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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Oct 28. 2022

'할인'에 투자하는 시대

가만히 있으면 손해를 본다고? 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정가를 주는 것을 '손해 본다'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남 얘기가 아니다. 나만해도 그렇다. 인터넷 쇼핑, 아니 지금은 모바일 쇼핑에 더 가까운 쇼핑앱에 들어가서 물건을 고를 때 할인이 붙어있지 않으면 왠지 아쉽다. 거기다 심지어 할인이 붙어있어도 내가 원래 가격을 모른다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진짜로 저렴한 것인지, 아니면 '장난질'을 친 것인지. 


 이러다 보니 할인 정보에 대한 공유가 활발하다. 일명 '핫딜'에 대해 공유하는 사이트도 꽤 많고, 심지어 관련 커뮤니티인 '뽐뿌'는 나름 '대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커뮤니티로 올라서기도 했다. 




 심지어 배달음식도 할인쿠폰을 뿌려대다 보니 할인 쿠폰이 없으면 왠지 아쉽다. 원래 적혀있는 가격을 다 주고 사 먹으면 뭔가 손해 본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매장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원가를 다 주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이건 인터넷 세대의 문제일까?


 사실 그건 아니다. 옛날 사람들에게도 '에누리'라는 개념은 있었다. 장사가 존재했던 이래로 아마 할인판매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거래'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어떤 상거래에 대한 법률이나 정비가 되어있어도 할인과 경쟁이 넘치는데 법률이 거의 제대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던 옛날에는 과연 어땠을까.


 이제 노년층을 바라보시는 어머님 세대와 같이 시장에 가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시장에서는 흥정이 기본이다. 이건 누군가에게 배워서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장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많이 사면 조금 깎아주거나 덤을 조금 붙여주는 것은 누구한테 배워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부분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거래'라는 개념 때문이니까.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중국의 '광군제'도 있다. 해외 구매가 일반화된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가 '대박 할인'을 노리며 그 시기를 기다린다. 국내 기업들도 '빅 스마일데이'니 '11절'이니 하는 행사들을 만들었다. 기업들이 이런 할인기간을 만드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이윤을 나눠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나 중국의 광군제에서 이뤄지는 거래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블랙프라이데이도 그렇지만 광군제의 경우에는 조 단위의 금액이 움직인다. 단 며칠 만에 '조'라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 물건과 판매대금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할인되는 상품의 품목에 있다. 그 세일 시기에 우리가 노리는 품목은 생필품이 아니다. 보통 가전제품과 같은 흔히 말하는 '고관여 제품'군이다. 옛날에는 해외에서 수십만 원짜리 상품을 시키면 사기를 당할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지금은 국내 중고거래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단점이라면 배송이 오래 걸린다는 점인데 그마저도 달라지고 있다. 알리 익스프레스 같은 경우는 국내를 노려서 카카오페이나 네이버 페이와 제휴를 하고 세일을 진행하면서 '5일 배송'을 내세웠다. 해외 배송인데도 말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건 '서민들의 이야기'다. '과시적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소비한 제품이 할인을 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고급화 전략으로 가는 제품들은 오히려 할인이 아니라 '프리미엄'이 붙는 제품들이 많다. 그래서 고급 브랜드들이 할인을 하기 시작하면 브랜드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거나 '큰 손'들이 옮겨가 버린 이후인 경우도 많다.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사는 건데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으니까. 


 정 반대로 대부분의 우리는 얼마 전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남들만큼'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남들 다 있는 물건을 나만 없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문제는 갈수록 그런 물품들이 많아지고 고가가 된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 '기본'처럼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가성비'와 '대박 할인' 제품을 놓칠 수 없다. 어쩌다 그런 할인을 눈앞에서 놓치면 꼭 손해를 본 기분이 든다. 잘 생각해보면 나한테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자동차만 해도 한국의 자동차들이 '기본 옵션'이 거의 풀옵션에 가까운 이유가 그렇다. 외국에서는 옵션으로 뺄 수 있게 되어있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그만큼 가격은 높다. 외제차가 비싼 것은 그만큼 좋은 차라는 이야기도 되지만 고관여제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는 외제차는 '과시적 소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한국은 이미 외제차가 넘치는 시장이다. 10년쯤 전부터 외제차들은 한국에서도 '할인 경쟁'에 들어갔다. 할인을 한다는 것은 전체 브랜드가 고가 전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급 라인업만 고급화 전략으로 간다는 공격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서로 목표가 일치한 대부업체들과 자동차 업체들 덕분에 우리나라는 카푸어 양산 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집과 차를 대출을 끼지 않고 사는 것이 드물게 되었다. 그래서 가계부채는 폭등했고, 변동성 금리에 대항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는 미칠듯한 고금리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투입된 과도한 자금 발행을 조여야 하는 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구매를 하지 않았는데 손해를 본다'라는 개념은 '투자'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할인은 '투자'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더라도 '기회를 놓치면 바보'라고 손짓한다. 대부분은 저렴하게 나와서가 아니라 그냥 쓰려고 산 물건들 조차도 다 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이야기다. 중고거래 장터에 올라오는 것들을 보면 실 사용이 몇 번 안 되는 제품들이 많다. 사기꾼을 거르더라도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구매해보면 사실인 경우도 많다. 


 할인에 혹 해서 산다든지, 유튜버가 되겠다고 방송장비를 샀는데 도전도 못하고 판다든지 하는 상황들은 이제 아주 일반적이다. 기회가 없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기회 과잉의 시대다. 사람들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뭐든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배우려고 하는 무엇이든지 인터넷에 동영상 강의가 넘쳐난다. 알고 싶은 지식은 시간만 있다면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 흔히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시간만 있다면 배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수많은 '기회'라고 부를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그리고 기회를 보게 되면 누구나 투자를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처럼 느낀다. 부자들도 투자로 돈을 번다고 한다. 거기다 이제는 '남들만큼'하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할인'이 다가와서 '지금이 아니면 손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홀린 듯이 이끌려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넘어서는 '기회'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 사이클은 점점 속도를 올린다. 정가라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애초에 '투자'라고 착각하는 소비를 끌어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대형 세일을 기다리며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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