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에 좀 가둬주시면 안 될까요?
화가 풀릴 때까지 밖을 나가서 걷는다.
에스키모인들은 그리 했다고 한다. 그 추위 속을 걷다 보면 화가 풀리면 다시 걸어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은 뉘우침과 이해의 용서의 길이라는데 그딴 건 알바 없다. 결국 늦게 화가 풀리거나 화를 풀지 못한 사람은 다 추운 벌판을 걷다가 죽어 없어졌기에 화를 안 내거나 금방 풀리는 사람만 살아남았다.
덥디 더운 계절이 되었다. 아니 사실 이미 덥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더운 시기가 되니까 지금껏 시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마음에 낮에 사람이 없으면 집에 에어컨을 꺼놓고 나간다. 거의 8~9시간 이상을 집에 아무도 없는데 켜놓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에어컨을 켜고 시원해지기를 기다리려면 한밤중이 되어서야 시원하다고 느낀다. 에어컨의 성능 문제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일반 주택 2층에 옥상 바로 밑이라는 악조건 때문일 수도 있다.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푹푹 쪄서 늘어져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지.
이러한 날씨는 '무조건' 화를 동반한다. 조그만 일에도 짜증이 솟구친다. 가뜩이나 습도도 높으니 더욱 그렇다. 평소에는 화를 내지 않을 일에도 순간적인 화를 참기 힘들다. 아이가 평소처럼 때를 쓰더라도 그러려니 하기 힘들다. 아이도 더울 테고 우리도 더울 테니 조금이라도 시원하라고 씻기려는데 일단 거기에서부터 난리다. 아이는 샤워보다 하고 싶은 게 많다. 물론 막상 샤워를 하고 나면 너무 개운하고 좋아하는 건 함정.
꼭 날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본다든가 내 개인적인 문제들이 안 풀리는 지점에서도 화는 생길 수밖에 없다. 내 나름대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잘하는 타입이었지만 언제나 역치 값이나 임계치 같은 게 존재하는 한 뚜껑은 열릴 수 있다.
문제는 뚜껑을 닫고 열을 식힐 방법이다. 한동안은 먹을 걸로 달래 왔지만 살쪄서 땀도 더 나고 움직이기 힘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힘들고 더 짜증이 난다. 운동으로 풀라고? 어린애가 있어서 시간도 내기 힘든데 지금 이 날씨에 밖에서 운동하는 건 정신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운동하고 돌아와서 씻자고 다시 실랑이를 벌이는 순간 폭발할 테니까.
쓰다 보니까 감정이 이입되면서 더 화나는 건 아마 기분 탓일 거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찾고 느긋함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진짜 정 안 되겠으면 포기하는 부분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 혼자만의 일들이 아니다 보니 내가 포기한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를 씻기는 것을 포기했을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아동학대(?)에 가깝고 어떤 면에서는 아이를 만나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좋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 아이의 교우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게 결국 얼르고 달래서 씻기고 나면 혹시 에어컨 바람에 감기가 걸리지 않을까 짜증을 또다시 먹을 걸로 달래 가며 머리를 말린다. 둘째는 이제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터라 말리는데 시간이 두배로 걸리는데 짜증은 더 심하다. 한번 머리를 말려주고 나면 내가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렇게 겨우겨우 저녁에 아이들을 씻기고 말려주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아 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빨리 자면 참 좋겠지만 하루 종일 엄마 아빠랑 놀고 싶었던 아이들은 빨리 자지 않는다. 자자고 누웠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엄마에게 아빠에게 뛰어오른다. 그렇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얻어맞다 보면 다시 화가 차오른다.
있지도 않은 멍멍이와 고양이를 들여와서 너희들 대신에 재우겠다면서 반쯤 협박을 동원하여 겨우 달래서 잠이 든다. 예전 같으면 육퇴 후 맥주라도 생각하겠지만 그런 거 없다. 이제 정말 지쳐 늘어지는 일만 남았다.
화가 풀릴 때까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이를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있으면 화가 풀린다. 이렇게 화가 풀리니까 부모를 하는 거겠지. 이 더운 열대야에 밖으로 나가서 걷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지친 마음을 달래며 자려고 하는데 막상 한 번 깨버린 잠은 잘 오지 않는다. 뒤척거리며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고 내일이 걱정된다. 애들이 잠들고 슬슬 시원해진 집안에 에어컨 바람을 낮추고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아직도 여름의 한가운데 있다 보니 한동안 기분은 오르락내리락할 것 같다. 여유롭고 자상한 아빠 코스프레가 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해보지만 일시적인 효과밖에 못 느끼고 있다. 뭔가 마음에 쫓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무언가 내려놓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고생하고 싸워가면서 씻겨놨더니 아이는 여름 감기에 걸렸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이 있다고 해서 한달음에 다시 모였다.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을 갔는데 간호사가 와서 "열은 없네요"라고 했다. 열 때문에 갔고 해열제도 안 먹였는데 열이 내려버렸다. 그래도 콧물이 약간 있고 하여 어찌어찌 진료를 받았고, 코로나는 아니라는 거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이집을 보낼까 하다가 아이 엄마는 요새 둘째랑 많이 못 있어준 것 같다며 연차를 쓰고 아이랑 있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온전히 애정을 쏟으면 아이는 한없이 이쁘다.
여름은 아직도 길다. 화가 난다고 밖을 걸었다가는 아마 길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잊지말자. 늦게 화가 풀리거나 화를 풀지 못한 사람은 다 추운 벌판을 걷다가 죽어 없어졌기에 화를 안 내거나 금방 풀리는 사람만 살아남았다. 이 더위 속에서 걷다 쓰러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화를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