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일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아주 유명한 해외의 밈 중에 그런 글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자전거가 갖고 싶어서 신에게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기도만 하고 있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 자전거를 훔치고 신에게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
블랙 유머지만 사실 어떠한 일들은 간절한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언가 행동이 있어야 그에 따른 결과가 발생하죠. 아. 물론 범법행위를 하면 신이 용서하기 이전에 법의 철퇴를 받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유머는 유머일 뿐이니까요.
우리나라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유머가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유머였죠. 일을 자꾸 그만두고 싶어지는 사람들에게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보통 월급입니다. 하지만 월급날 반짝 기분이 좋을 뿐 소위 말하는 '금융 치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빠지죠.
한동안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해결방법은 '일단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카드가 일반화되고 사람들이 할부와 대출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사고 싶은 비싼 물건을 할부로 지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집이든, 자동차든, 아니면 갖고 싶었던 비싼 가방이나 전자기기더라도 말이죠. 그걸 할부로 지르고 나면 그걸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히 이것도 유머라서 실제로는 그렇게 살면 불합리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런 유머에 사람들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실 일이 너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만두고 싶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절박함이 있을 때 우리는 쉽게 포기할 수 없죠. 참고로 기업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유머가 있습니다. 오래 쓸 사람을 뽑으려면 가정형편이 좋지 않거나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는 케이스를 뽑으라는 블랙 유머였죠.
지르고 뒷감당을 하는 것은 사실 '빚'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끌어다 쓴 '무언가'는 결국 돌아옵니다. 훔친 자전거도 결국 훔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처벌이 돌아올 것이고, 할부로 지른 물건들도 나중에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부분 이제 더 이상 빚을 지는 것을 낯설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할부든 대출이든 다양한 이름으로 그걸 받아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빚을 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해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직장인 월급으로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집을 사기 위해서는 20년이 넘게 돈을 모아도 쉽지 않습니다. 오로지 집 하나만 보고 모아도 그 정도입니다. 자동차나 각종 다른 사고 싶은 물건은 포함하지 않아도 그 정도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빚을 이렇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보다 훨씬 예전부터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았습니다. IMF를 겪으면서 한국이 휘청거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 상당수의 기업이 재정적으로 불건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이전에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일본이 과다한 투자와 문어발식 확장을 반복하다가 버블에 의해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경제계 사람들에게 입증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아무리 무너져도 대기업은 직원들을 볼모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었음에도 무시하고 부채비율을 엉망으로 끌어다 쓰면서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IMF 때 결국 몇 개의 대기업과 건설사, 그리고 은행들이 무너졌습니다. 고통받는 것은 그 거대한 그룹에 속했던 직원들이지 상류 계층은 다 살아남았습니다. 이미 그들은 기업과 분리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기업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면서 일단 지릅니다. 실제로 사업을 해보면 누구나 '빚'이 아예 없이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규모를 키우고 그 분야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투자를 필요로 하는데, 그 투자를 오롯이 이익금이나 개인 돈으로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투자에 대한 시기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대기업뿐 아니라 개인사업자들도 대출을 끼고 사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용사회는 기본적으로 신용에 의해서 가치를 부풀립니다. 가치가 부풀었다는 것은 그 모든 가치가 실물가치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치나 신용가치에 의해서 변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실물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거래합니다. 심지어는 가상화폐처럼 아무 가치가 없는 데이터도 '기대가치'만으로 돈을 부여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돈을 쓸어 담습니다. 그들이 쓸어 담은 돈은 결국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죠. 심지어 빚을 지고 빌려서 만든 돈일 때도 많습니다.
결국 누군가는 오늘도 SNS와 인터넷에서 성공 신화와 'FLEX'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부럽습니다. 그리고 미미한 변화에 목매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비교하게 됩니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는 이 시대로 오면서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어릴 때 그렇게 저축을 강조하던 사회는 사람들에게 갖은 방법으로 빚을 낼 것을 독촉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지 않아도 인터넷에 넘쳐나는 화려함에 휩쓸립니다.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을 모아서 천천히 이루어 가는 것이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지릅니다. 용서는 내일의 내가 구하든가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