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인 Aug 12. 2022

덜 건강한 나이

나는 늙지 않는다. 덜 건강할 뿐.

 이제 몸은 하루가 다르게 무겁다.


 어차피 무겁던 몸무게 따위가 더 늘어난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관절이 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한 거라고는 그저 한 살 한 살 남들처럼 꼬박꼬박 나이를 배부르게 챙겨 먹었을 뿐이다. 부랴부랴 나이를 먹는 만큼 영양제 따위를 챙겨 먹어 봐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렇게 이제 '덜 건강한 나이'가 되었다. 











 나에게는 집에 오면 달려드는 두 명의 아이가 있다. 지금 시대의 부모들의 가장 큰 후회 중 하나는 '좀 더 건강할 때 아이를 낳을 걸'이라는 생각이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결혼이 늦어지고 아이를 늦게 낳고 있지만 아직 조그만 아이들인데도 같이 투닥거릴 때마다 뼈마디가 욱신거리면 절로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정말 그랬다. 내가 건강하던,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만났던 학부모님들은 그렇게 젊고 건강한 분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학부모가 될 나이가 되어보니 나는 '덜 건강한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같은 어린이집을 유심히 보아도 다른 학부모님들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조금 더 건강할 때 조카라도 있었으면 건강한 몸으로 놀아줬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서는 우리 아들이 첫째다. 나는 건강하던 시절에 내 아이나 조카들이 아니라 학생들이랑 놀아줬다. 젊었던 나는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이들을 번쩍번쩍 들어서 풀장에서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7살짜리 아들이 달려드는 것도 무섭다. 사람의 몸이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풀장은 아닐진대 마치 다이빙하듯이 뛰어든다. 




 그래도 첫째는 둘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안아주고 놀아줬다. 잠투정을 많이 하던 아이라서 신경이 날카로왔던 애기 엄마를 피해서 우는 아이를 달래려 안고 동네를 많이도 돌았다. 힙시트니 아기띠니 아무리 써도 허리가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걷는 연습을 시킬 무렵엔 갈 때는 걸었지만 올 때는 아닌 경우도 많아서 안고 10분씩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때도 이미 '덜 건강하던 시점'이었다.


 둘째는 이제 3살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막내딸이지만 진짜로 눈에 들어오려고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어서 실제로는 아프다는 것도 알게 해 줬다. 딸은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다는 글을 많이 봤는데 어찌 된 경우인지 우리 딸은 물리적인 속성의 스크래치를 낸다. 지 오빠가 특별히 얌전했던 것이 아님에도 '역발산기개세'를 뽐내는 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첫째가 한없이 얌전해 보인다. 


 매일 미모를 갱신하고 있는 웃음이 매력적인 따님이지만 이제 '덜 건강한 아빠'는 그리 마음껏 놀아줄 수 없다. 특히 둘째를 번쩍 들어 올려 놀아주면 첫째는 자기도 같이 놀고 싶어 한다. 사실은 이제는 둘째도 들어 올리기 힘든 몸뚱이라서 이미 20킬로를 한참 넘어버린 첫째는 무리다. 그래도 가끔씩, 아주 진짜 잠깐 동안 들어 올려 줄 때가 있는데 발버둥 치는 순간 감당이 안된다.




 20대의 나는 내가 건강하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때가 참 건강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덜 건강해지는 것'에 비해서는 내 몸을 챙기기가 쉽지 않다. 일단 두 명의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은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를 차례대로 씻기고 말리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아이를 재울 시간이다. 그리 얌전히 자는 애들도 아니라서 쉽사리 자지 않는다. 재우겠다고 옆에 누워서 졸다가 머리채를 잡히거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아침과 저녁은 전혀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일과시간은 당연히 시간이 없다. 그래서 덜 건강해진 우리가 신경 쓸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영양제 몇 알 챙겨 먹거나 출퇴근을 걸어서 하는 정도다. 심지어 그 좋아하던 술도 많이 줄였건만 몸만 더 퍼질 뿐 좋아진다는 느낌은 없다. 




 덜 건강한 생활은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성 두통은 기본에 수면 부족이 자꾸 겹치다 보니 몽롱하거나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똑같은 하루를 벗어나게 해주는 전화가 자주 온다. 아이가 열이 있는 것 같다는 어린이집 전화가. 


 그렇게 잠시 똑같은 하루에서 벗어나서 아픈 아이를 보면 내가 뭐하러 루틴으로 하루를 사는지 다시 깨닫는다. 항상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늘 같은 하루는 매우 소중하다. 좋은 일이 없는 것과 나쁜 일이 없는 것은 사실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단지 사고방식의 차이다.  



 









 가끔 나도 모르게 늙었다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늙는다는 말이 점점 슬프게 들린다. 진짜로 나이가 많이 드신 부모님 앞에서는 더욱 해서는 안될 말이기도 하다. 자식이 늙어간다는 말이 듣기 좋은 부모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건만 부모가 되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늙지 않았다. 단지 조금 '덜 건강할' 뿐이다. 그렇게 말해야 언젠가 다시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라도 드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