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도 가끔 언급했지만 저는 음악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냥 듣는 것을 넘어서 밴드를 거의... 20년 가까이했으니까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유흥문화의 하나였던 것은 바로 '노래방'문화였습니다. 심지어 오락실에 코인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노래를 연습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 덕분에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기도 하지만요.
여하튼 그 시절에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노래방 모임' 같은 걸 결성하기도 하고, 친한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연속으로 3시간이나 4시간을 끊고 부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끼리끼리 놀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노래방을 가면 당황할 때가 꽤 많았습니다. '간주 점프'라는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노래는 1절만'이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음악을 싫어하는 것도 아닐 텐데 간주 점프 같은 것을 해서 음악 감상을 망치는 것을 '그때는'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뭐 사회생활하다 보니까 결국 익숙해졌지만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튜브만 보면 저도 모르게 스킵에 손이 갑니다.
어쩌다 보니 바야흐로 '스킵'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어도 '3줄 요약'을 외칩니다. 저는 제 글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바쁜 현대인이 읽기에 제 글은 너무 깁니다. 한 때 앞에다가 3줄 요약을 달아볼까 생각을 했을 정도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저도 지금은 영상을 볼 때 스킵을 누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갈수록 극장에서 영화를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원인을 영화 자체의 퀄리티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 몰아보기 같은 걸로 요약본을 보는 걸 생각해보면 과연 그럴까 생각이 듭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영상을 더 짧게, 내가 원하는 부분만, 그리고 흥미 있는 부분만을 찾습니다. 유튜브의 영상들도 길어서 이제는 '쇼츠'영상들이 인기를 끕니다. 틱톡이 히트 친 이유는 영상이 길지 않다는 부분도 한몫을 했습니다. 현대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시간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하루의 시작을 핸드폰과 컴퓨터로 시작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무언가를 핸드폰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영상은 너무 많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걸 볼 시간은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빨리 대충 넘겨서 보지 않으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킵'을 합니다. 대부분의 영상은 이제 오른쪽 화면을 두드리면 5초에서 10초 정도 앞으로 건너뛰는 게 당연한 제스처가 되었습니다. 컴퓨터에서도 영상을 보면 무조건 화살표를 누릅니다. 심지어 아예 일 할 때 옆에 유튜브를 배속재생으로 틀어놓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튜브를 제 속도로 보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 못 보기에 시간 절약을 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유튜브를 편집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배우는 기술 중 하나가 우리가 말하는 호흡과 호흡 사이를 잘라 붙여서 말을 빠르게 하는 것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말과 말 사이가 느리면 답답함을 느끼고 그 영상에 머무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유인 요소에 의해서 어떤 경우는 말 한마디 없는 영상이 히트하기도 하고 천차만별이지만 적어도 '경향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스킵이 갖고 있는 맹점들이 많습니다. 한동안 '약관'에 대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험이나 사이트를 가입할 때 '약관'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너무 길고 어려운 말들이 잔뜩 쓰여있는 그 약관 말이죠. 예전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스킵'한다는 특성을 활용해서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약관을 작성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강제로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야 동의를 누를 수 있게 된 약관들이 많지만 그 스크롤을 다 읽으면서 내리는 사람은 드뭅니다.
무언가 만들 때, 사람들이 이것을 스킵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굳이 모든 부분을 잘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스킵할 부분이 존재한다면 말이죠. 현재 유행하는 웹소설이나 웹툰을 읽을 때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그냥 지나가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웹소설 같은 경우는 분량이 핵심(?)이다 보니 그걸 염두에 두고 스탯이나 잡 지식을 붙여 넣기 해서 사람들이 대충 안 읽고 지나가도 되는 파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읽고 싶은 사람만 읽는 부분이 생기는 순간이죠. 이는 필연적으로 작품의 퀄리티에 영향을 줍니다.
어떻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느껴지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어떤 영상들은 스킵하지 않고 잘 봅니다. 스크롤을 미친 듯이 내려버리지 않고 정독해서 읽는 글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킵하는 문화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건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활동은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사람들이 스킵을 한다는 것은 결국 눈에 확 들어오는 자극을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자막을 덕지덕지 붙이거나 눈을 자극할 수 있는 선정성에 기대기도 합니다. 유튜브의 썸네일은 그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혹을 피해 가기 힘듭니다. 변태라서 자극적인 썸네일을 클릭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디테일을 고려한 무언가를 만든다고 해서 그게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열심히 한 것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적어도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자극적인 콘텐츠'들에 비해서 나쁘게 나오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가성비'의 사회는 들어간 노력 대비해서 '아웃풋'이 발생하지 않는 시장을 외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자극적인 것들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날에는 드라마가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포청천, 허준, 대장금... 기억에 남아있는 드라마 중에서 진짜 거리에 사람이 없어진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인기 있었던 드라마도 꽤 있습니다. 지금기준으로는 아예 말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그때는 몇 개의 방송사 이외에는 드라마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방송사를 넘어 웹드라마도 넘쳐납니다. 예전에는 외화나 미드는 어차피 방송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나오는 작품들이 대상이 됩니다.
결국 선택지와 정보량은 늘어났는데 '사람'이라는 단말이 취급할 수 있는 속도는 거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배속재생으로만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생길까요. 심지어는 약간 다른 이야기긴 합니다만 음악마저 배속재생 음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카세트 테이프를 빨리 감기를 하더라도 그건 스킵과는 달랐습니다. 미리 보기도 없던 시절이라 한번 다 들어보지 않았다면 빨리 감기를 할 일도 없었습니다. 앨범은 한 번 사면 전곡을 다 들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곡들을 믹스테이프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정성이었습니다.
스킵하지 않을 여유, 다시 찾는 날이 오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