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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Apr 25. 2024

구름빵, 피프티피프티, 그리고 뉴진스

문화, 기획, 그리고 저작권

세간은 하이브와 어도어(하이브의 자회사 레이블)의 공방전으로 꽤나 시끄럽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서 거대 기업이 되면서 BTS 성공신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방시혁과 하이브, 그리고 사원에서 시작해서 이사까지 달았던 SM의 입지전적 인물인 민희진의 어도어, 그리고 뉴진스가 얽힌 공방이다.


아직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이르지만 대중들은 이 다툼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당연히 가장 얼마 되지 않은 사건은 '피프티피프티' 사건이겠지만 그 외에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민희진이 주장하는 '뉴진스'의 '문화적 카피'라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위함이다.








2020년, 10년 여가 넘는 법적 분쟁은 결국 백희나 작가의 패소로 끝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던,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상을 받은 '구름빵'은 그렇게 '한솔교육'의 것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법이 창작자에게 유독 참혹한 것일까?




법적 분쟁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저작재산권'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작재산권이 아니라 '매절 계약'에 대한 이야기로 이 사건을 다뤘다.


'매절 계약'은 작가들이 작품을 낼 당시에 출판권과 저작권 사용료 등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한 번에 지급하는 계약이었다. 당시 업계의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작가가 매절 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더 신인인 작가들이 '매절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1990년대 이후로 저작권 개념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고, '매절 계약'에 대한 논의도 거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매절 계약'이라는 말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다만 오히려 인세 지급에 관한 용어 중 하나로 심지어 일본에서 사용되던 '매취 계약'의 형태가 넘어와서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구름빵을 만들던 2003년의 백희나 작가는 신인이었다. 그리고 구름빵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당시 '한솔교육'이라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계약서는 '저작재산권 양도'에 대한 부분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마 계약서 상에 단순 '매절'이라는 용어로 갈음한 것이었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다.


결국 '한솔교육'은 구름빵의 저작재산권을 가지고 애니메이션과 다양한 2차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리고 구름빵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백희나 작가와의 긴긴 소송전에 휘말렸다.




핵심은 '저작재산권 양도'가 당시 작가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거나 또는 기망, 억압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는가의 문제였다. 


백희나 작가가 당시 유명작이 없는 신인이었던 점, 그리고 2003년 계약 이후 2004년에 발간하기까지 당시 동화책 제작으로는 드물게 출판사에서 몇 달에 걸친 스튜디오 촬영을 지원한 점 등이 그들의 계약이 단순히 작품을 편취할 목적으로 저작재산권을 강탈한 사건으로 판단하지 않게 만들었다.


작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백희나 작가의 억울함이 십분 이해가 되지만, 당시 신인이었던 백희나 작가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꽤나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은 '한솔교육'이 일방적인 착취였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그럼에도 저작재산권 양도가 저작자에게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주 최근에도 헐값에 저작재산권의 양도는 이뤄지고 있다.


위에서 다룬 피프티피프티 사건(이하 피프티 사건)에서 '큐피드'의 저작재산권을 외국 작곡가에게 헐값에 사들여서 심지어 회사 이름으로 구매한 줄 알았는데 개인 이름으로 가지고 있었단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멤버가 직접 쓴 랩 가사에 대한 저작권조차도 꿀꺽한 정황을 가지고 있다. 


2003~4년에 문제가 되었던 저작재산권 양도지만 2020년대인 지금에도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피프티 사건은 조금 다른 면에서도 구름빵과 비교해 볼 부분이 있다. 


피프티 사건이 엔터계, 특히 아이돌계에서 주목을 받은 이유는 신인 아티스트를 키우기 위해서 들어간 비용을 무시하고 인기를 얻게 된 이후의 자신들의 지분에 대한 주장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돌 불공정 계약 문제는 오랜 기간 엔터계의 이슈였다. 

그럼에도 정산에 대해서 여전히 꽤나 보수적인 시각이 남아있는 이유는 투자금을 회수조차 못하고 엄청난 손해만 보고 주목조차 못 받고 사라지는 아이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2000년대 초반처럼 성공 못한 아이돌을 업소에 돌리며 착취하는 엔터사도 드물다.


그래서 수많은 투자 끝에 그 낮은 확률을 뚫고 성공한 아이돌이 그렇게 쉽게 그 이전 투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투자사와 어떤 기획사가 선뜻 투자를 해서 '기획'을 하겠냐는 거였다.




다행히도 피프티 사건은 대중의 시각에 맞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었기에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돌과 기획사의 관계에 대해서 '일방적 약자'의 관계로 보지 않게 만들었다.


