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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섭 Feb 02. 2021

레논 스타일: 존 레논과 나누는 가상대화  

여행과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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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hold your hand' 의 멜로디는 내 인생의 좌표를 바꾸어 놓았다>


  얼굴에 여드름 꽃이 막 피어나던 중학교 2학년 때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처음으로 들었다. 불법 해적판을 일컫는 '백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노래의 멜로디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춘기의 문턱을 막 넘은 소년에게 가문의 가보였던 일제 전축 한 대는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버리는 ‘Turn Table’이 되었다. 신비한 모습의 턴테이블은 집안 어른만 만질 수 있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나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전축을 작동할 수 있는 권한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내가 DJ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청계천 도깨비 시장에서 삼백 원을 주고 산 백판 한 장이 내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놓았다니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백판을 이야기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마치 원시시대에서 온 사람 같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참고서의 대명사 '완전정복 시리즈'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왜 'want to'를 '원트 투' 아니라 '워너'로 발음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을 시기였다. 난 단지 '아이 워너 홀 쥬얼 핸드'라고 입으로 읊조릴 뿐이었다. 요즈음과는 달리 영어 조기 교육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라 가사의 뜻은 그 당시 내 영어 실력으로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이 노래가 1964년 1월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비틀즈의 멤버가 네 명이라는 사실은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이 그저 좋았고 내 머릿속에는 대학에 들어가면 이들처럼 열렬하게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환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들으면서 난 비로소 심리학에서 말하는 항문기를 갓 졸업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영국 젊은이가 뿜어내는 노래는 내 몸 속의 호르몬을 성인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마력을 가진 듯 했다. '그대의 손을 잡고 싶소' 라고 번역되는 이 노래의 제목은 점점 성인이 되어가는 나의 몸에 언젠가 해 볼 로맨스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존 레논의 얼굴을 사진으로 본 것은 아주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고, 그가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라는 백인 청년 세 명과 한 팀을 이루어 비틀즈를 결성했다는 것을 안 것은 더 뒤의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틀즈 매니아가 되어 갔다.    

                                                                                                                                                                       

 <'Michelle'과 'Obladi Oblada'의 충격>


  대학 시절 내가 탐닉했던 곡은 'Michelle' 이다. 가사 중 불어로 된 부분이 무슨 뜻인 지도 모르면서 듣고 또 들었다. 한국판 워크맨의 효시 '마이마이'는 손안의 음악다방이었다. '존 떼 몬 퀴 앙상블레~~~' 다분히 'Gloomy'하고 퇴폐적인 음색의 'Michelle'은 마치 잘 다져진 여체를 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여체의 '여'자도 모르는 숫총각이 여체를 감히 논하다니. 심히 괘씸하다. Michelle 이라는 여자 이름을 이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경쾌한 피아노 반주가 일품인 'Obladi Oblada'는 'Michelle'과는 정반대.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에 빛나는 이상은의 '담다디'보다 천배는 더 섹시한 후렴구이자 경쾌한 감탄사가 아니던가. 비틀즈의 노래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이 두 노래는 내 대학생활을 정의했다. 한 편으로는 퇴폐적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경쾌하게. 퇴폐와 경쾌는 나의 화두였고 생활의 의미였다. 성경에 나오는 Prodigal son의 모습이 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오우... 나의 하나님... 이 두 노래를 왜 나의 귀를 통해 흘려보내셨나이까. 늘 하나님께 '퇴폐와 경쾌'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회개하고 번민했다. 마음속의 작은 양심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세상에서 야누스적인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수라백작의 슬픔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존 레논과의 가상 대화


<무덤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레논을 깨워 대화를 나누다: BC(Brian Chung), JL(John Lennon)>


대화 # 1.


BC: 레논씨, 당신의 죽음은 석연찮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갑자기 당신이 총을 맞고 죽다니요. 난 당신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 석연찮은 부분을 좀 알고 싶군요. 당신이 죽었을 때, 나는 한국에 살고 있었고 솔직히 비틀즈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당신의 평전을 읽었을 때 비로소 경악했습니다. 총탄에 쓰러질 당시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 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요.


