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잔치 앞에 야반도주를 해야 했던 제주인들
아주 옛날부터 '체면'이라는 것이 있었고, 허세의 원인이었다. 그런데 이 체면의 근원은 사실 이기심보다는 공포가 더 강했다. 그들이 커뮤니티에서 도태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리플리 증후군'처럼 타인의 관심을 원하는 것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허세는 '따라잡기'에서 출발한다. '남들만큼 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집단이 내세우는 평균은 사실상 상위계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꽤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전통 같은 것이 있다. 그건 제주도의 '괸당'이라는 친족 커뮤니티와도 연결되어 있는 '잔치'와 '식개(제사)'의 문화다. 물론 지금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의외로 내 기억에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러한 문화는 남아있었다.
'섬'인 제주도는 그 특성상 폐쇄적이고 강한 연결고리를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괸당'이라는 친족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았고 어느 지역 보다도 여전히 친족의 연결고리가 강하다. 적어도 제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 괸당의 영향력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눈치를 보는 문화도 상당히 강하고, 그만큼 배타성도 강하다. 이른바 '텃세'가 강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다.
그런 제주도에서 지역 사회를 포기하고 '육지'로 야반도주하는 일은 사실 드물지 않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의외의 이유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게 바로 '잔치'와 '식개'(제사) 문화다. 아니 제주도가 무슨 안동 같은 종갓집도 아닐진대 왜 제사 때문에 도망간다는 건가? 지금의 제주도만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괸당 문화가 정말 강력하던 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제주도의 괸당(친척) 문화는 식개(제사) 문화에서도 드러나지만 명절문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금은 많이 없어지는 추세지만 그 시절 외부에서 제주도로 온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문화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명절에 괸당끼리 모여서 거의 모든 집을 돌았다. 다른 지방도 고향을 방문하긴 하지만 집성촌이 거의 사라져서 훨씬 그런 경우가 적다. 하지만 제주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괸당들이 제주도를 떠나지 않았기에 보통 괸당들을 방문하면서 하루 종일 돌았다. 심지어 이런 문화는 '괸당'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주도는 명절날 친구 집을 돈다. 친구들끼리 우르르 모여서 친구 집들을 차례대로 돌면서 하루 종일 먹고 논다. 제주도에서는 꽤나 당연한 문화여서 제주의 집들은 대부분 자녀의 친구들이 몰려와서 인사하고 먹고 갈 음식을 챙겨놓곤 했었다. 자녀의 기한은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였다. 긍정적인 면으로 보면 이웃 간의 정이 있는 문화지만 조금 더 개별화된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문화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있던 문화였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야반도주'의 원인은 대부분 잔치였다. 제주도는 잔치를 돌아가면서 지낸다. 그리고 '괸당'의 잔치나 제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제주도 잔치의 특징은 돼지를 잡는 것이었다. 소보다 돼지가 더 흔한 동네였기에 그런 이유기도 하다. 소가 적은 이유도 제주도 땅의 특성상 물이 잘 빠져버려서 논농사가 아닌 밭농사 위주인 영향도 컸다. 돌이 많은 돌밭을 가는 건 소와 쟁기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의 밭을 가보면 밭을 일구며 빼낸 돌을 쌓아서 밭마다 돌담이 있고 심지어는 그러고도 돌이 남아서 밭 중간중간 돌무덤 같은 게 있을 때도 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쪽으로 빠졌는데 돼지가 더 많다고 해서 돼지가 저렴한 건 아니다. 돼지 한 마리를 잡는다는 것은 사실 엄청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부담스러운데 옛날이라고 생각해보면 더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괸당들이 전부 지켜보고 있는 판국에 돼지를 잡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잔치를 하는데 돼지를 안 잡았다? 그러면 괸당들이 뒤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갈지 무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주도의 '잔치국수'에는 돼지고기가 들어있다. 도마에 썰어놓은 '돔베고기'도 잔치문화의 편린이다.
심지어는 같은 잔치를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잔치나 제사를 우리는 한번 하고 끝난다고 생각하겠지만 제주도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이야 타 지역과 별 차이가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 자식이 여러 명이라면 큰형부터 시작해서 막내까지 한 번씩 잔치를 열었다. 그럼 이건 또 형제끼리 비교가 되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더 성대하고 크게 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주도의 차남들이 잔치를 앞두고 야반도주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핵심은 그들이 왜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잔치'를 해야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가 배타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외지인'이 제주도에 와서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비슷한 풍습에 녹아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마치 귀농하는 사람들이 귀농한 지역의 사람들과 생활풍습이나 방식이 달라서 겪는 어려움과 같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제주도는 괸당 문화가 너무 강해서 거기서 배제당하면 생활하기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배제'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제주도 사람들은 그들을 '육지 것들'이라고 불렀다.
제주도의 잔치는 전통이라고 부르는 '허세'의 일종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빚을 내서 잔치를 하고 일 년 내내 그 잔치 빚을 갚느라 허덕허덕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나이가 꽤 있는 제주인들에게 물어본다면 어렴풋한 기억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야반도주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야반도주를 하면 야반도주를 한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연대책임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괸당 사회에서 소외되는 건 그렇게 무서운 일이었다.
그런데 제주도의 괸당처럼 강력한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허세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 타인에게 보이는 삶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실시간으로 타인들에게 관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SNS나 톡방에서 소외당할까 전전긍긍한다. 심지어는 24시간 내내 해당되는 이야기다. 예전처럼 놀고 각자 집으로 흩어지면 그만인 시대는 지나갔다. 심지어 유튜버니 Vlog니 인스타니 하는 활동들을 통해서 스스로 타인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친구들이 전부 다 인스타를 하는데 나만 안 하고 있다면 그 압박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들 다한다는 인스타나 Vlog를 해야 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해야 할까? 과연 꾸미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가능할까?
부모들은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사회의 발달로 그건 충분히 가능해졌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이 드물고, 컴퓨터가 없는 아이도 드물다. 물론 여전히 취약계층은 존재한다. 하지만 평균은 확실하게 올라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강제로 평균을 더 올린다. 이런 네트워크 사회에서 '나만 없는 것 같은' 것들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사이를 강제로 잡아서 더 벌려놓는다. 20대에 누구나 차를 몰고 누구나 클럽을 다니고 누구나 호캉스를 즐기는 것처럼 부추긴다.
당연하다. 차를 몰지 않고, 클럽을 안 가고, 호캉스나 해외여행을 못 가는 환경의 사람들은 SNS나 인스타 같은 곳에 자신의 삶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런 곳을 가는 사람들만이 계속 공유하게 되니 사람들은 그걸 '누구나 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평균조차 되지 않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빠르게 돈을 벌 궁리만 하게 된다. 그리고 '투자'라고 꼬드기는 달콤하게 들리는 사기들에 빠져가게 된다. 심지어는 20대가 약물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도 거기서 어떤 우월감과 허세를 찾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우스는 절대로 거북이를 잡을 수 없다. 우리가 바라보는 '보통의 삶'이나 '평범한 삶'은 언제나 위에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답답함이 우리를 '허세'로 이끌고 있다.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