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라는 게 있다. 캐슬로(Castle law)라고도 하는데, 직역하자면 '성의 원칙'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있고 그 공간만큼은 '침범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정당방위법의 일종이다. 또 다른 널리 알려진 정당방위 법인 'Stand your ground'법과는 약간 다른 지점이 있다. 캐슬 독트린의 경우는 특정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이든, 사업체든 보호받는 자신만의 캐슬(Castle)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예전에 자신의 집에 한밤중에 침입한 강도를 때려서 뇌사상태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는데 결국 과잉방어로 징역형을 살았다. 도둑이 도망가려 했는데 때렸다는 정황이 있었다는 거였다. 만일 캐슬 독트린이 적용되는 곳이었다면 애초에 기소 자체가 안됐을 것이다. 특히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에서는 타인의 '캐슬'을 침입하면 총을 맞아도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Z세대의 한국인들은 심리적인 '캐슬'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 타인은 타인이고 자신은 자신이다. 가장 큰 이유라면 우리는 더 이상 쉽게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사기와 범죄가 넘친다. 주식 리딩 방이나 코인 투자처럼 달콤한 미끼를 던져놓은 사기도 많다. 그렇게 자신이 욕심을 부리다가 당하는 사기는 차라리 낫다. 보이스 피싱이나 깡통전세 사기처럼 타인의 마지막 남은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사기도 많다. 문자 하나 잘못 클릭했다가 억대의 대출사기에 당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기꾼이나 범죄자들의 말로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 생각보다 잘 먹고 잘 산다. 사람들은 사기를 쳤을 때 얻는 이득이 그들이 받는 처벌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사기를 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치인은 말 한마디에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불신이 쌓여서 우리는 서로 마음에 장벽을 쌓는다. 그렇게 불신사회로의 이행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갈구한다. 극단적인 고립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구독하고 누군가에게 좋아요를 누른다. 가까운 사람들도 좋지만 이미 발생한 심리적인 '캐슬'은 때로는 불편하게 작용한다. 그저 가볍게 연결된 관계는 쉽게 멀어질 수 있지만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형성된 관계는 얽매이게 된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면 그에 대해 심리적인 '캐슬 독트린'이 발생할 때가 더 많다. 겉으로는 공감을 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두렵다. 어차피 틀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이 세워지는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반려동물은 주인이 자주 바뀌면 심리적인 장벽이 생겨서 쉽게 친해지지 않는다. 지역아동센터의 학생들도 찾아오는 선생님들이 정을 붙일만하면 자주 바뀌는 탓에 쉽게 선을 긋는다. 보육원은 그보다 더 심하다. 가장 외롭고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벽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벽을 쌓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 글에서도 불신에 대해서 꽤나 여러 번 언급했다. 의심과 불신의 신뢰사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도, 우리가 늘 이용하는 유튜브의 구독 정책도 대부분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단단히 믿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콘크리트'라 부르는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계층은 젊지 않다. 대부분이 이런 시대 이전에 더 끈끈한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믿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때라고 해서 사기꾼이나 범죄자가 없었을까.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만큼 타인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지금은 그걸 '텃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외부인을 바라보는 지역민의 심정이 그랬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국수주의'라든가 '민족주의'같은 형태를 가져왔다. 작게는 지역이지만 크게는 국가적으로도 별 다르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금 '극우'라 불리는 자국과 민족 우선주의들이 이른바 Z세대를 등에 업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Z세대는 끈끈하고 단단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서 벗어나면 순식간에 등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그들의 '캐슬 독트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우적인 성향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복지에 대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전 세대에 누렸던 무언가를 자신들이 못 누리고 있다면 그것도 빼앗긴 것이라 받아들인다.
가끔 범죄자의 인권에 관해 신랄하게 비꼬거나 비판하는 영화나 미드가 나온다. 최근에도 국내에서 강력범죄자들이 줄줄이 출소하면서 지역민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범죄자의 인권을 부르짖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기 집 앞에 그 사람들이 줄지어 살게 된다면 웃지 못할 게 틀림없다. 진보 세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런 눈에 보이는 악의에 대해서 약점을 보이고 젠더 갈등이나 다문화 문제에만 집중을 기울이게 되면서 그들은 더 이상 나이 든 콘크리트 세대도 젊은 Z세대도 외면하는 정치세력이 되어버렸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에서 극우정당이 제2정당에 올랐다. 심지어는 그 정당은 네오나치즘에서 출발한 정당이다. 그들의 지지기반은 20대 청년들이다. 이탈리아는 오랜만에 극우정당의 총리가 들어섰다. 세계 곳곳은 코로나와 경제불안 앞에 자국과 자국민을 보호하는 우파 성향의 정당이 득세를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도 트럼프가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원 구성에서는 우파가 득세를 했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다를 게 없다.
이런 것은 우연이 아니다. Z세대는 코로나 이전에 누렸던 화려한 젊음을 불태우는 시간을 돌려받고 싶어 했다. 코로나와 경제적 불황은 전 세계적이었고 타국에 비해서 훨씬 좋은 대응을 거쳤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들에게는 당장 그들이 빼앗긴 것의 죄를 누군가에게 따져 물어야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된다면 억울하니까. 그들이 꿈꾸던 그 이전 세대들이 누리던 대학생활, 연애 생활, 찬란한 청년 생활을 돌려받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돌려받은 것은 '보호'가 빠진 자유였다. 그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이 상황이 그들이 자초했다거나 그들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번엔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렇지만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뒤에 남아있는 근원적인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캐슬 독트린'의 의미는 '자력구제'다. 나중에 그 과정에 발생한 죄를 묻지 않을 뿐,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캐슬'은 뭐였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의 선택이 그걸 지켜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