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100개의 글
숫자라는 것은 우리가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 물론 특별한 숫자들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처음이라든가. 처음은 누구나 존재한다. 처음이 없다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것이지만, 그것은 '숫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니다.
연애를 하던 시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별별 숫자에 집착을 하게 된다. 100일이니 200일이니 하는 것은 기본이고 22(투투)니 뭐니 별별 챙길 수 있는 기념일들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생일이나 제사라는 것도 일종의 그런 것이니 인간의 오래된 습성 같은 것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1월에 처음 브런치를 쓰고, 어느덧 8월이 되었다.
중간에 2개월 정도 공백이 있었지만 올해의 목표에 다가가고는 있다. 브런치 어딘가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올해의 목표는 150개의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저 '개수'로만 따지기에는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다. 이대로 올려도 되나? 하는 글들도 많고, 초반에 써놓은 글들은 지금 보면 스스로 얼굴을 감싸 쥘 때도 많다. 정신없이 도전했던 브런치 북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브런치 메인 페이지에 스치듯이 등장해서 갑작스레 조회수가 올라갔을 때, 난 오히려 난감했다. 뒤늦게 허둥지둥 비문이나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들을 좀 고치긴 했지만, 이미 브런치 북으로 올려놓은 터라 과감하게 수정하긴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내려버릴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내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내 글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글이 잠시나마 주목받은 것은 나에게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주지만 사실 내 글은 내가 아니다. 살면서 내가 좋아하던 글이던 그림이던 작가들에게서 실망해 본 적이 꽤 있다. 어떤 추문에 휩싸인다던가, 어떤 정치적 성향이 나와 맞지 않다던가.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내가 좋아하는 글이나 그림과 작가를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대로 내가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어서 변명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글을 쓰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좋은 사람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혹은 내 글이 별로라고 해서 내가 좋지 않거나 별로인 사람인 것도 아니다. 글은 글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우리는 단지 그 너머를 살짝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그 글이 정말 그 사람의 생각의 결실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지금까지 올린 99개의 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글도 있고 올리면서 너무 망설였던 글도 있다. 망설였던 글에 더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을 때도 있고, 좋아하는 글은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만 내가 꾸준히 쓰는 것으로 인해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뿐이다. 이 자리를 빌려 대단하지 않은 나라는 작가의 브런치를 구독해주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맨 앞단에서 이야기했듯이 사실 숫자는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 뭔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언가 기억의 꼭짓점을 만들기 위해서 숫자를 끼워 넣는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인지라 뭔가 100개를 채웠다는 그 느낌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의연해야 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이렇게 특별히 글을 따로 쓸 정도로.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우연에서 일어난다.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과 조용히 100번째 글을 자축할 생각이었는데, 99번째 글에서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았다. 글을 올리고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와서 습관적으로 브런치를 눌렀는데 뭔가 이상했다. 알림을 눌러보니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지금껏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라고 해봤자 브런치 북이 잠깐 브런치 메인에 떠있을 때 읽어주신 '가치의 고민 - 가상화폐의 딜레마(1)'가 600회 정도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첫날 올렸던 글이라 워낙 뒤죽박죽이라서 다들 그 글 하나를 보고 빠져나가버려서 같은 브런치 북의 뒷 글들은 읽어준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난 오후에는 꼭 통계를 눌러보는 습관이 있다. 통계 그래프를 보면 뭔가 뿌듯할 때도 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 때도 있어서...라는 핑계로 항상 눌러본다. 사실은 그냥 재밌어서... 그런데 그래프도 이상했다. 마치 그래프가 고장 난 것처럼 수평으로 쭉 오다가 휙 솟구친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확인해보니 그럴만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제일 많은 날이 하루에 80명이 겨우 읽고 가던 브런치가 갑자기 수천 명이 읽었으니 당연히 비율상 앞단의 그래프는 거의 바닥에 붙어있었다.
대체 어디를 통해서 들어온 걸까? 나는 의미 없는 그 경로 찾기를 30분을 하고 결국에는 못 찾았다. 사실은 그냥 기뻐하면 그만인데 진짜 의미 없는 짓이었다. 예전에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가끔 내가 쓴 게시글이 폭발해서 10만 명씩 보고 가는 일도 있었고, 추천도 수천 개씩 받아봤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글은 다 똑같이 글일 뿐인데도 브런치나 블로그는 뭔가 책임감의 차이가 있다.
99번째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내가 쓰고 싶었던 내용으로 썼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약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서 고민을 좀 했던 글이었다. 제목과 그림에 김치볶음밥이 들어가 있어서 요리 관련 글인 줄 알고 잘못 가져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찌 됐든 좋다. 다행히 착각해서 들어왔다고 불평하시는 분도 없고, 브런치로 들어온 게 아니기에 댓글이나 좋아요도 별로 없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읽어줬다는 것으로 충분히 뿌듯하다.
사실 내 글이 1000번이든 만 번이든 읽힌다고 해서 내가 부담스러울 필요는 없다.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를 생각해보면 극도로 긴장하면서 썼던 것 같다. 그때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내 글을 싫어하거나 공격적인 댓글이 달리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놀랍게도 아무도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공격받을 일도 없었지만. 하지만 내 글이 내 손끝을 떠나 이렇게 지면이나 화면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래도 결국 누군가는 나를 구독해 주었고, 가끔이지만 공감의 댓글을 써주실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소소하게 버티며 100번째 글에 다다르기 직전에 받은 선물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의 나는 4차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인문학과 게임을 엮어서 풀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글을 내 놓지 못하고 준비하는 기간만 6개월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정리되지 못한 '작가의 서랍'에 담긴 글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IT나 경제 쪽으로 글을 작성하기로 되어 있는데, 내가 그와 연관되지 않는 내용을 쓴다면 나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뭐라도 써서 내놓는 것이 핵심이었다. 고민 끝에 내놓은 글들이 그렇게 매끄러운 것도 아니었고, 읽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IT나 인문학뿐 아니라 교육과 수필과 시를 같이 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시를 보고 들어와서 나를 구독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사설에 가까운 글들을, 누군가는 에세이를 읽고 나를 구독해주신 분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한분씩 구독자가 빠져나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속상하기도 하지만 죄송하기도 하다. 그분들이 구독하면서 기대했던 것을 내가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구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읽고 싶은 장르가 있었을 텐데 내 멋대로 써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참고 읽고 들어주시는 구독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위에 말했던 것처럼 사실 100이라는 숫자보다는 첫 번째가 항상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번 글은 100번째 글이 아니라 나의 첫 번째 100개의 글 작성 기념글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첫 번째 101개의 글을 쓰는 게 될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처음이다. 누구나 처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처음이기에 그것은 의미가 있다. 나는 오늘도 처음 사는 오늘을 살고 있다. 그리고 처음 쓰는 글을 쓴다.
(*. P.S : 글을 올리기 전에 99번째 게시글의 유입경로를 찾았다. 예상대로(?) 홈앤 쿠킹 쪽에 올라가 있었다. 아이고... 김치볶음밥에 관련된 글인 줄 알고 들어오셨을 텐데... 그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핵심이 아닌 글이라서 죄송스러운 마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