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목적이 언제나 의도한 결과를 갖는 것은 아니다
첫째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TV와 함께 보냈다. 부모로서 우리의 나름대로의 각오는 핸드폰에 익숙해져서 밖이든 안이든 핸드폰만 찾는 아이를 만들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부모가 있을 때만, 그리고 맞는 것을 틀어줬을 때만 볼 수 있는 TV 쪽을 택했다. 그리고 왜 수많은 부모들이 여전히 뽀로로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덜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보여주려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TV로 봤던 몇 개의 프로그램은 선택에 실패하기도 했다. 폭력적인 것도 없고 사랑스러웠지만 '대화'가 존재하지 않아서 아이가 잘 말하던 것을 갑자기 말 대신 TV에 나온 소리를 따라서 하는 바람에 안 보게 된 애니메이션처럼.
하지만 결국 아이가 커가고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을 원하기 시작하면서 요구 조건이 점점 복잡해졌다. 대화가 통하려면 같은 애니메이션을 봐야 했으니까. 거기다 어린 동생이 생겼는데도 동생의 생각을 해주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 만을 보기를 원하면서 점점 문제는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몇 번을 핸드폰을 줄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우리가 끙끙 헤매고 있는 동안 매년 여름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 통학하는 게 어려워졌다. 구립 어린이집의 수많은 장점을 상쇄하는 유일한 지점이었다. 통학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는 것. 처음에는 참고 유모차든 자전거든 태워서 통학했지만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 선택지는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옮기는 건 아이가 몇 년째 다니던 좋은 관계의 어린이집을 떠나야 하는 결정이었기에 아예 선택지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어린이집 근처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어린이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결정했다. 그건 바로 TV를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쓰던 TV를 버릴 순 없었다. 우리가 쓰는 TV도 우리와 얽힌 아주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가 있는 물건이라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TV를 내 사무실 겸 작업실로 넘기고 우리는 TV가 없는 생활로 넘어갔다. 어린이집에서 첫째가 책을 곧잘 읽는다고 칭찬을 듣는다지만 집에서는 자꾸 TV를 보려고 하는 것을 막아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 우리의 생각은 한 가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그건 코로나19라는 상황이었다.
두 명의 아이가 둘 다 어린이집을 갈 때는 TV가 없어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든, 엄마 아빠하고 몸을 놀든, 놀아줄 것은 오히려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에 의해서 어린이집이 자꾸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한 것을 넘어서 야외 활동 자체가 안되는데 내부에서 TV조차 없으니 아이들을 버텨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항복했다.
우리는 휴대폰을 아이에게 거의 보여주지도, 쥐어주지도 않고 있었지만, 우리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모바일 환경에 상당히 익숙했다. 심지어 첫째보다 두 살 어린 사촌동생도 핸드폰에서 자기가 원하는 동영상을 찾아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경험의 일부를 빼앗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합의점으로 태블릿을 주기로 하고 아이들이 쓰기 좋은 태블릿을 하나 장만했었다. 이사 가기 1년 전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TV가 있을 때는 아이는 도통 태블릿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굳이 필요가 없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산지 1년이 다되어 가도록 방치된 상황이었다. 아깝다고 내가 가져다 쓰려고도 몇 번 했지만 나도 타이핑 위주의 작업이 많다 보니 굳이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해서 중간에 붕 떠있는 상태였다.
TV가 없는 코로나 생활의 합의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그 태블릿이었다.
둘째는 너무 어려서 부모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데 첫째가 계속 불만이 쌓이고 코로나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우리는 결국 태블릿에서 유튜브와 OTT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결이 되었나 싶은 것도 잠시. 이번엔 둘째와 둘이서 보고 싶은 것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엔 정말 작업용으로 준비했던 내 태블릿마저 뺏기고 둘이 하나씩 태블릿을 차지하고 보게 되었다.
그래도 둘이 하나씩 태블릿을 보면 적어도 30분 정도는 집안일을 처리할 수 있는 짬이 생겼다. 둘째가 아직 어려서 눈을 떼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돌보게 되면 도저히 태블릿이 없으면 집을 치우거나 설거지라도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변명 같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탭을 보는 시간을 제한하면서 탭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합의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몇 달 흐르자 점점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태블릿을 장시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점점 떼를 쓰기 시작했다. 태블릿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 노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특히 첫째는 유튜브를 보게 되면서 가끔 언어 사용이나 행동에서 우리와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었고, 결국 우리는 다시 고심에 빠졌다.