아이돌을 '아티스트'라고 존중해서 불러주긴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단순히 그들만의 힘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기획'이 '기획'인 이유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명 '기획 장인'이었던 '민희진'과 하이브, 그리고 어도어, 그리고 뉴진스까지 이어진다.


SM에서 이미 기획 장인에 컨셉 장인이었던 민희진은 일반 사원에서 젊은 나이에 SM 이사에 올라가는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다. 하지만 이사 정도 되는 직위면 더 이상 직접적으로 컨셉이나 기획에 관여하기 어려워진다. 민희진은 결국 SM 이사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하이브 산하의 레이블 '어도어'의 대표로 전격 이적한다.


당시의 하이브는 이미 작은 기획사가 아니었다. 


빅히트 시절에 BTS가 성공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작은 기획사였지만 이미 3대 기획사 다음가는 수준이었다. 어도어가 들어오기 이전 중소 기획사들을 산하로 흡수합병할 정도의 위치였다.


그리고 민희진이 들어온 이후에 '어도어' 레이블에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만들어 낸 아이돌이 '뉴진스'였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런 민희진이 지금 어도어 지분 관련 계획이 유출되자 방어 논리로 가지고 나온 것이 '뉴진스'를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논리다. 하이브가 뉴진스의 문화적 가치나 형태를 무단으로 카피하고 있다는 요지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일단 어도어는 하이브의 지분율이 80% 가까이 되는 하이브의 '자회사'다. 애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도어'가 하이브의 자회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뉴진스를 '어도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이브'의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정도였다. 


독립적인 레이블이지만 하이브와 '컨셉'이나 '방향'이 겹쳤을 때,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더라도 그걸 법적으로 다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YG나 JYP, SM 같은 회사에서 아이돌끼리 컨셉이 겹친다고 문제가 되는 거랑 비슷하다.


즉, 회사에 소속되어 만든 기획은 그 기획의 권한 자체가 회사에 소속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건 애니업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뽀로로의 기획을 제안했던 아이코닉스의 직원은 뽀로로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 하지만 뽀로로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했다. 기억이 맞다면 몇 년 후에 이직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뽀로로 기획을 했다는 이력은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뽀로로에 대한 권한 주장은 불가능하다.


업무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해서는 회사가 권한을 갖는 것이 문제가 없다. 업무 외에 밤중에 집에서 혼자 쓴 책은 개인의 저작물이며 자산이지만 그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건 처음의 구름빵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한솔교육이 회사적 지원을 제공했던 이유로 그들이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을 인정받는 원인이 된다. 당시 신인 작가가 기획을 가지고 왔다고 하나, 제작에 대한 비용, 장소 등을 제공하고 관여했으므로 충분히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을 권리가 있었다고 보게 된 것이다. 만일 단순 매절 비용만 지급하고 끝났다면 백희나 작가가 승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과 저작재산권 이야기는 복잡하니까 그 정도에서 넘어가고...




그리고 두 번째 관점은 뉴진스의 '문화적 가치나 컨셉'을 저작권 같은 저작물의 기준에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민희진이 '만들어낸' 컨셉이라서 저작권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 걸까?


뉴진스의 음악이나 각종 저작물에 관해서 갖고 있는 법적 권리는 대부분 '어도어'에게 있다. 민희진이 아니라. 그래서 '어도어'의 지분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하이브와 '뉴진스'를 분리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사실 '피프티 사건'과도 겹친다. 


하이브는 어도어에 투자를 했고, 레이블을 만들었다.


과연 하이브의 자금력과 힘이 없이 '민희진'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 컨셉 하나로 '뉴진스'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싸움은 우리가 이미 피프티에서 봤던 싸움이다. 물론 민희진은 자신은 안성일과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법적 공방은 높은 확률로 벌써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팬들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프티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의 힘을 빌어서 무언가를 기획한다면 결국 그것은 회사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기획자들이 프리랜서가 되거나 자신의 회사를 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방송국 피디들도 그래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수많은 성공 사례들도 있겠지만 그와 만만치 않게 실패도 많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힘이 자기 자신의 기획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이 다를 가능성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을 바라볼 때, 그 성공 요인에 핵심이 있을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많은 필요조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핵심 요인만 옮겨 심으면 똑같이 성공할 것이라 착각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 히트했던 것들을 국내에 들여와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다 보니 그대로 카피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대도시권을 다시 카피한다. 


그것이 '상품 기획'이든 '교육 기획'이든 '공공영역의 기획'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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