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파인 땡큐 앤드유?

암시와 편견

by 게인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암시에 쉽게 걸리는 편이다. 예전부터 마케팅에서는 그런 부분에 주목한 연구가 많았다. 영화 상영 사이사이에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을 콜라 사진을 내보냈더니 콜라 소비가 늘었다는 연구라든지. 우리의 행동은 의식적인 부분보다 무의식적인 부분이 루틴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암시에서 잘 풀려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 걸린 암시는 쉽게 안 풀리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단어나 영상이 인상에 깊게 남아버리면 원래의 단어나 영상을 쉽게 뒤덮어 버리는 케이스다. 와이프는 내가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이야기를 해준 이후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마다 우병우라고 잘못 말하고 있다.












딱히 암시를 걸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우리는 더 임팩트 있는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몇 년간 활약했던 스포츠 선수가 '만능 짤' 한두 개로 기억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에게는 임팩트가 더 머리에 강하게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임팩트가 강한 인상만 남는다. 그리고 그건 '연관검색어'처럼 작동해서 뭔가를 기억하려는 순간 그 기억을 뒤덮어 버린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연예인에게 가십이 따라다니는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뭔가 있어 보이는 원리지만 실생활에서는 웃긴 상황에서 더 많이 보인다. 원래 쓰던 단어나 행동에 뭔가 임팩트 강한 무언가가 덮이면 자꾸 잘못 말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키친타월'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치킨'을 좋아하고 더 자주 이야기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치킨 타월'이라고 부르곤 한다. 단순하게 입에서 헷갈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번 헷갈렸을 때 웃었던 기억이 있다면 이 기억이 남아서 그 뒤에도 계속 헷갈리게 된다. 임팩트에 의해서 암시가 씌워지는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이런 장난을 치곤 했다. 친구에게 엘리베이터라고 10번 말해보라고 한 뒤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이라고 물어본다. 장난이라는 것을 대부분 인지하기에 긴장하고 있던 친구들은 에베레스트라고 대답하기 마련이다. 실패했냐고? 아니다. 이 장난은 사실 이게 '빌드업'이다.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이 장난은 이제 친구에게 암시 효과를 사용해서 다른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오게 하는 장난으로 기억되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장난을 칠 때다.


그걸 보고 있던 다른 친구한테 다시 장난을 걸었다. 이번엔 컨닝을 10번 말해보라고 한다. 친구가 기꺼이 속아주기로 하고 컨닝을 10번 말했다고 해보자. 그리고 질문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친구들의 대부분은 컨닝이라고 할 줄 알았냐며 링컨이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간단한 암시는 사람들이 금방 간파하지만 사람들은 무언가에 집중하면 두 가지 사고가 동시에 잘 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경험 많은 어른들이 되면 잘 속지 않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워싱턴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암시를 이용해서 몇 가지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를 훈육할 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가르칠 때도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안 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설명보다 특정 소리나 행동에 반응해서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많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거의 똑같이 '안돼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는 제스처를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집 꼬맹이가 그 암시에 꼭 걸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배시시 웃으면 무시하고 모든 것을 박살 낼 경우가 더 많다.


