 그렇다.


위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말이라는 것은 '정보'다.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판단할 여부를 준다는 것이다. 내 말에서 거짓을 발견한다면 누군가는 나를 사기꾼 취급을 할 것이다. 아니면 의견의 차이를 느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반박에 내가 쩔쩔맨다면? 그건 내가 사기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별로 없다. 애초에 대화를 할 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이미 사기를 친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진짜'인 사기꾼들은 심지어 '거짓'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만 돌려막기를 해도 사기는 충분히 성립이 가능하니까.


말이 많은 사기꾼은 금방 들통이 난다. 어떤 정치인들은 토론이나 대화를 두려워한다. 자기 자신의 얄팍함이나 거짓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사기를 친 정치인 중에서 말이 없던 정치인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말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이 거짓을 말하거나 사기를 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정보를 통해서 우리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말이 없다는 것은 사기의 기본 조건이다. 정보를 주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기꾼은 말이 많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다들 엄청나게 많은 사기를 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기를 칠 때 '사기꾼은 말이 많다'라고 해야만 유리하기 때문이다. 몰라서 입 다물고 앉아있지만 진중한 것으로 포장도 가능하고, 말을 잘 못해서 안 하고 있지만 침착한 것으로 포장한다.


실제로 나는 의외로 말수가 적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이 많다고 기억하는 것은 내가 '필요한 순간'에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말이 없으면 어색해지는 순간이나, 여럿이 모였는데 이야기가 진행이 안될 때나,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아서 정리가 필요할 때나. 그러다 보면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 되어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의도적인 생략'을 많이 했는데 그랬더니 건방져 보인다는 의견이 있어서 그만뒀다.




사람들은 사실은 알고 있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잘한다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말이 많다'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함축해놓은 것이라는 것을. 필요한 말을 잘 설명하거나 많은 것을 조리 있게 연결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부러워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 그들을 '사기꾼'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실제로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과 '말이 많은' 사기꾼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 결과를 한 때 전 국민이 애청하던 100분 토론에서 많이 봤다. 결국 뒤로 갈수록 '사기꾼'과 '사기꾼' 구도가 많이 나와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욕이나 하고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BJ가 인기가 좋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지하고 조리 있는 삶을 살지 않는다. 길거리, 술자리, 모임 이런 곳을 돌아다녀 봤다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그래서 진지해져야 하는 순간이 아니면 말 잘하는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더 좋다. 아마도 이제는 정치도 사람들에게 진지해져야 하는 문제가 아닌 가보다 싶긴 하다.








얼마 전 자소서 합격하는 법에 대해서 웃기는 글을 봤던 기억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누가 대기업 자소서를 확인하던 중에 '외국에서 원주민 17명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써놔서 너무 궁금해서 무조건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한 트위터 내용이었다. 그리고 커뮤니티 댓글에서는 "저를 뽑아주신다면 다음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뽑힐 거라며 '세헤라자데가 이렇게 살아남았구나', '취업 야회'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심지어 나도 그 내용이 궁금할 정도다.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실 말도 좋아한다. 말이 많은 사람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보통 그건 그 사람이 말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다. 말 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정말 천일야화처럼 이어진다 하더라도 더 듣고 싶다. 나 자신도 나 스스로의 컨디션 체크를 할 때 얼마나 이야기를 조리 있게 잘 정리해서 지루하지 않은 템포로 전달할 수 있는가를 본다. 그게 안 되는 날은 내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 날이다.


쓸데없는 정보지만 내 글이 길지만 이건 내가 말하는 것의 반의 반도 안된다. 나는 3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하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