JL: 내 무덤 속까지 찾아오다니 당신은 나의 광팬이 맞는 것 같군요. 사실 나도 내 죽음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1980년 12월 8일 이래 이 무덤 속에 내가 묻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늦은 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이라서 더 그렇소. 다섯 발의 총알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 대부분의 장기를 훼손했지요. 어깨를 관통한 총알은 워낙 강력한 것이어서 첫발을 맞는 순간 내 육체는 이미 두 개로 갈라져 버렸어요. 나를 암살하기 위해 사전에 많은 연습을 한 것처럼 급소만을 노린 정조준이었소.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가던 중 몸 속에서 영혼이 빠져 나가는 것을 목격했소. 연일 계속되는 반전운동으로 지치고 섹스 중독으로 점철된 내 육체에서 순수한 영혼이 빠져나가는 순간이었지요. 몸뚱이에서 영혼이 빠지는 순간 내 몸은 이미 고깃덩어리에 불과했어요.


BC: 바로 그 대목이 내가 궁금한 것입니다.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왜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돼요. 당신이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결사의 회원이었고, 반전운동 중 회원의 비밀을 누설한 나머지 비밀 결사의 지도부가 당신을 죽이라고 채프먼을 보낸 것은 아닌지, 뭐 이런 저런 상상에 빠져 본 적도 있소. 심지어 당신이 유태인이라는 생각도 해봤지요.


JL: 전 세계 수천만 명이 나의 노래와 내가 오노 요꼬와 벌이는 반전 운동에 열광하던 때라서 나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사람이란 늘 그렇듯이 지지자가 많아지면 환상과 자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해준 여인이 바로 오노 요꼬였지요. 그녀만이 나를 변태에서 정상인으로 돌아오게 해준 사람이었소. 그녀를 통해 위안 받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찾았어요. 물론 요꼬를 마녀라고 부르며 나에게서 음악 혼을 빼앗아 버렸다고 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폴 매카트니는 언제나 나에게 요꼬와 헤어질 것을 암암리에 부탁하고 설교했지요. 다시 비틀즈의 중흥을 위해 노력하자고 했어요. 그러나 난 요꼬 없이는 살 수가 없었소. 내가 칼이라면 요꼬는 칼집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난 프리 메이슨 같은 조직과는 상관이 없소. 그리고 내 몸속에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소. 섞여 있다고 한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소. 존 레논을 요꼬에게 잃었다고 생각하는 열렬한 팬의 즉흥적인 돌발행동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요. 나는 이미 죽은 몸이고 내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갔으니 내 죽음을 이제 와서 개탄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사람의 육신은 참으로 약해서 총알 몇 방에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잠자고 있는 내 영혼을 찾아준 BC 당신에게 고마울 뿐이요.


대화# 2.


BC: 폴 매카트니는 아직도 생존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Hey Jude'를 열창한 적도 있어요. 그의 노래는 세계인을 감동시켰답니다. 당신은 오래 전에 비참하게 죽었는데 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꾸준히 비틀즈의 음악을 전하고 있답니다. 내 생각에는 폴이 존 당신보다 비틀즈 안에서 존재감은 약했지만 당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것 같은데요.


JL: 폴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의 라이벌이 아니요. 폴이 훌륭한 뮤지션이었다는 것에는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지만, 그는 사상적으로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었지요. 그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나의 음악적 이상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열광하는 팬들 앞에서 우쭐하고 돈을 버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크게 대성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음악의 깊이 면에서는 절대 나의 라이벌이 아니었소. 폴은 좀 단순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나에게 많은 조언을 했지만 그 조언이라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비틀즈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음반을 더 팔고 더 많은 나라에서 공연을 진행하느냐가 그의 주된 관심사였어요. 그래서 요꼬와의 관계마저 끊으라고 한 것이었지요. 폴에게 요꼬는 그저 비틀즈의 활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보였던 겁니다. 음악적 멤버로서의 폴은 훌륭했지만 내 인생관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다고 할 수 밖에 없어요.


