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일하고 나서 놀기?
사람의 뇌는 즐거운 일을 하고 나면 즐겁지 않은 일에 대한 효율이 떨어진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가끔 나오는 소설의 클리셰 중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어. 어느 것부터 들을래?"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즐겁지 않은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즐겁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에게 급여를 물어다 주는 소중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침이면 항상 즐겁고 상쾌하기를 원한다.
즐겁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가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실상은 정 반대다. 아침을 상쾌하고 즐거운 일들로 채우고 나면 그 이후에 해야 하는 '재미없는 일'들은 훨씬 재미없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일명 '모바일 세대'에 가까운 우리는 아침에 식사하면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유튜브와 웹툰, 웹소설을 놓칠 수 없다. 하루 중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은데 즐거운 일을 하는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침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면 정말 재미가 없다.
물론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 일이 더 즐거운데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워커홀릭'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농담이고, 실제로 의외로 반복적인 작업을 하면서 묘한 재미를 발견할 때도 있다. 업무가 즐겁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다.
여하튼 그래서 보통은 해야 할 머리 아픈 일들을 오전에 먼저 하고 오후와 저녁시간을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휴식으로 보내는 것을 원한다. 그런데 그렇게 오전에 뭔가 일을 하려고 하면 아침에 재밌게 봤던 유튜브의 드라마 미리보기가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읽다가 만 웹소설은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만일 오전에 시작해야 하는 일이 당장에 끝낼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떨까? '완결'이 있는 일들은 먼저 처리해놓고 다음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작업들은 기간이 길거나, 빨리 끝나지 않는 작업들인 경우가 있다. 아니 사실 많다. 우리가 반나절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경우는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프로젝트를 하든 어떠한 업무처리를 하든 내가 맡은 범위가 작다면 그 범위만 하고 끝을 낼 수야 있겠지만 담당자나 또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먼저 처리해놓고 더 쉽거나 더 즐거운 일을 하고 싶지만 끝낼 수 없기에 재미없는 일을 먼저 시작하면 피곤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결국 아침의 즐거움에서 오전의 빠져나올 수 없는 답답함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우리를 속 터지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극명한 대비 효과는 종종 기분을 더 망가트리곤 한다.
사람들은 종종 놀고 나서 일을 하는 방향을 택한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노는 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이지만 드라마든 웹서핑이든 웹툰을 보는 것이든 우리는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 물론 멈추고 나서도 생각이야 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중의 즐거움'같은 측면도 있다. 그에 비하면 일은, 특히 하기 싫고 작업 기간이 긴 일들은 빨리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내가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 없거나 손대면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놀고 나서 일하는 방향을 선택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단 놀고 나면 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다. 특히 그 일이 빨리 끝날 수 없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이렇게 선명한 대비 효과라니. 괜히 사람들이 '뇌를 비우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즐거움으로 가득 찬 뇌는 지루함과 답답함을 만나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날린다.
그게 우리가 적당한 양의 일을 정하고 그걸 소화할 수 있는 양으로 잘라서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어떠한 종류의 일들 (특히 두뇌로 하는 노동은) 그걸 정하기 힘들다. 글을 쓴다든지,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건물을 짓는 일을 예를 들자면, 공사가 들어가기 시작한다면 그 후로는 얼마든지 조금씩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다. 하루에 이만큼씩, 이만큼씩. 그런데 이건 공사가 시작된 이후다. 사람들은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이 시점부터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는 시점은 따지고 보면 건물을 짓는 일의 30% 이상이,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이상이 진행된 이후다.
어떤 건물을 지을지, 그리고 그 용도와 구상에 맞는 건물을 짓는 특징과 외형, 내부구조를 정하고 안전을 위한 하중 계산까지 다 끝나서 건축에 대한 도면과 스케치가 완전히 끝나지 않으면 건물을 짓는 일은 시작될 수 없다. 실제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그다음이니까. 그런데 이러한 건물을 설계하기 위한 디자인과 구성이 과연 하루에 일정 부분씩 잘라서 하기 쉬운 일일까?
창의적인 두뇌 노동은 그렇다.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내는 것을 시간을 두고 그 시간만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뇌는 내가 쉬고 싶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뇌에서 빨리 떠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뇌가 연결되면서 아이디어가 생각나기도 한다. 결국 두뇌 노동에 길들여지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이상한 상황이 오게 된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린다든지, 다른 방향을 찾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직장'을 다닌다. 그래서 정해진 업무시간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획이나 창의적 활동에서도 시간을 끊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게 시간적 효율성은 있을지 몰라도 일을 '잘' 하는 지름길은 아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대부분의 기획회의가 마라톤 회의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어이없게도 기획할 때 야근이 많이 발생한다. 굳이 자료만 맨날 뒤적이지 않아도 우리의 머리는 맹렬히 회전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심지어는 억울하게도 야근에 잡히지도 않지만 머릿속은 일하고 있다. 재미와 두통이 공존하는 업무를 말이다.
오늘도 머리 아픈 오전을 보냈거나 멍한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여러분이 계획을 잘못 세웠거나 잘못된 패턴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느라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나면 오히려 오전 업무를 하는 게 더 즐거울 수는 있지만 그건 계획에 의한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대로 살 수 있는 시기는 인생에 생각보다 길지 않다. 보통은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패턴이 발생하고 그 패턴이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루한 패턴이 생기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음악시간에 강-약-중강-약 이런 리듬을 배우지 강-강-강-강 이런 식의 리듬은 배워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리듬으로 살고 있으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 리가 있나.
그래서 부모들은 피곤한 와중에도 애들을 재우고 '육퇴'후에 바로 잠들지 못하고 서성인다. 고된 육아 후에 뭔가 즐거운 시간이 온다면 그것만큼 달콤한 것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