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볶음밥을 매일 먹어도

변화와 적응, 그리고 인내

by 게인

가끔 냉장고를 정리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맞닥뜨린다. 가령 채소 칸 뒤편에서 오래된 김치를 발견한다든지.


분명히 이 녀석의 여행에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대서사시가 존재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기억이 없다. 그저 이 녀석의 상태와 종류를 보고 어렴풋이 태생을 기억할 뿐이다. 가끔은 너무 오래된 김치를 발견하면 연배를 짐작하지도 못할 경우도 있다. 맞벌이에 아이를 두 명이나 키우면 집밥을 그렇게 꼼꼼하게 챙겨 먹기는 참 어렵다. 특히 아이들이 아주 어리면 신김치는 밥상에 등장하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신세가 된다.











물론 자취할 때에 비하면 양반이긴 하다. 본가에 한번 들르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던 나의 자취생활에 김치는 한 번 보낼 때 최대한 많이 보내주시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내주실 때 택배로 한 번에 보내야 했으니 많은 양을 보내주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김치는 한 통 정도를 제외하고 그대로 그다음 해 또는 2년, 심지어는 3년 후에 냉장고 안쪽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건 내가 김치를 안 먹는다거나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대학생 때는 꼬박꼬박 점심때 자취방에 들러서 밥을 해 먹고 갔을 정도라 김치가 문제가 된 적은 드물었다. 진짜로 잊어먹지 않은 이상은.


그런데 졸업 후에 직장을 다니면서는 그게 힘들었다. 거기다 갑작스러운 과체중으로 인한 허리 부상으로 팔자에 없던 다이어트까지 하는 바람에 더욱 김치를 먹을 일이 없었다. 김치찌개에 밥을 먹으면 무한정 들어가고, 김치볶음밥은 1인분으로 용량을 조절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뭐 어떻게 해도 변명일 뿐이지만. 어머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음식에 그다지 질리지 않는다. 김치볶음밥을 하루에 한 끼 이상 1년을 먹어도 잘 먹는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자취하면서 나에게 가장 만만한 식사 재료는 부모님과 친척에게서 얻을 수 있던 김치뿐이었다. 다만 대학생 시절에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 매 끼니를 집에서 먹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김치찌개를 하면 한 번에 다 못 먹고 2-3일을 그것만 먹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한 번에 먹거나 냉장고에 넣었다가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되는 만만한 김치볶음밥이 무조건 1순위였고, 그렇게 거의 1년 내내 한 끼 이상은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내가 맛없는 음식을 잘 먹는다거나 맛을 모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쓸데없이 민감한 부분도 있다. 다만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이라면 굳이 그걸 바꿀 생각을 안 할 뿐이다. 심지어 같은 가게에서 매일 먹는다던가 심지어는 같은 메뉴를 계속 시켜먹어도 큰 불만이 없다. 내가 맛있다고 느꼈다면, 이미 적응한 것에 대해서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는 않는 타입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새로운 '맛집'을 개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배달음식을 먹게 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요새처럼 배달앱을 많이 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금방 질리거나 메뉴를 고민하게 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음식에 보통 별 불만이 없기 때문에 맛집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은 나에게 맛집 선택을 맡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리뷰만 보고도 밥집을 평균 이상으로 잘 선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 브런치에 '리뷰'에 대해서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게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변화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만, 막상 바꿔야 하는 이유가 확실하다면 확률을 높이는 결정을 '빠르게' '잘' 하는 편이다. 항상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런 특성상 새롭거나 모르는 것에 대한 검색도 남들보다 '빠르게' '잘' 하는 편이고 조금이라도 신뢰도가 높은 정보를 찾는 것도 잘하는 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항상 맞는 건 아니다.




일도 그랬다.


나는 늘 하던 일을 하는 게 나쁘지 않다. 먼저 말했던 것처럼 적응의 문제다. 내가 잘 알기도 하고 큰 문제없으면 그대로 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의외로 반복 작업에도 그렇게 지루해하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 대학생 때 공기관에서 문서고 파일 정리 아르바이트도 했고, '녹취'라고 불리는 인터뷰를 문서로 옮기는 작업도 남들보다 '빠르게' '잘'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는 기획서나 강의 계획을 세우는 작업도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질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획서 작업은 질색이긴 한데, 그건 기획서를 쓰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내가 딱히 일을 가리지 않고, 적응하면 굳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참 여러 가지 일을 거쳤다. 심지어는 직장만 바뀐 게 아니라 분야도 정말 여러 곳을 거쳤다. 어떻게 보면 일을 가리지 않는 게 오히려 그렇게 된 원인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는 이직의 문제보다 내가 시작한 분야가 워낙 척박한 분야였고, 그러한 이유로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다른 분야에 손을 대야 했던 이유도 있다. 아니 먹고살기 위해서 라기엔 사실 관심이 있거나 내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만 손을 댔다. 문제는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는 것일 뿐. 나는 아직도 내가 지금 당장 잘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처음에 최선을 다해서 배운다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덕분에 커리어가 기이하게 형성된 탓에 어딘가의 직장에 들어가서 경력을 인정받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운영하는 단체 활동과 창업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처럼 강의도 뛰기도 했다.












난 지금도 별로 음식에 빨리 질리지 않는다. 물론 나도 매일 똑같은 것을 먹는 것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도 아니고 아마 알레르기 같은 게 올라오지 않는 한 크게 신경 쓰진 않을 것이다. 요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과 질리지 않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반복할 수 있는 것과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는 것은 '뭐든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가끔씩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걸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걸 겁내지 않았을 뿐인데 겁나지 않으면 해야 한다는 그 사고는 대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용기를 내서 사자 머리에 손을 집어넣어 봤다고 해서 그걸 계속 즐겨야 할 이유는 없다. 아니 그런 멍청한 일을 반복해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에게 남들이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일을 떠맡기려고 한다. 적응하거나 변화할 수 있다고 해서 인내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다른 영역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상 밑의 보물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