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하고 싶었다.
아주 어린 그 시절 우리는 너무 게임이 하고 싶었다. 친구 집에 있던 8bit 게임기로도 우리는 너무 신나게 놀았다. 영어도 잘 모르던 시절, 일본어 사전을 끼고 어떻게든 '조개 용사 이야기'를 깨 보려고 노력하던 그 나날들이 기억난다.
시간이 지나서 그 마음은 오히려 커질 뿐이었다. 중학교 때 돈을 모아 구입한 새턴이 얼마나 좋았던지. 내가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플레이스테이션 파'인 친구들을 버리고 나 홀로 새턴파를 고집했던 그 시절.
만화책을 보고 싶은데 대여점이 워낙 비싸서 몇 권 빌려보지도 못하던 그 시절.
음악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기타를 구해놓고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하고 있던 그 시절.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지금도 내가 쓰는 이어폰은 제일 비싼 것도 10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넋을 놓고 음악을 듣는다.
나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면.
고작 모노 사운드 한쪽짜리 이어폰의 찌지직 거리는 음질도 좋다고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케누드 인켈 소니 오디오의 소리에만 감탄하던
그럼에도 지금의 이어폰 음질은 가끔 눈물이 날 것 같이 나를 감동시킨다.
분명 그 어릴 때, 내가 매일 metallica와 skidrow만 들어대던 그 시절에
이런 음질로 들을 수 있었다면
나는 미칠 듯이 행복했을 텐데.
별로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이 하루 종일 음악만 듣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심지어 노래조차
지금은 너무 손쉽게 인터넷에서,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내가 원하는 노래를 듣는다.
듣고 싶은 노래는 너무 많아서 아마 죽기 전까지 매일 음악만 들어도 다 못 듣겠지.
도서관에 책이라고 해봤자 내가 읽는 소설 종류는 몇백 권 되지도 않아서 다 읽어버렸던 그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웹소설이 하루에 수백수천 개씩 쏟아져 나온다.
하늘사랑 채팅방에서 '만퀴'를 하고 놀면서 당시 웬만한 만화에 대해서는 안다고 자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 듣는 기다란 제목을 외우기조차도 힘들다.
번역도 안된 일본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친구들과 돌려보던 중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천지무용, 오 나의 여신님, 그리고 에반게리온.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정보가 쏟아진다.
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고 부모님께 졸랐다.
하지만 당시에는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학원이 우리 집에서 멀기도 했고, 우리 집이 그걸 배울만한 돈도 없었다. 피아노는 너무도 비싼 악기였으니까.
나이가 먹고 기타를 배우려고 했을 때처럼,
악기는 언제나 배우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필요로 했다.
그중 가장 저렴한 것은 그 당시에는 아마도 시간이었겠지.
지금은 인터넷에 정보가 넘친다.
피아노? 웬만큼 가난한 집이어도 간단한 디지털 피아노를 사는 건 일도 아니다.
내가 어릴 때 디지털 키보드가 30만 원이었는데 당시 돈으로 30만 원이면 엄청난 가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지금은 그때 그 키보드보다 좋은 키보드가 지금 가격으로 10만 원이 안된다.
그때의 느낌으로 보면 30배쯤 되려나...
흔히 말하는 '라떼는' 그렇게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무리 주어져도 안 하는 것이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음악도, 만화도, 독서도, 작문도... 하고 싶은 거 투성이지만 정작 중요한 시간이 없다.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나면 시간이 없다.
거기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에 시간을 보낼지 결정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
기회 과잉의 시대.
옛날 말로 배부른 소리 하는 시대를 지금 나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