BC: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던 조지 해리슨은 2001년에 이미 지병으로 죽었고,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던 링고 스타는 모나코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비틀즈 멤버 간에 일종의 정신적인 의존 관계나 서열 관계 같은 것이 있었는 지 알고 싶군요. 모든 조직에는 리더가 있고, 아무래도 리더가 더 빛나기 마련이니까요.


JL: 기타 실력으로는 비틀즈 멤버 중 최고였던 조지가 나이가 가장 어렸소. 그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죠. 그러나 우리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조지는 참으로 묵묵한 사람이었어요. 어디서나 조잘거리는 폴 매카트니 보다 과묵하게 눈으로 응답해주는 조지가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죠. 그의 죽음을 참으로 슬프게 생각해요. 조지는 가장 고요한 비틀즈 멤버였지요. 오죽하면 팬들이 그를 'Quiet Beatle'이라고 불렀겠소.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조지라고 답할 겁니다. 그의 영혼은 어디를 떠도는지 아직도 연락이 없소. 조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러 빈민국가를 다니면서 자선 공연을 했었고,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인도의 갠지스 강에 뿌려졌다는 소식은 영혼이 되어 떠도는 존재로부터 들었답니다. 사상적으로, 음악적으로, 가장 완벽한 비틀즈 멤버는 조지였다고 말하고 싶군요. 조지가 만든 'I need you'를 너무 좋아했지요. 1965년에 발표된 그의 노래는 비틀즈 최고의 명곡이라 말할 수 있소. Oh..George..너무 보고 싶어...
(존 레논이 눈물을 보임).


링고 스타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존재감이 약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오. 링고가 없었다면 비틀즈는 내가 죽기 오래 전에 이미 해체되는 비운을 맛봤을 것이요. 그가 가장 늦게 비틀즈에 합류했지만 나와 동갑나기였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었소. 링고의 유머는 참으로 유쾌한 것이어서 여러 사람들을 언제나 즐겁게 했어요. 물론 키가 173cm 밖에 안되는 단신이어서 폴과 조지가 소녀 팬들로부터 얻는 구애의 정도에 비한다면, 뭐랄까, 인기 면에서는 좀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링고는 비틀즈의 정신석 지주였고, 버팀목이었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꼭 필요한 존재,뭐 그런 것 있잖아요. 더구나 링고의 드럼 연주는 대단한 것이었고, 특히 즉흥연주의 대가라고 말해주고 싶소. 비틀즈가 해체된 후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어려운 시절도 보냈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란 말이요.


BC: 아주 단순한 질문이고 다분히 황당한 질문일 수가 있는데, 벌어드린 수입 때문에 갈등이나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알고 싶군요. 어려운 질문을 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JL: 하하하(레논이 크게 웃음). 우리가 벌어드리는 천문학적인 돈에 대해서 난 전혀 관심이 없었소.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정말 돈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I want to hold your hand' 의 대성공 이후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적어도 나에게는 돈은 그리 큰 목표가 아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비틀즈는 참 대단한 뮤지션들의 모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난 이 점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하오.


물론 매니지먼트를 둘러 싼 긴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회사로서의 비틀즈를 누가 이끄느냐를 가지고 대립한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대립은 다른 조직이나 그룹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라고 말하고 싶어요. 벌어드린 돈 때문에 배신하고 심지어 다른 멤버에 대한 중상모략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봐왔지만, 우리의 대립은 종국적으로 비틀즈를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픈 각자의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어요. 비틀즈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비틀즈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산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참 기쁘다오. 비틀즈의 음악은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음악이 나의 음악이고 비틀즈의 음악이겠죠.


