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밑의 보물창고

by 게인

나는 정리를 '자주' 하지 않는다. 정리를 못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일단 손에 닿는 곳에 물건을 놔두는 습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어디서 책상을 쓰든 둘 중 하나다. 책상에 물건이 늘어져 있거나 아니면 아예 책상 위에 물건이 거의 없다. 일정 임계치에 다다르면 어느 날 싹 정리를 하기 전까지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










서랍은 책상 위보다 더 개인적인 공간이다. 서랍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보관하고 싶은 것'들을 모으는 장소다. 그런데 그 보관하고 싶은 것들의 기준이 분류체계에 딱 떨어지라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 적어도 최소 하나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넘쳐나는 서랍이 생겨난다. '놔두고 싶지만 딱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찬 서랍 말이다.


잘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쓰던 책상 서랍을 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랍이 있었다. 내 서랍이 몇 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기도 했다. 서랍은 언제 쓰게 될지 모르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모아놓고 싶은 것들을 모아놓는 용도였다. 결국은 그중 대부분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학교 때 쓰던 일기장, 어릴 때 과자를 먹고 모았던 카드들, 예쁜 액세서리,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 언젠가 사용할 일이 있을 줄 알고 넣어놓은 예쁜 메모지, 기한이 끝나버렸지만 여행의 추억이 담긴 여권, 심지어는 연도별로 모아놓은 동전도 한 뭉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게을러서가 아니고?) 나는 그런 것들을 정리하기보다 전부 서랍에 넣어서 보관한다. 그리고 가끔씩 그 서랍을 열어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마치 목이 마르지 않아도 냉장고를 의미 없이 열어볼 때처럼 서랍을 열어 볼 때가 가끔 있다. 지금 열어보지 않고도 뭐가 들었는지 줄줄이 써내려 간 것 같지만 열어보면 저기 적지 못한 수많은 잡동사니 보물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는 '작가의 서랍'에 글을 조금씩 쓰다가 쌓아놓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 쓴 글들이 아니라 아이디어나 제목만 적은 글도 많고, 적다가 바빠서, 아니면 적다가 생각이 꼬여서 놔둔 글들도 많다. 한번 정리해서 어떻게든 올려야지 생각은 하는데 쉽지 않다. 어찌 봤을 때는 반쯤 메모장처럼 쓰고 있기도 하다.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 없이 적어놓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다 보니 1월에 시작한 1년도 안된 브런치인데도 작가의 서랍 안에는 쓰다만 잡동사니 글들이 가득하다. 초반에 썼던 글을 찾으려면 한참을 스크롤을 내려야 한다. 보통 스크롤은 내리다 포기하기 때문에 아주 초반에 적은 글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른 작가들도 이렇게 하는지는 교류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내가 원래 서랍을 그렇게 쓰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


심지어 브런치 서랍에만 굴러다니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조금씩 들이기 시작했는데, 말이 메모지 거의 낙서장에 가까웠다. 아무거나 생각나면 달랑 단어 하나라도 적어 넣는 걸로 습관을 굳히다 보니 지금껏 모인 쓸데없는 다양한 메모의 숫자가 수천 개를 넘어섰다. 메모의 특성상 버리기도 애매해서 점점 쌓이기만 한다. 나만 이러는 걸까?




서랍은 보관의 개념이지만 나에게는 수집의 개념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 책상 서랍 중 하나는 '장난감 서랍'이었다. 지금 우리 애들을 보면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나의 어린 시절, 없는 돈에 장난감이 많지 않던 시절에 모든 피겨 형태의 장난감을 모아서 내 서랍 중 하나에 보관했다. 좋게 말해서 피겨 형태의 장난감이지 사실 당시 100원짜리 플라스틱 캡슐 뽑기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고, 그게 아니면 1000원짜리 문방구에서 팔던 종이로 만든 게임에서 쓰이던 컴포넌트(말)인 경우도 많았다.


나에게 보물인 것들이 남들이 보기에도 보물은 아닐 수 있다. 심지어 나 역시도 그 시절의 보물이었던 그 장난감들이 지금은 보물은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고 서랍을 열어보면 먼지 쌓인 보물의 기억과 마주하고 그 기억이 그것을 보물로 포장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가치는 골동품이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면 점점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랍에 들어간 소중한 물건은 쉽사리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사실 서랍에 들어있는 보물들이 비교적 평범한 물건 들이라면 정말 소중한 보물(?)은 서랍 밑에 숨기곤 했다. 지금이야 굳이 숨겨야 하는 것도 별로 없고 개인적인 공간을 나름 가지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꼭 숨겨야 하는 게 있으면 서랍 밑을 애용했다. 얼마 안 됐지만 나에게는 전재산이었던 용돈을 숨긴다던가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숨겼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자.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겠지만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쓰던 일기장이나 부모님 몰래 빌려와서 보던 만화책 이야기다.












작가의 서랍을 쭉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맨 처음에 쓰던 글들도 나온다. 물론 그중 일부는, 아니 꽤나 많은 글들이 브런치에 쓰인 글들로 나갔거나 그 글들의 밑바탕이 되고 남은 글들이기도 하다. 비슷한 주제의 글을 몇 개 쓰다가 다듬어서 올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문제는 그 사이사이 끼어있는 내가 쓰고 싶었지만 애매하게 적지 못한 글들일 것이다. 그것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작가의 서랍을 한 번 뒤집어서 비울 필요가 있다. 잡동사니 사이에 끼어있으면 어릴 때의 책상 서랍처럼 점점 먼지 쌓이고 잊혀 갈 가능성이 높다.


서랍은 보통은 필요하지 않으면 열지 않는다. 보관함이지만 뚜껑이 달려있거나 문으로 닫혀있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냉장고 문을 열 때가 많지만 서랍은 그것과는 다르다. 진열장은 구경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책장의 경우도 우리의 눈에 항상 보이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서랍은 필요하지 않으면 열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그 안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이 글도 작가의 서랍에서 먼지가 쌓이다가 나올 뻔했다. 갑자기 쓰고 싶어 져서 쓰는 글들은 그렇다. 계획에 의해서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지만 그만큼 분량도 방향도 제 멋대로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글도 마무리를 짓고 서랍 밖으로 꺼낼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잠가놓는 것이 아니라 브런치와 매거진에 남들이 볼 수 있도록 잘 먼지를 털어서 내어놓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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