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AI가 던진 폭탄일까 아니면 그저 기폭제인 걸까?
AI는 최근 이슈에서 사라진 적은 없었지만 갑자기 또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벨AI'발 충격의 여파가 상당히 큰 모양새죠. 지금껏 그림을 그려주는 AI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습니다. 디지털 드로잉 대회에서 AI로 그린 그림이 대상을 타기도 했으니까요. 어디선가 '그만해! 이러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다 죽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슈가 시작되던 시점, 아니 그 이전 시점에 이미 AI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제가 예전에 썼던 AI 관련 글에도 조금씩 조회수가 들어오고 있을 정도니까요. 트렌드나 이슈에 민감해서 쓰는 게 아니라 이번 AI 상황은 좀 다릅니다. 이건 사실 AI와 학습, 그리고 창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별거 아니지만 브런치에서 콘텐츠와 AI, 그리고 교육을 동시에 다루고 있는 제 입장에선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림을 그려주는 '이미지 생성' AI에 대한 노력은 쭉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는 AI의 발달과 함께 급 가속을 타고 있죠. 이렇게 갑자기 AI가 급격히 발전하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당연하게도 '연산능력'의 발전입니다. 현재의 GPGPU 시장을 비롯한 그래픽카드 업계는 AI를 상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AI가 처리해야 하는 대부분의 데이터는 '그래픽'을 포함하기 때문이죠.
인간이 받아들이는 가장 많은 데이터가 시각입니다. 인간이 받는 정보의 보통 80% 이상이 시각에서 온다고 합니다. 청각, 후각 등의 다른 정보와는 차이가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뇌와 사고를 카피해서 만든 컴퓨터 역시 결론적으로 시각적으로 들어온 데이터에 가장 크게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닮게' 만들어진 컴퓨터가 최종적으로 다가가는 방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 그래픽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 카드'관련 기술들이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AI에 있어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바로 '학습방식의 차이'에 대한 문제죠.
저를 포함해서 일반인들에게 이제야 귀에 익은 단어 중 하나가 '딥러닝'이라는 단어입니다. 실제로는 딥러닝이라는 표현이 쓰이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한 기술만을 꼬집어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AI는 반복적인 연산을 통해서 학습을 누적시키는데 그런 방식을 통해 데이터를 쌓아가는 것 자체를 딥러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를 쌓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이번에 논란의 중심에 선 '노벨AI'는 사실 이름에서부터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노벨 novel'(영어권 발음으로는 나블에 가깝지만...) 그러니까 소설을 쓰기 위한 AI입니다. 그래서 메인은 어떠한 키워드나 플롯을 넣었을 때 AI가 자동으로 소설처럼 문장을 만들거나 교정해주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AI입니다. 심지어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몇 년째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런 텍스트 기반의 AI업체가 왜 그래픽 AI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학습'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공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무도 답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알면 누구나 서울대에 갔겠죠. 사람에 따라서 적합한 교육방식이 다르기도 하고 목표에 따라서 다르기도 합니다. 사실 시험만 잘 보고자 한다면 내용을 100% 암기만 하더라도 시험을 잘 볼 수 있습니다. 100점이 나오지만 내용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는 목표를 달성했기에 그 사람의 학습은 성공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목표가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내용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응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을 학습 성공의 목표로 잡는다면 어떻게 되냐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일부 다른 나라들의 졸업시험이 '에세이'로 이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부분에 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글을 쓸 수 없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글이나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도 학습적인 소양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 아래에서는 단순 암기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단순 암기로 처리하려면 수많은 출제 유형에 맞춰서 타인과 중복되지 않을 수 있는 답안을 미리 제시하고 기억해야 하는데 그건 엄청나게 방대한 용량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출제 유형에서 어긋날 가능성도 떠안고 있습니다. 그럼 결국 이 방식에 적합한 것은 암기가 아닌 다른 방법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AI의 학습에도 적용됩니다. 많은 AI는 '경우의 수'를 계산해보고 결괏값을 확인하는 형태로 학습합니다. 그 결괏값을 토대로 '정확도'를 높이는 거죠. 그런데 정답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창작형 AI의 어려운 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창작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AI는 어떻게 창작을 할 수 있게 학습되어야 할까요.
여기서도 다시 사람의 학습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학습을 하고 있을까요. 물론 이것 역시 천차만별이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예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정석이라고 부르는 방법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널리 통용됩니다. 대부분의 창작은 타인의 완성된 감성이나 창작물을 보고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알아야 표절과 모작 논란에서 피할 수 있다는 부분도 있죠.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기본적으로는 어릴 때 좋아하는 만화를 따라 그리는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각 반에 한두 명은 '드래곤볼'을 그리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그림풍을 흉내 내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시작점으로는 나쁘지 않죠. 특히 그중에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고 원하는 그림풍이 있다면 그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려 보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완연한 창작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그 그림풍을 극복하고 거기서 자기만의 그림풍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영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지금 인기 있는 만화가나 웹툰 작가 중에서도 타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처음에는 비슷하다는 부분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순간 거기에 자신만의 느낌이 녹아들기 시작한다면 결국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경우도 많죠. 거기서 우리는 더 이상 카피의 영역이 아니라 창작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글이 길어서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