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보장받을 것인가, 인정받을 것인가.
우리는 항상 서로 비교합니다. 그리고 타인을 보며 안도할 때도 있고 부러워할 때도 있습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때도 있고 롤모델로 삼을 때도 있습니다.
어릴 때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는 '방송인'입니다. 아나운서나 앵커 같은 직업은 밖에서 봤을 때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경쟁률도 높고 아주 전문적인 직종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아나운서만이 아니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걱정의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만 성공한 누군가를 보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누구나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일단 성공한 사람은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프리랜서를 떠나 다시 직장으로 복귀합니다. 그들은 자주 말합니다.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고.
최근 들어 택시를 잡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운전을 못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술을 마시러 갈 때는 꼭 차를 놔두고 택시를 타고 이동합니다. 예전에는 타던 차가 수동이라 대리가 안 잡혀서 그런 탓도 있었지만 오토를 타는 지금도 습관적으로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나갑니다. 그런데 다들 실감하고 있는 것처럼 저도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택시를 타고 아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갈 일이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나왔던 탓에 택시가 한대도 보이지 않아서 카카오를 불렀지만 근처 10분 거리 이내에 택시가 없었습니다. 상당히 장거리임에도 잡히지 않아서 고생하기를 30분째, 결국 어찌어찌 택시 한 대를 발견하여 겨우 탈 수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갈 때도 있지만 혼자 타게 되면 택시기사님들과 대화를 좀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택시기사님께 택시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드린 택시 급감에 대한 원인 같은 부분들을 한 번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택시기사님은 의외로 다른 부분을 문제로 짚으셨습니다. (편의상 A 기사님이라고 하겠습니다.)
A기사님은 한 때 공장의 노조 출신으로 유명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동구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택시기사 급감에 대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택시회사의 급여화 정책'을 꼽았습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택시라는 직종은 일한 만큼 가져가는 인센티브 구조가 더 어울리는 형태라는 이야기셨습니다. A기사님의 이야기로는 급여화가 일어나면서 사측에서 들어가는 비용도 커졌고, 그 비용은 결국 택시기사가 다시 떠안아야 하는 비용이라는 겁니다.
택시가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고 회사가 관리만 하는 형태가 되어야 다들 일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나오는데 정규직화가 그걸 막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쓸데없는 비용들만 늘었고, 오히려 회사가 더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다른 택시를 타서 택시 잡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B택시기사님은 오히려 정규직화가 되어서 그나마 이 정도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규직화가 아니었으면 택시가 기피하는 구간이나 기피하는 시간대에는 택시를 구경도 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실 카카오 블루에서 발생했던 문제 중 하나도 기피하는 콜을 처리하는 문제였습니다. 단거리를 콜까지 받아서 처리를 해준다든가, 아니면 돌아오는 길에 콜을 받기 어려운 장거리를 받아줘야 하는 문제가 수면에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택시의 편을 선뜻 들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90년대 승차거부가 횡행하던 시절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만일 인센티브로만 운영된다면 누구나 돈이 되는 시간대의 돈이 되는 구간만 운행하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두 명의 택시기사님들의 이야기는 둘 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이건 상당히 오래된 경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은 자본이 있으면 그 자본을 토대로 더 큰 자본을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물론 지금은 '수정자본주의' 형태이기에 완전히 자본에만 의존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회의 기반은 그렇게 책정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먼저 '자본'을 형성해야 합니다.
초기의 자본주의 시절 사람들은 '금광'을 찾아서 돌아다녔습니다. 워낙 위험했던 시절이라 한 푼 두 푼 모으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일확천금이 필요했습니다. 은행이 더 이상 무법자들에게 쉽게 털리지 않게 된 시점부터 사람들은 '저축'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월급을 모으면 자본을 형성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급여를 모아서 자본을 형성하는 게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은행은 그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자본을 형성하는 동안 맡겨놓은 그 돈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인 '자본이 있는 만큼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죠. 그래서 금융권과 대출받아 사용하는 기업들이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급여로 자본을 느리게 형성하고 있던 노동자에 비해서 훨씬 빠른 속도였죠. 누군가는 윈윈으로 보였으니까 크게 상관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냉전이라는 구도 아래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언급조차 못되던 시절은 지나가고 세상은 사회주의의 복지정책과 장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지되던 시절 마르크스를 읽던 사람들이 그리 많았지만 막상 냉전이 깨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문이 열리자 마르크스를 읽는 사람들은 급감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기보다 오히려 자본에 더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문화 승리'에 가깝다고 할까요.
여전히 사회에는 자본가보다 노동자가 훨씬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것이 전체 사회에 있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득인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경제체제라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공동 경제체제는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서로의 협동에 기대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는 이름은 남아있지만 안으로 파고들면 자본주의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거기다 의외로 최저임금에 대한 반발도 있습니다. 애초에 이미 해외에서도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고, 그걸 완벽하게 해결한 곳은 없습니다. 일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돈을 지급한다는 것은 노동의 대가성을 부정하는 형태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열심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동을 해야 할 동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절대로 노동자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목표는 '자본의 마련'입니다. 집, 땅, 주식 등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져야 노동자라는 '피지배계급'을 벗어나서 '지배계급'인 자본가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본가가 될 수 있고, 자신은 절대 노동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택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택시기사가 개인사업자일 때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고, '노동자'가 되었을 때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합니다. 어느 하나가 무조건 더 낫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고, 그것은 사실 '노동자'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막상 본인들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택시 말고도 '지입차주'를 하고 있는 분들이나 수많은 개인 사업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누군가는 '노동자'이길 원하고, 누군가는 '사업자'이길 원합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니까요. 다만 대부분의 직종이 그걸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지정하고 있기에 트러블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손에 있는 떡이 더 커 보입니다.
정규직은 프리랜서를 부러워하고 프리랜서는 정규직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인은 사업자를 부러워하고 사업자는 직장인을 부러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생들은 직장인을 부러워하고 직장인은 학생을 부러워합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장점을 생각하기보다 단점에 대해서 더 많이 체감하며, 타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장점을 위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프리랜서도 노동자입니다. 프리랜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정규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의 가치를 '보장받고 싶어서'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겪어보지 않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어떤 케이스가 더 자본주의적인지, 아니면 어떤 케이스가 더 공산주의적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역량도 자본의 일종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주의'들은 많은 사람이 그러하다고 '믿는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 정형화되거나 고정된 하나의 체계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게 자본주의 사회나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재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의 주의에 휩쓸린 주장들은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게 평범한 사람의 생각이죠. 애초에 인간의 욕망은 모순을 지향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축이 자본을 형성할 수 있다고 '사기 아닌 사기'를 쳤던 시절처럼, 지금도 사람들에게 본인들을 노동자에서 벗어나 자본가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충동질합니다. 여전히 사회의 대부분은 노동으로 구성됩니다. 자본가가 되었다고 해서 노동을 벗어난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입니다. 어떤 위치로 가도 우리는 '노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노동인지에 대해서 차이만 발생할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러한 노동과 그 노동의 가치에 관한 문제만 반복될 뿐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은 계속 자본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질 자본'은 한계가 있습니다. 비물질인 '역량 자본'까지 고려한다면 자본주의는 성립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량 자본'을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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