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이유들은 누구나 있다
MZ세대에 대한 '조용한 퇴사의 시대' 글은 사실 "듣기 좋은 말"이다. 어떠한 행동들에 대해서 이유를 만들어주는 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직장과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자신에게 업무 영역이 넘어오는 것은 싫지만 자기가 하는 일은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란다. 아니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돈을 받은 만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일하고 많이 받기를 원한다. 아. 그건 물론 나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돌발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 그리고 이기적인 행동을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어도 아이들에겐 '내 거'가 중요하다. 남을 밀거나 때리는 행동에 대해서 그다지 경각심이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이야기 중 하나가 "네가 싫은 일은 남도 싫어한다"라는 말이다. 물론 그게 확정적 진리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의 수많은 것들은 그와 똑같은 전제를 기본으로 한다. 싫은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싫은 일이다. 좋은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은 일이다. 사람들이 주식과 도박으로 사기를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진해서'가 아니라 '이기적이어서'가 맞다. 다만 어쨌든 사기를 당해서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기에 우리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래서 익명성의 공간으로 나가면 그런 비판이 쏟아진다. 그렇게 좋은 정보를 너한테 왜 얘기해주겠냐는 이야기다.
일자리 사기도 비일비재하다. 그냥 간단하게 뭐 좀 옮겨주면 많은 돈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케이스는 대부분 범죄에 연루된다. 쉽게 돈 버는 일을 왜 나한테 시켜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전에 사기에 대해 글을 썼을 때도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기들은 나에게 달콤한 기회를 나눠주겠다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이야기해보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기 같은 느낌이 풀풀 난다는 거다. 이건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기범죄와는 다르다. 보이스피싱은 간절함을 이용한 범죄지만 보이스피싱 송금책으로 끼어든 사람들은 보통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보이스피싱에 송금책으로 합류한 사람들은 자신들도 사기의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처벌받는다. 우리는 그에 대해서 '일반적인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알아챌 수 있는 '악의'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영역을 설정하는 이유는 사실 '통발'과도 같다. 타인의 것이 나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에 대해서 나에게 이익일 때도 과연 쉽게 내보내는가. 그렇지 않다. 아마 MZ세대의 특징이 절대적인 영역 선포 같은 것이었다면 그들은 타인들에게 사기도 쉽게 안 당할 것이다. 하지만 MZ세대는 오히려 불특정 다수에게 걸리는 '폰지사기'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심지어 Z세대뿐 아니라 M세대, 즉 밀레니엄 세대에 만들어졌던 말이 '거마대학생'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조용한 퇴사의 시대에서 이야기했던 '업무 영역의 구분'은 '하기 싫은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누리는 이득이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나에게 흘러든다면 그걸 거절할 사람은 없다. MZ세대에게 일은 '돈을 위해서 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 아니라고 반발하겠지만 애초에 그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직업'이 돈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라면 '진로'는 돈을 주고서라도 하는 일이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 이전 세대에 비해서 훨씬 많은 진로교육을 받고 살아왔지만 대부분의 MZ세대에게 '일'이나 '직장'은 '자신의 미래 비전'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인생의 자금 공급책에 가깝다. 그래서 사실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투기에 취약하고 폰지사기에 쉽게 빠져든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직업으로 돈을 벌 생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직업은 대부분 '지금 쓰는 돈'을 만들기 위함이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은 직업과 별개다.
'부캐'라는 것이 유행하는 것 역시 그런 측면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생활하는 일상생활은 사실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되고 싶은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자신을 더 분출하고 보여주기 위한 '부캐' 설정에 대해서 열광한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기에 그것 자체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양한 영역을 소화한다는 것은 지금처럼 다각화된 시대와도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다만 감당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실 한 가지 일을 잘하게 되는 것도 어렵다. 부캐는커녕 본캐도 '쪼렙 존'을 벗어나지 못했다. 본캐가 아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서 부캐를 설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캐의 꿈을 키운다. 트로트 가수의 역할을 해내는 유재석이나 배우로 성공하는 개그맨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성공 케이스의 가능성을 본다.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성공하는 케이스에 가려 성공의 확률을 계산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사실은 돈만 있다면 뭘 하더라도 '성공한 것처럼' 살 수 있다. 그것이 부캐든 본캐든 관계없다. 우리가 금수저를 부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의 허들을 안방 문턱만큼이나 낮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입시비리나 논문 대필 같은 부분들이 이뤄지고 있으며, 학위가 거래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낙하산으로 자녀와 지인의 자녀들을 입사시켰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구속되기는커녕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계층의 사다리는 없고,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가 아니면 암벽등반으로 올라갈 것인가로 나눠진다.
돈만 있으면 전문가도 될 수 있다. 만일 돈이 많아서 회사 대표가 된다면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전국단위의 협회 회장도 역임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정치인들 자체가 아무것도 몰라도 낙하산으로 공기관에서 전문가들을 제치고 수장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던 시기마저 지나가고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다. 결국 MZ세대는 물질만능주의의 끝을 보게 된 세대다.
결국 MZ세대는 지금을 산다. 지금을 즐길 수 있는 돈을 끌어당겨서 지금이라는 순간을 즐기면서 산다. 그리고 그 지금이라는 시간 역시 돈으로 산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미래 역시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판단한다.
브런치에서도 가끔 보이는 20대에, 30대에 돈을 얼마 벌었다는 일명 '파이어족'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돈을 벌었다'가 업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 돈으로 자신들이 미래를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돈을 벌었는가에 대해서 본인들의 입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그럴듯한 이유들이 붙는다. 그런데 사실 코인과 주식으로 부자 된 사람들도 대부분은 자신들이 성공한 것에 대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폰지사기에 가까웠던 코인 붐이라든 주식시장의 장기 호황에 따라서 돈을 벌었다는 이유를 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군가는 망했고, 자신들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성공한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성공 신화를 쓰던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사라진다. 그들이 정말 '그러한 이유'로 성공했다면 그들은 지속적으로 성공을 유지하거나 더 큰 성공을 이뤄나갈 것이다. 그들이 정말 성공했고, 그 비결을 나눠준다고 생각한다면 이 글의 초반부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좋은 정보를 왜 당신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일까. 그들이 너무도 좋은 사람이어서?
그럴듯한 이유들은 누구나 있다. 그게 진짜 이유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