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왜 이런 제품들을 내놓는 걸까?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에 갤럭시 S22, 심지어 울트라를 산 흑우입니다. 뭐...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바꿔야 했고, 심지어는 보상판매가 강제되어서 플래그쉽 라인을 사야 했고, 애플을 쓰고 있지 않은 관계로...라는 길고 긴 변명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이슈의 중간에 휩쓸려 있습니다.
4차 산업 위주로 경제와 가치에 관한 이슈를 다루다 보니 계속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이슈만 다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APU나 CPU 관련 이슈들은 4차 산업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IT와 4차는 절대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죠. 그래서 잠시 블록체인 이슈에서 벗어나서 이번 이슈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절대로 제가 갤럭시 흑우 피해자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2005년 '새벽녘보다 유리색인'이라는 게임이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전형적인 미소녀 연애물 게임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인기를 토대로 PS2에도 이식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었습니다. 원래도 게임 원작의 애니는 흔한 일이었고 제작사인 August도 이번이 5번째 작품이었던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죠. 그런데 2006년에 제작된 TVA, 즉 TV 방영판 애니메이션에서 애니메이션 계의 흑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대작이 나오기보다 다작이 쏟아지던 시기였는데 곳곳에서 일명 '작붕'이라 불리는 작화 붕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죠. 작화 붕괴는 원작의 만화를 애니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율이나 구도 등을 맞추지 못하여 그림이 망가지는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 역시 빠르게 작화 붕괴가 진행되었고 문제의 3화가 방영되었죠. 주인공의 요리대결 장면에서 양배추를 써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장면은 정말... 직접 보는 것 이외에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아무리 작화 붕괴가 비일비재하던 상황이다 하더라도 정도를 넘은 작품 앞에, 당시 메인스폰서였던 반다이 비주얼이 공식 사과문을 내놓았고 심지어는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던 관계로 업계에서도 그 상황을 마냥 가볍게 받아들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 이후로 작화 붕괴 자체도 줄긴 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해진 것은 '양배추'에 대한 것이었죠. 그 이후로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적어도 양배추가 나오는 장면은 훌륭해야 한다'는 일종의 밈이 생겨서 양배추 작화에 만큼은 혼을 갈아 넣거나 아예 실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결국 서양에서도 'Quality cabbag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밈이 되었을 정도죠.
갑자기 웬 양배추 이야기냐고요? 이건 기업이 자신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니메이션 버블 핑계를 대더라도 당시 작화 감독이 작화를 지시해놓고 검수를 허술히 했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며, 원작 게임의 인기를 역으로 잡아먹는 사례를 보여줬다는 것이죠. 그리고 며칠 전 삼성전자가 '6만전자'가 되었습니다. 이번 삼성전자의 주가 역시 삼성이 내놓은 플래그쉽 스마트폰인 갤럭시 S22시리즈와 연관이 있다는 거죠.
혹시라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갤럭시 S22는 2022년 2월에 출시된 모델로, 삼성의 주력 플래그쉽 라인입니다. 심지어 이번 Ultra 모델은 그간 명맥을 이어오던 '갤럭시 노트'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전작에 비해서 나아진 발열 관리, 더 뛰어난 성능 등을 어필하며 삼성 내부에서도 손꼽는 사전매출을 이뤄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짚어보자면, 아마 여기에는 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엘지 폰을 쭉 쓰다가 엘지가 접으라는 휴대폰 화면은 안 접고 사업을 접어서 마지막 2년의 약정이 끝나고 삼성으로 넘어온 사람들 말이죠. 물론 아이폰이라는 선택지도 있습니다만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익숙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엄청난 사전예약을 팔아제꼈는데 문제는 실제 성능이 광고보다 낮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들 GOS 이슈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는 발열 이슈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보는 점이 맞겠죠. 발열을 구조 개선이나 칩 개발로 잡을 수 없으니 프로그램으로 성능을 막아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막히지 않았을 때의 최대 성능'을 광고하면서 팔았으니 과대광고, 심하게는 사기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다 그에 대한 대처도 분노를 자아내는 사과문과 잠수함 패치 등 밀레니엄 시대의 유물 같은 대응을 보여주고 있는 관계로 문제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기어코 긱벤치에서 2년간 나왔던 삼성의 모든 스마트폰이 '치팅'으로 간주되어 퇴출되는 상황이 발생했죠. 아. 긱벤치는 스마트폰 성능 비교를 하는 사이트로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이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가가 요동칠만한 이러한 상황에 삼성전자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사실 이러한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반복되어 왔던 상황입니다.
지금 그 비교대상으로 각광받는 애플의 아이폰도 2015년에 배터리 이슈로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폰을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명분으로 배터리 사용기간이 늘어나면 성능을 제한하는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대부분의 사용자가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죠. 오래되면 바꿀지언정 성능이 제한된 상태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던 사용자들의 반발이 큰 이슈가 되었지만 애플은 '잘 고지하지 못한 잘못' 정도로 그냥 지나갔습니다. 물론 당시 삼성이나 LG폰에는 긍정적 이슈였던 셈이죠.
