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과 목구멍

짧은 에세이 (1)

by 게인

나는 어렸을 때 알약을 잘 삼키지 못했다.


그 조그만 아스피린을 못 삼켜서 울고불고 목에 걸렸다 빼내고를 반복한 끝에 다 녹아서 입속에서 사라지고 나서는 그게 더 심해졌다. 다행히도 그 당시에 병원에서 약을 줄 때는 새하얀 약봉지에 가루약을 넣고 삼각형 모양으로 여러 번 접어서 넣어주었기에 나는 쓰디쓴 가루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몇 년에 한 번씩, 이제는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알약을 그냥 먹으려고 했다. 당시 '콘텍 600'이라는 콧물감기약이 '캡슐' 형태로 나왔는데, 혹시 이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실험해보다가 입속에서 다 녹아서 결국 알갱이만 삼켰다.


사실 생선 가시를 좀 무서워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가 뭔가를 특별하게 못 삼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밥을 빨리 먹는 편이라서 부모님은 내가 음식을 잘 안 씹고 삼킬까 봐 걱정을 하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도 마음먹으면 밥을 '마시는' 수준으로 빨리 먹을 수 있지만.




알약을 못 삼키는 주제에 나는 자주 아팠다.


어릴 때 급체에 의한 열 경기를 앓은 이후로는 쉽게 체하고 급성으로 열이 나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몇 년에 한 번씩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서 부모님을 기겁하시게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시간은 항상 병원이 문을 닫은 새벽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에서도 알약을 그대로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알약을 삼킬 수 없었기에 부모님은 숟가락 위에 알약을 놓고 다른 숟가락을 겹쳐 눌러 가루로 만들어 주셨다. 옆에서 지켜보던 형과 누나는 알약으로 먹으면 덜 쓴 것을 그렇게 먹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나에게 쓴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옛날 말로 죽다 살아난 열 경기 이후에 나는 오랫동안 한의원을 다녔다. 그리고 5살도 되기 전에 쓰디쓴 한약을 자주 마셔야 했다. 처음에는 사탕이라도 주며 달래주시던 부모님이었지만 내가 7살이 되던 무렵부터는 사탕도 없었고 그냥 마셔야 했다. 울다 망설이다 그렇게 한약을 마시던 나에게 가루약의 잠깐의 쓴 맛 정도는 정말로 별게 아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알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 물과 함께 알약을 삼킬 수 있게 되었고, 한번 삼킬 수 있게 된 몸은 그 뒤로 알약 먹는 것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얼마 전 아이는 RS바이러스로 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와 아내는 역류성 식도염에, 그리고 결국 나마저 감기에 걸리며 온 집이 약을 먹는 상황이 발생했다. 집에는 곳곳의 약국에서 온 약봉지들이 넘치고 있었다. 나는 아파도 약을 잘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가뜩이나 아픈 상황이라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에 감기약을 먹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약이 잘 듣지 않았다. 다시 약을 바꿔보아도 여전히 약이 듣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약국에서 목에 통증을 느낀다고 하자 수영장 물 색깔처럼 파랗고 뚱뚱한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약을 삼키는 데 실패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계속 약을 먹어왔는데 갑자기 약을 못 삼키다니. 하지만 약이 보통의 약보다 2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삼켰다. 잠시 당황했던 것뿐이라 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약은 넘어갔지만 나의 감기는 넘어가지 않았다.


약국에 가서 일주일째 약을 바꿔서 먹었는데도 듣지 않는다 설명하고 약을 좀 세게 주셔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은 내 친구 동생이지만 내가 말 안 해서 모르는데도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약사님이 고민 끝에 약을 몇 번 들었다 놨다 하더니 내 앞에 내놓았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집에 와서 약을 먹어보았다. 이전 약들은 식전 식후에 크게 영향을 안 받는 약들이었는데 식후에 먹으라고 되어있는 것부터 뭔가 강해 보였다.


첫 번째 약은 캡슐 두 개였고 나는 가볍게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 두 번째 약은 '환'이었다.


스물다섯 개의 작은 환약이 들어있는 약이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키려고 했지만 또다시 '그것'이 왔다. 환약은 입안에서 신맛을 내며 굴러다닐 뿐 나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어... 또 왜 이러는 거지?' 하는 당황스러운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물을 마시며 삼키려고 노력했다. 그제야 목구멍이 어느 정도 열리면서 절반의 환약이 넘어갔다. 나는 물을 한 번 더 마시고 나서야 나머지 환약을 다 삼킬 수 있었다.


다행히도 약의 효과는 뛰어났다. 나는 약을 먹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절할 듯이 밀려오는 피곤함을 이길 수가 없어서 쓰러지듯이 잤다. 자고 일어나니 확실히 그 전보다 상태가 좋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감기를 떼어버릴 요량으로 다음 끼니에도 약을 먹기 위해 다시 그 '환'과 마주했다.


아무래도 한 번 목에 걸렸던 경험이 있는 것을 마주하면 망설이게 된다. 잠시 망설이다가 환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그래! 이거지. 목구멍이 물을 마시기 위해 열리면서 모든 환약들이 목구멍에 거의 느낌도 없이 지나갔다. 이제는 졸리는 것만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게 또는 잘하게 되고 나면, 처음에 그것을 잘 못하던 시절에 대해서 뿌옇게 흐려진 기억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특히 그것을 잘하게 된 순간의 그 느낌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에게 체화된 것들은 체화되지 않았을 때의 반응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자전거를 못 타는 연기를 하면 아무래도 어색한 연기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알약을 삼키게 된 내 목구멍은 언젠가 또 자만에 빠질 것이다. '야. 어떻게 알약을 못 삼키냐? 그냥 목구멍을 열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하지만 나의 기억은 지금 이 순간을 붙잡고 내 아이가 혹시라도 알약을 못 삼킨다면 삼킬 수 있게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도록 도와줄 것이다.


... 그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