어떤 면에서 흔히 '강화'라고 부르는 행동들은 암시와 닿아있다. 어떻게 봤을 때는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 반사'도 암시와 이웃사촌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머리를 말리면 젤리를 먹어야 하는 줄로 알고 있다. 하도 말을 안 들어서 항상 젤리로 시선을 돌리고 머리를 말렸기 때문이다. 둘째는 머리가 길어서 젤리 따위는 금방 먹고 절반도 안 말린 머리를 하고 도망가버린다. 그나마 조금 나이가 들면서 머리를 말리는 것을 조금씩 참아주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 세대에서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암시에 가까운 교육을 소재로 했던 개그도 꽤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떠한 난감한 상황이든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한다는 개그였다. 영어 자체를 회화로 가르치기보다 조건반사로 가르쳤던 시대의 웃지 못할 이야기다. 보통 암시는 이해의 영역이 아닐 때 발생한다. 그때의 우리에게 영어는 사실 이해의 영역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암시는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어떤 편견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다. 비슷한 일을 겪다가 보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그런 종류다. 양치기 소년의 일화는 그런 종류다. 사람들이 '늑대다!'라는 외침에 '늑대가 나타났으면 양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는 반응이 기본적인 반응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늑대다!'라는 말을 '나는 심심해요!'라는 말로 받아들이게 된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에서도 결국 나중에 말한 '늑대가 나타났다!'는 앞전의 강화가 기가 막히게 먹혀들어서 이미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게 양치기 소년의 잘못이지 왜 편견이냐고? 이 단어에게 강제로 다른 종류의 강화 또는 암시를 건 것은 양치기 소년이 맞다. 그리고 그게 잘못인 것도 맞다. 왜냐면 의사소통에 있어서 서로 다른 종류의 두 가지 의사소통을 하나의 언어에 걸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면에서 나에게 '츤데레'라는 일본에서 넘어온 표현도 어이가 없을 뿐이다. '싫어요'가 어떻게 '좋아요'와 '싫어요'로 다 쓰인단 말인가? 누군가는 태도에서 알 수 있다지만 그런 비언어적 표현과 언어가 섞이면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원인 제공을 그렇게 했다는 것과 편견이 생겼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원인 제공을 본인이 했더라도 우리는 그 양치기에 대해서 편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양치기 전체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 한 명의 인간이 '거짓말을 할 것이다'라는 편견이 생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복된 행동과 강화가 가져온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2021년에 '브레이브 걸스'라는 그룹이 '롤린'이라는 노래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았지만 청량한 여름 비트를 동반한 '롤린'이라는 2017년에 나온 노래가 시원하게 세간을 강타했고, 사람들은 '브레이브 걸스'에게 '롤린'이라는 노래를 연결시켜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운전만 해'라는 브레이브 걸스의 노래를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의 가사를 듣기 전에는 '시원한 여름에 어디 놀러 갈 때 너는 운전만 해줘' 정도의 가사를 기대했다. 결론만 말하면 그 노래는 시티팝에 딱 어울리는 노래고 가사 역시 시티팝에 맞는 가사라서 전혀 그런 노래가 아니다.


그 노래는 아직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오래 듣기 편한 전형적인 시티팝인데 문제는 브레이브 걸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과는 많이 다른 노래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결국 그다음 곡들은 계속 '롤린'과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들만 내놓고 있고, 결국 브레이브 걸스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라는 편견으로 굳어가는 느낌이다. 예전 EXID도 그랬지만 유독 역주행으로 빛을 본 그룹들은 워낙 실패를 오래 겪어서인지 그런 편견과 같은 방향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점이 안타깝다.


이러한 편견은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여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그룹이라든가 '벚꽃 연금'이라는 말을 듣는 '봄'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든가. 이런 것들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어떠한 편견을 갖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맨 처음에 말한 것처럼 한번 연결된 암시는 잘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매치되지 않았을 때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암시와 편견을 억지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둘은 비슷한 면도 있지만 각각의 영역이 다르다. 암시는 언어적인 것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맨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시원한 이미지와 맥주를 계속 결합하다 보면 우리는 맥주를 시원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어린 시절 기억에 심부름으로 맥주를 사러 가면 맥주를 상온에 팔았다. 시원하지 않은 맥주도 생각보다 일반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소주도 살짝 얼릴 만큼 시원하게 먹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건 사실 마케팅의 암시에 의한 거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시원하지 않으면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우리는 암시에 잘 걸린다. 그리고 잘 안 풀리는 암시도 많다. 미디어나 광고는 그걸 기꺼이 이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정치든 아니면 어떤 다른 영역이든 우리는 암시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기꺼이 시장에서 '먹방'을 찍고 다니고 '서민 코스프레'를 하며, 기업들은 '가 족같은' 기업이나 '선량한' 기업인 것처럼 암시를 걸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은 편견으로 작용하여 우리를 진실을 보기 힘들게 만든다. 요새 우영우 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위에 나온 다른 이름이 암시로 씌워져서 우영우가 훼손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


우리는 때로는 일부러 암시에 의해서 본인을 내보이지 않고 참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반사작용이 우리가 서로를 지탱하도록 돕는다. 아무리 힘들고 괜찮지 않아도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말에 반사적으로 대꾸한다. 아임 파인 땡큐 앤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