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우리를 공부하는 걸까? 우리가 AI를 공부하는 걸까?
수많은 AI들이 딥러닝을 통해 나날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술의 발전은 그걸 가능케 하고 있죠. 여전히 음성인식 기술에 부정확함은 존재하지만 비웃음의 대상에서는 벗어난 지 오랩니다. 이제 가정에서 3살도 안된 어린아이가 AI 스피커에 말을 거는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거죠.
예전에 AI 관련 글을 다루면 항상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물론 AI는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생활에서 AI를 점점 많이 접하게 되는 이유가 그게 전부일까요?
요즘 들어서는 그냥 휴대전화조차 어려워하시던 부모님 세대조차 스마트폰을 사용하십니다. 70이 넘으신 노모께서도 음성검색으로 유튜브를 활용합니다. 이미 정치권에서 고령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해서 TV 만큼이나 유튜브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술을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걸까요? 키오스크로 전환된 무인매장에서 주문을 못해서 곤란한 경우가 뉴스에 나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기술의 발전이 사람을 편하게 했는가에 대한 반발은 종종 들립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뱅킹이나 위에 말씀드린 키오스크 같은 게 있죠. 이러한 기술들이 사람이 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에 대한 기술적 소외를 가지고 옵니다. 기술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은 기존보다 더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비대면 사회를 겪으면서 그런 부분은 더 두드러졌습니다. 핸드폰이 없거나 2G 폰을 유지하던 고령층은 QR코드 인증시대에 고립됐습니다. 배달앱이 아니면 음식을 시켜먹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불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학습의 원조는 인간이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환경 변화에 의해서 도태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남기도 합니다. 여전히 QR코드는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지만 키오스크는 적응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오랫동안 거부하다가 코로나로 못 보게 된 손주들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스마트폰에 적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술이 사람에게 접근을 하고 있는 것보다 사람이 기술에 적응하는 것이죠.
저는 어릴 때 '학습지'영업을 잠깐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외사이트' 영업이었죠. 온라인 과외를 연결해주는 영업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온라인 과외 같은 게 오히려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거의 2000년대 말이었던 그때 시대에는 누구나 직접 대면하는 과외를 더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이다 하더라도 과외를 하는 상대방이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실시간 반응을 해주는 '선생님'이어야 했죠.
시간이 흘러 비대면 사회에 강제로 접어들면서 '온라인 실시간 강의'는 낯선 것에서 주류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럴 수도 있는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다룬 것처럼 '챗봇'의 성능이 올라가면서 AI의 응대력이 늘어나자,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AI 선생님'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라면 아마 더 확실히 느끼고 계실 테고요.
분명히 챗봇의 성능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사람과 구분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정도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챗봇을, 아니 AI를 더 잘 사용하게 된 걸까요? AI 스피커의 인식률이 좋아진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왜 우리는 더 쉽게 AI 스피커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이것을 위해서는 예전에 '자율주행'에서 다뤘던 내비게이션으로 잠시 돌아가 보죠.
옛날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었습니다. 길을 외우면 되는 거였죠. 처음 가는 길은 헤매면 되는 거였고, 이정표나 표지판을 보고 좀 돌면서 찾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도로에서 표지판을 보는 운전자는 많이 줄었습니다. 당연히 내비게이션이 생겼으니까요. 우리가 목적지를 말해주면 내비게이션이 가는 길을 찾아줍니다. 지금은 덜 막히는 길도 찾아줍니다. 더 비싸고 빠른 길과 무료지만 느린 길을 구분해서 알려주기도 합니다. 주정차 금지구역이나 심지어는 근처 맛집도 안내해줍니다.
편리하고 좋은 기술이지만,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은 다릅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아무리 실시간 교통정보를 업데이트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앞에 사람이 뛰어들거나 차가 끼어드는 것을 인지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AI에게 원하는 궁극적인 것은 완전한 자율주행입니다. '모빌리티'에서 오는 격차를 줄이기 위해 목적지만 이야기하면 스스로 모든 것을 제어해서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자율주행을 원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이전에 중간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AI를 활용한 크루즈 주행처럼 말이죠. 이런 불완전한 AI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사용법을 학습해야 합니다. 초창기 내비게이션에는 목적지를 자판으로 입력하다가 사고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음성으로 입력하는 것도 처음에는 인식률이 떨어져서 써먹질 못했습니다. 사고가 줄어든 것은 인식률이 좋아져서 음성으로 목적지를 말하게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목적지를 입력하는 '터치형 자판 입력'에 적응한 측면이 더 큽니다. 즉,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인간도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적응한 것이죠. 스마트폰 이전과 이후로 통신권에 대한 격차가 발생한 것처럼 말입니다.
기술은 발전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한 때 문화판의 트렌드로 불리던 단어 중에 '줄탁동시'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줄탁동시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안에서 두드리는 것에 맞춰서 바깥에서도 두드려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문화판에서야 더 멋진 말처럼 써먹었지만. 결국 AI조차도 기술의 발전 만큼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있어서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AI도 인간의 학습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여 만들어졌고, 애초에 폰 노이만 구조라 불리는 컴퓨터의 기본 구조 자체가 사람의 두뇌 체계를 모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인간이 가장 뛰어나다는 오만함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늘 나오는 것처럼 인간은 인간의 성능을 반에 반도 다 못쓰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인간을 모방해서 시작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뛰어난 인간을 '컴퓨터'라고 부릅니다. 이미 인간은 컴퓨터가 인간 이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지 오랩니다. 그리고 심지어 슈퍼컴퓨터라든지 AI와 같은 것들은 인간보다 너무 앞서 나가서 SF적 공포물의 가장 큰 소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인간도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기술의 발전은 그것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거죠. 교환원과 전화국이 있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고, '도구 사용에 능한 동물'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도구가 생겨나고 우리는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서 우리의 모자람을 메꾸거나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새로 접근한 가장 어려운 도구들이 4차 산업이며, 그중에서도 AI라는 어려운 도구가 존재하는 것이죠. 그리고 다들 도구에 적응하기 위해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겁니다. 코딩 교육이 기본 교과에 들어오는 시대가 오고 있을 정도죠.
AI는, 아니 기술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학습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AI는 딥러닝으로 인간에 대해 학습하겠지만, 완벽하게 학습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대상인 인간 역시 끊임없이 학습하고 있으니까요.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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