BC: 미스터 레논, 나의 경박한 질문에 진솔하게 답변해준 레논 당신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음악, 비틀즈의 음악이 나에게 준 영감만으로도 당신을 무척이나 존경합니다. 당신의 음악을 내가 사춘기 때 듣지 않았다면 난 더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도 함양되지 않았을 것이 구요. 당신이 생존해 있을 당시의 한국이라는 나라는 가난한 나라였지요. 그 어떤 것도 자유스러운 것이 없었어요. 모든 것이 통제받던 시기였답니다.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되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한국은 무시 못 할 문화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싸이라는 한국 가수는 Youtube라는 곳에서 수십 억의 조회 수를 자랑하고 있고, BTS는 전세계인들의 우상이 되었지요. 마치 1960년 대의 비틀즈를 보는 느낌이랍니다. 이런 현상을 'Korean wave'  한국말로 '한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경쟁력의 뒤편에는 비틀즈의 음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다시 한 번 당신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JL: 비틀즈가 뿌린 음악이 BC 당신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한국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니 나로서는 참으로 기쁩니다. 내가 좀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도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나는 죽음으로써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나를 추모하는 팬들은 내가 요꼬와 벌였던 반전운동의 기치를 더욱 힘차게 받들었고 한 음악가가 그토록 꿈꾸었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록 다른 멤버들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이했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더구나 이제는 문화강국이 되어버린 한국에서 BC 당신이 찾아와 이렇게 질문을 해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또 다른 이름의 비틀즈가 계속해서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기존 체제의 구습을 헐어 버리고, 새롭고 아름답고 공명정대한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영원한 평화가 오기를 바랍니다. 이런 세상을 같이 상상합시다. 내 노래 'Imagine'에 나오는 세상 말입니다. 고마워요, Brian Chung.(레논이 내 이름을 부른 후,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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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레논과 비틀즈>


  레논의 무덤 속에서 나눈 그와의 가상 대화는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레논과의 대화는 나의 상상과 영감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가 마치 내 앞에서 직접 이야기해주는 것 같이 생생했다. 명상을 통한 착시와 환청같은 기분이랄까. 이런 가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상력을 레논과 비틀즈가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살아있는 멤버 폴 매카트니는 폴 경이라 추앙되기에 이르렀고, 존 레논은 전설이 되었다. 나의 관점에서 비틀즈를 100으로 놓고 생각하면 존 레논 55, 폴 매카트니 15, 조지 해리슨 20, 링고 스타 10의 점수를 주고 싶다. 레논의 존재감이다.


 레논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평생의 증오를,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어머니에 대한 애끊는 슬픔을, 음악이라는 이름의 진통제로 만들어 곱씹으며 모든 곡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레논의 음악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었고, 그들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레논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비틀즈는 1960년대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고, 20세기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으로 기록되었다. 그들은 혁신이었으며 감동이었다.


<끝맺음 말: 레논 스타일>


  "우리가 쓴 곡들 대부분이 사랑과 평화, 이해심을 다룬 작품들이어서 정말로 기쁘다." 폴 매카트니의 말이다. 그들의 노래가 지구촌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성공 코드'를 그들의 음악에 내재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고객이라고 말한다면 비틀즈는 일찍이 고객 감동을 기획한 음악계의 선구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공식적으로 십년 동안 활동했던 비틀즈는 모든 것을 가졌다. 돈과 명성, 반체제를 행하는 권력과 여성들의 사랑까지. 그들이 발표한 열 세장의 앨범은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이 되었다. 그리고 비틀즈의 중심에 레논이 있었다. 나는 감히 '레논 스타일'을 말한다. 레논 스타일, 그것은 비틀즈의 해체를 선언하면서 레논이 뱉어낸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말은 그가 기존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질적인 변화를 위해 얼마나 번민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레논 스타일이 물씬 묻어나는 레논의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겨우 록 그룹 하나 해체된 것일 뿐이다. 추억에 잠기고 싶으면 얼마든지 옛 음반들을 들으면 되지 않는가. 모두 대단한 음악들이다."


-위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순수한 창작임을 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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