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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Apr 12. 2023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

'잃어버린 인생'이 계속되는 이유

 일본에는 '버블 경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경제 관련 글에서도 자주 다뤘던 주제지만 90년대 즈음 일본은 실물경제가치에 비해서 과다 계상된 부동산과 주식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시대를 경험한 일본인들은 누구나 강렬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이 되는 건 당연한 거였고, 회사에 면접만 보러 다녀도 일주일이면 면접비로 월급만큼 벌 수 있다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가난한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겠지만 정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은 당연히 계속 불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시절이죠.  


 우리나라에도 한 때나마 그런 별명이 있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지역들이었죠. 호황기의 조선소 인근이나 신규 공단지역에 가면 심심치 않게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IMF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IMF 이전에는 계속 성장하고 좋아지는 삶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들은 은행 돈을 계속 빌리면서 사업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부채비율은 치솟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회사가 돈이 많거나, 국가가 돈이 많아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잘 나갔던 시기'라고 착각을 합니다. 




 한 번이라도 높은 소득과 씀씀이를 경험하면 사람들은 그 강렬한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마치 흔히 작은 차에서 큰 차로 가는 건 쉽지만, 큰 차에서 작은 차로 가는 게 쉽지 않은 것과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그게 일시적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최고점을 '역치'로 기억합니다. 심지어 그 최고점이 비정상적이거나 거짓이었다 하더라도 말이죠.


 범죄자들이 한 번에 큰돈을 만지고 흥청망청 써버리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큰돈을 딴 적이 있다'는 기억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주식, 부동산, 코인과 같은 것들을 '투기'에 대해서 경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얼핏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도박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하이 리턴이라는 부분만 바라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아니라 주변에 하이 리턴이 있다는 소문만 듣고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차라리 경험하고 거기서 못 빠져나오는 세대는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런데 주입받은 환상에 의해서 역치값이 높아진 세대는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세대를 지나 '잃어버린 40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30살 이하의 사람들은 뭘 잃어버렸는지에 대해서 예전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으로 유추할 뿐입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이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시절의 일본은 '과다계상된 거품 경제'였습니다. 마치 가상자산 같은 것처럼 부동산과 주식으로만 쌓아 올려진 가치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사막에서의 물 한 병은 도시에서의 물 한 병과 가치가 다릅니다. 사막에서 비싼 물을 도시로 들고 와서 가치가 있다고 홍보하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그 물은 가치가 생깁니다. 실제로 사막에서 비싸게 팔렸던 기록까지 들고 와서 보여주면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이미 비싸게 산 사람들은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 그것을 묵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물건의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이 되는데, 그 수요가 '다시 팔기 위한 것'이 되면 우리는 그것이 투기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실 사용을 위한 가치'가 실제가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도박은 중독으로 분류됩니다. 


 가장 중독 성향이 강한 마약을 사람들이 끊지 못하는 이유는, 한 번이라도 경험한 강렬한 자극은 그 이하의 자극을 더 의미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약으로 경험한 강렬했던 자극은 일상을 재미없게 만듭니다. 그들은 마약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를 '잃어버린 즐거움'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죠. 


 주식에서는 흔히 말하는 '작전주'라는 게 등장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작전에 의해서 실제 평가되는 주식 가치를 뻥튀기하고 그 판매 차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은 최고점을 기준으로 '잃어버린 가치'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 최고점이 누군가 작전으로 만든 것인지 아닌 지는 그들에게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파트를 2억에 샀다가 5억에 파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 아파트가 한 때 10억 20억을 찍었다면 어떨까요? 그들은 '잃어버린 15억'을 생각합니다. 그때 팔지 않았지만 이미 20억에서 나머지를 손해 본 것으로 여깁니다.




 이 경향은 부동산이나 주식보다는 상한선이 없는 코인에서 가장 극심하게 나타납니다. 몇 백억, 몇 천억 단위의 가치가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한순간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잃어버린 가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애초에 실제로는 가치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렇게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익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만한 이득이 발생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 것으로 생각합니다. 매일 SNS와 인터넷으로 타인의 삶을 관음 하는 세대는 누군가가 별풍선과 슈퍼챗으로 하루에도 몇십 만원씩 쓰고 모바일 게임에 몇 천만 원을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삶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매달 버는 돈으로 생활하는 것도 빠듯하다면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게 '이익을 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투기에 의한 사기'가 성행합니다. 기대 수익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럴듯한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렇게 '불로소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수록 노동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그래서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이제는 누구나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라떼"타령이라면서 비웃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잠깐 주식과 코인이 정점을 찍었던 것에 대해서는 찬란함과 성공의 시간처럼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는 다를 수 있지만 그게 '역치값'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비슷합니다.


 인생의 최고점. 그 역치값의 무게가 우리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겁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만일 끝난다면 그 이상의 버블세대가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일본이 멸망하거나 지구가 멸망하면 가능하겠죠. 닷컴 버블로 '잃어버린' 사람들이 주식과 코인으로 또다시 그 최고점을 갱신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누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런 행위입니다. 지금 당장 유행하는 이슈에 대해서 자극적인 것만 모아서 쓰는 글로 조회수와 인기의 정점을 얻는 것이 목표라면 그것도 또 하나의 최고점이자 역치값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내 글이 모이고 모여서 언젠가 단단한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아가는 것,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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