태블릿이 없이 두 명을 동시에 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둘의 나이차는 4살. 이제 갓 두 돌인 동생은 아직 언어가 완전하지 않았고 일곱 살인 오빠는 물건을 입에 넣고 던져버리는 동생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둘 다 부모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모는 계속 둘째를 위주로 케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첫째는 그게 계속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둘을 동시에 봐주는 방법은 태블릿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계속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태블릿의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첫째를 넘어 이제는 둘째도 태블릿을 보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결과가 점점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애기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책을 보거나 청소를 하면 보여준다든지 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할머니는 손수 만든 받아쓰기를 하면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해당되는 것은 첫째뿐이었고, 둘째가 보여달라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둘째는 보는데 첫째는 안 보여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째가 정도를 넘어섰다.
전에는 일어나기 싫어서 뒹굴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엄마가 일어나기 전까지 몰래 탭을 꺼내서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탭을 꺼내서 엄마를 새벽같이 깨우면 새벽잠이 많은 엄마는 잠결에 그냥 보라고 하는 것을 놓치지 않은 예리한 플레이였다. 졸지에 첫째는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일어나는 아이가 되었다.
점점 심해져가는 태블릿에 대한 집착을 끊으려고 강하게 이야기를 해봤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반발만 심해져가는 것을 보면서 이러다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특히 원래는 책을 자주 읽던 아이가 태블릿과의 교환조건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본인이 읽던 책들보다 더 쉽고 간단한 책을 말 그대로 '읽기'만 하고 넘어갔다. 내용이 뭔지는 물어봐도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파다했다. 태블릿과 독서의 교환조건은 오히려 독서의 조건조차 무너트리고 있었다.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우리끼리 끙끙 거리며 고민했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일단 탭을 끊는 것은 포기했다. 아이들이 탭을 못 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어느 정도 중독이 아니다 하더라도 그와 유사한 느낌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지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독서에 대한 유인책도 포기했다. 아주 예전에 TED 강연에서 대가성의 지급으로 강화된 독서에 대한 습관은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강연을 본 기억이 있다. 결론까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적어도 우리의 상황을 봤을 때는 대답은 '아니다'였다. 독서라는 '행위'에 맞춰진 초점은 내용을 주의 깊게 보는 독서를 배제하고 있었다. 결국 독서를 강제하는 것도 포기했다.
나는 오히려 육아와 관계에 포커싱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의 타협이었다. 그래서 오빠가 동생과 잘 지내고 잘 돌볼 수 있다면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집안일이라도 할 수 있고, 첫째에게도 조금은 더 책임감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했다. 동생을 보살핀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었고, 나는 거기서 아이에게 어떤 인문학적 경험이 발생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둘째를 데려다 놓고 두 아이에게 약속했다. 동생과 놀아준다면, 동생을 돌봐준다면 그 시간만큼 탭을 보여주기로.
그리고 아이들은 거짓말처럼 태블릿을 끊었다.
첫째는 동생이랑 노는 것을 도전했지만 1분도 안돼서 포기했다. 내가 몇 번 독촉해서 몇 번의 시도를 더 하긴 했지만 전혀 동생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에 본인도 난감해했다. 그리고 내가 동생이랑 놀아주라고 하면 책을 읽고 싶다면서 독서를 시작했다. 몇 번 동생이랑 깔깔 거리며 같이 놀기도 했지만 동생이 몸을 던지면서 놀기 시작하면 감당을 못했다. 그래서 같이 노는 시간은 5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첫째는 탭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는다. 둘째도 오빠랑 같이 못 노니까 탭을 못 본다는 것을 어느새 이해했다. 첫째가 어쩌다 탭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그럼 동생이랑...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냥 책을 보거나 만들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쪽을 택한다. 탭을 끊는 것을 포기한 거였는데 지금까지 우리의 고민은 대체 뭐였단 말인지...
아직도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탭을 보여줄 테니까 제발 동생이랑 놀라고 사정사정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동생하고 노느니 탭을 포기하고 오히려 다시 책에 취미를 붙이는 눈치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