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럴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웹소설, 웹툰, 음악...
모든 것들은 트렌드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그걸 트렌드로 만들기 위해서는 재능 이외에도 수많은 운과 우연이 따라야만 한다.
운, 재능, 실력...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물론 충분한 경우도 있다.
운이 아주 좋거나, 재능이 넘치도록 있다면 나머지가 조금 모자라도 채워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한정적인 자원이기에 모두가 80점을 받으면 내가 79점을 받았을 때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들 80점을 받을 때, 혼자서 81점을 받게 해 줄 그 1점을 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콘텐츠시장은 그걸 '바이럴'로 해결한다.
웹소설은 대형 플랫폼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사실 웹소설은 이전에는 약간 마이너 한 취미, 또는 장르로 여겨졌다. 문피아와 조아라를 통해서 웹소설을 접했던 사람들은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경로를 통해서 웹소설을 접한 게 아니라면, '웹소설이 마이너 하다고? 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미 웹툰과 웹소설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시장에서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특히 웹소설의 경우는 OSMU(One source multi-use)의 시대에 '소스'의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돈이 되는 시장은 메이저가 된다.
실제로 웹소설이라는 시장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앞으로 나선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물고 올라가면 PC통신 이야기까지 나오겠지만 '웹소설'이라고 불리게 된 영역은 실제로는 문피아와 조아라의 영향력이 크다. 다름 아닌 그들이 '등용문'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웹소설에 앞서 웹툰이 히트하던 시절, 사람들은 디지털 매체의 등장이 활자문화의 쇠락을 가져올 것이라 여겼다. 당연히 활자문화를 대변하던 '책'은 그 일순위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수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인터넷과 영상 콘텐츠로 넘어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정말 몇 년간 사람들은 시각적인 콘텐츠가 당연하다는 듯이 소설이나 문학과 같은 콘텐츠를 누르고 대세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이유를 명확히 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부분들은 있다.
웹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사실은 그 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양적인 측면에 있었다. 여전히 웹소설 작가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퇴고를 거쳐 원고를 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웹소설의 퀄리티를 이야기하자면 흔히 말하는 '양판소' 또는 '클리셰'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 주류다.
이유는 간단하다. 팔리니까.
그래서 돈이 되니까.
그러면 그게 '독자'들이 원하는 거라고 받아들인다.
웹툰은 한편 한편 만들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글 작가, 콘티 작가, 그림 작가 셋으로 나눠서 협업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그렇게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고 해서 웹툰 작가가 웹소설 작가보다 더 좋은 퀄리티를 뽑아낸다거나 무조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그에 비해서 웹소설은 다르다.
정말 미친듯한 작업속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하루에 2만 자를 쓰는 사람도 있다.
만일 남성향 소설을 쓰고 있다면 어딘가에 매일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하루에 5천 자 분량을 소화해야 한다.
5천 자에 대해서 감이 안 오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는데, 1화 기준 5천 자로 봤을 때, 25화 정도면 우리가 실물로 만지는 책 1권으로 본다. (최근 로맨스 판타지나 로맨스 쪽에서는 1화에 4000자 이하로 짧아지는 추세도 있지만)
결국 하루에 5천 자를 쓰는 작가는 한 달에 책 한 권 이상을 써낸다. 하루 2만 자를 쓰는 작가는 한 달에 책 4권을 써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달에 책 4권을 읽는 것도 힘든데 한 달에 책 4권을 써낸다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일이지만 실제로 웹소설 업계에서는 넘치도록 일어나는 일이다.
웹툰이 그랬듯 웹소설은 '패스트 콘텐츠'다.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감상하는 게 아니라 스치듯이 정말 빠르게 소화하는 콘텐츠라는 이야기다.
위에서 책 4권을 한 달 동안 보기에도 어렵다고 이야기했지만 책 4권에 해당하는 웹소설 100화를 보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주말 휴일이 섞여있다면 아마 100화는 몇 시간이면 충분히 읽는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웹소설은 분명 작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맞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많이 요구하는 콘텐츠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과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콘텐츠가 아닌 익숙한 맛의 '트렌드' 또는 '메이저 장르'라고 불리는 것들에 적절히 '클리셰'가 버무려진 것을 찾는다.
아는 맛이니까 맛있는지 어떤지 음미하고 가늠해 볼 필요도 없이 목구멍으로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AI의 등장은 모든 콘텐츠 시장을 혼돈으로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AI로 가수의 목소리를 뽑아서 만든 음원으로 수천만의 스트리밍을 기록한 사건으로 크게 논란이 됐다.
웹소설 계도 마찬가지다. 웹소설 업계가 레드오션이 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콘텐츠 안에 조금씩 AI의 영향이 손을 뻗고 있다. 이미 많은 출판사들이 AI가 가미된 작품들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심지어 대형이 아닌 출판사들은 밀려드는 투고를 다 검토하기 어려워서 투고의 문을 닫거나 좁히고 있다.
할리우드는 지금 작가들과 배우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그것 역시 AI의 영향이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작가로 대접받는 경우보다 AI의 창의성을 수정하고 편집하는 비서 정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우도 나빠지고 있다.
거기다 GPTs와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면 그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은 CG와 AI 처리에 의해서 상대 배역이 없이도 스케줄을 소화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 한 편을 촬영하면서 다른 배우 얼굴을 거의 볼 일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배우들도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만큼 그들이 받는 돈도 줄어든다. 물론 누군가 그 AI작업을 해주는 사람이나 CG작업을 해주는 사람이 돈을 벌기에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들 역시 생계를 위협받는다.
그리고 결국 그런 촬영시간의 단축은 작품의 출시 주기가 짧아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같은 기간에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쏟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해에 방영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절대량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런 것을 소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장에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스킵'이 가능한 OTT시장이 발달하고, 심지어 유튜브를 통해 요약본으로 감상하는 세대가 늘고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는 동시대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콘텐츠의 대부분을 인지하기도 어렵다.
얼마 전, 유명 유튜버와 연예인 등이 코인 사기에 연루되는 사건들이 연이어서 터졌다. 구독자 수백만명의 유튜버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연루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한 유튜버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일단 운영하던 네이버 카페 홍보를 위해 돈을 주고 프로그램으로 활성화시켰다는 점은 스스로 시인했다. 거기다 그가 내세우던 엄청난 장사 성공의 이력 중 대부분이 과장되었다는 의혹까지 같이 터졌다.
만일 이렇게 터지지 않았다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바이럴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거 하나 믿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크게 해가 돌아오지 않는 한은 그저 '흥미로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콘텐츠들 중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눈에 띄기 위해서 점점 운과 실력보다 '마케팅'의 비중이 올라가고 있다. 흔히 안 좋은 의미로 통하던 '바이럴'이 이제는 당연한 마케팅의 방법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 딱 좋았을 노이즈 마케팅도 지금은 오히려 마케팅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