옛말에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예를 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죠. 보통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면 안 하는 게 정상일 겁니다만, 기업들이 돌아가면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왜 기업들은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컴퓨터 업계, 그중에서도 CPU 업계는 오랜 기간 동안 'Intel'의 독점에 가까운 지배가 이어져 왔습니다. AMD가 지금처럼 이슈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AMD가 망해가던 시절의 인텔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아키텍처를 내놓기는 했지만 아주 느리게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경쟁이 없으니 굳이 연구 개발에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빛사수'라고 불리는 '리사 수' CEO가 AMD에 등장하고 '라이젠' 라인업을 내놓으면서 인텔을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라이젠 3세대인 3000번대에 이르러서 인텔과는 오히려 역전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다들 인텔의 위기를 이야기하던 시점에 인텔이 11세대 인텔 CPU를 내놓았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음 세대의 CPU가 그 전세대에 뒤쳐질 리 없겠죠. 10나노 공정의 극한을 뽑아낸 당시 타이거 레이크의 출시는 모두의 기대를 받았으나 그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벤치 테스트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보였으나 9세대에서 논란이었던 발열 이슈가 다시 등장한 것이죠. 특히 노트북 시장에서는 노트북 제조사들이 어떻게든 구조로 해결해보려 하였으나 휴대성을 위해 발열 구조가 단순할 수밖에 없는 특성상 실 사용에서는 발열에 의한 '쓰로틀링'의 발생으로 제 성능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당시 11세대와 경쟁하며 출시된 라이젠의 5000번대는 그전까지 인텔에 밀렸던 '게이밍 성능'에서도 인텔을 제쳐버렸습니다. 한 때 가성비의 AMD, 게임의 인텔이라 불렸던 그 말마저 무색해진 것이죠. 결국 인텔은 빠르게 11세대를 손절하고 12세대로 넘어갔습니다. 인텔의 12세대는 ARM이나 애플의 M1에서 볼 수 있는 '빅리틀' 구조로 출시되었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여러 가지 있는데 여기서 더 깊게 가는 건 좀 오버인 것 같고... 여하튼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모바일 버전의 12세대 CPU는 지금의 갤럭시 사태와 거의 유사한 논란이 있습니다. 전력 제한 시 성능이 거의 반토막이 난다는 사실이죠...)
모바일 버전의 논란은 별개로 치자면, 적어도 11세대의 '뻥벤치' 이슈는 어느 정도 잠재운 셈입니다. 물론 11세대 CPU는 얼마 쓰이기도 전에 12세대에 밀려서 사라지는 신세가 됐지만 말이죠. 뭐 그 사이에는 애플과의 협력 파기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얽혀있기도 하지만 단순화시켜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텔의 이슈는 상당히 이번 삼성과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AMD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데도 말이죠. 뭐 그래서 AMD에게 많이 밀려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12세대 CPU로 복귀하면서 거짓말처럼 다시 인텔의 가치는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럼 삼성과 인텔의 차이점은 어떨까요?
삼성은 일단 안드로이드 한정으로는 거의 강력한 경쟁자가 없습니다. 중국의 화웨이가 강력한 경쟁자였지만 미국과의 무역 마찰로 글로벌화는 쉽지 않죠. 엘지는 사업을 접어버렸고요. 그래서 이 라인업을 일반적인 제품 수명주기처럼 1년간 방치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쉽게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말 크게 터지지 않는 한 매출이 줄어들 확률은 낮다고 볼 수 있죠.
거기다 사실상 삼성의 이번 이슈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ARM의 칩을 사용하는 안드로이드 진영 핸드폰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원 하우징 방식에 있어서 애플의 칩셋 설계가 지금 너무 강력한 상황이라는 거죠. 따라서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 안에서는 크게 대안이 없습니다.
꼭 노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점들이 적어도 삼성이 이렇게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소비자뿐 아니라 업계 자체를 속이려 할 수 있던 근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대안'이 없다면 어떻게 하든 간에 소비자는 구매하겠죠.
그리고 인텔은 적어도 '빅리틀 구조'를 꽤나 오래 연구해왔습니다. 지금이야 애플이 단독 생산하고 있지만, 원래 애플의 CPU를 담당하는 것은 인텔이었습니다. 그리고 윈도우즈의 주류인 X86 자체가 인텔에서 내놓은 아키텍처를 위한 표준이니까 말 다했죠. 심지어 AMD도 X86을 사용합니다. 기본적으로 인텔은 시장에 대한 선점 우위가 있습니다.
그에 반해 삼성은 '엑시노스'라는 모바일용 CPU를 꽤나 오래 생산해 왔지만 갈수록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삼성 자체도 엑시노스는 계륵입니다. 자체 프로세서가 있음에도 스냅드래곤과 혼용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거기다 생산 파운드리 문제까지 엮여서 여러모로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심상치 않은 기류에도 삼성은 별 대답이 없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런 삼성의 생각은 약간 위험해 보입니다. 정확히 이 타이밍에 애플은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로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3월 2022년 첫 키노트에서 애플은 강력한 M1과 바이오닉 칩셋을 활용하여 성능적 우위를 굳히려는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이전에는 자신들이 쓰지 않던 'Ultra'라는 네이밍을 버젓이 자신들의 라인업에 가져올 정도로 대담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광고한 성능조차 못 내는 삼성과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애플이 겹쳐도 과연 삼성이 생각한 대로 흘러갈지는 고민해봐야 할 겁니다.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커넥티드인사이드 #게인 #애플 #갤럭시S22 #발열이슈 #GOS #인텔 #양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