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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pr 13. 2022

제발 내 옆에 앉지 마

나를 설레게 했던 기차들 

 제발 내 옆에 앉지 마  


  

  나는 기차를 타면 가장 먼저 이 생각을 한다. 

  ‘제발 내 옆에 앉지 마.’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 옆에 아무도 앉지 않은 경우는 딱 한 번뿐이다. 


  예전에는 기차를 생각하면 참 설렜는데, 지금은 기차 하면 답답하고 지겹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갈 수 없어서일까? 마스크 때문에 옆에 앉는 이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지겨운 현재보다 과거 설렜던 기차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릴 적 보고, 탔던 기차들은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설레니까. 


  나의 첫 기차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까만 증기기관차이다. 이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를 탔다는 건 아니고, 타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물론 지금 탈 수 있다면 대학 졸업을 미루고라도 호그와트를 다녀올 것이다. 물론 그들은 전염병이 있는 머글 사회에서 온 나를 들여보내 주지 않겠지만…


  연기를 끊임없이 뿜어내는 크고 검은 모양새 외에도 기차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한 것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해리의 간식 flex였다. 나는 해리포터로 인하여 모든 기차에는 간식 카트를 미는 아주머니가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어른이 돼서 여행을 떠나면 창가에 앉아 간식을 잔뜩 사 먹겠다고 다짐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더 이상 기차에서는 카트를 운영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간식 먹는 걸 좋아한다. 참고로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던킨의 츄이스티 도넛과 먼치킨이다. 기차역에는 간편히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많은데, 그중 나는 던킨 도넛을 가장 좋아한다. 달고 쫄깃한 츄이스티를 먹으며 창밖을 보면 달콤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기차에서 하는 상상 중 가장 말이 안 되지만, 늘 죽기 전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구현해보고 싶다 생각하는 건 논밭을 달리는 카우보이이다.

   내가 가장 많이 타는 경로는 포항-천안간인데, 이 구간을 타면 보이는 풍경은 주로 논밭이다. 여름, 모내기를 하는 사람이나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벼들을 보는 것도 특별하지만 나는 겨울 초를 가장 좋아한다. 벼가 모두 베어지고 하얀 포장지에 감겨 길에 마시멜로들이 잔뜩 서있는 풍경을 애정 한다. 그리고 그 풍경에 말을 탄 멋진 카우보이와 그를 쫓는 악당들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가 악당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내가 탄 기차의 선로를 폭파시켜 기차가 선로에서 뛰쳐나간다. 주로 이쯤에서 상상이 끝난다. 가끔 생각한다. 기차가 선로에서 빠져나오면 기차의 기분은 굉장히 짜릿하지 않을까? 가끔 사람들이 일탈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두 번째 기차는 일본 구마모토의 밤기차이다. 그때의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고등학교 가기 전 해외는 한번 다녀와 봐야 한다는 엄마의 지론을 따라 일본 학습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기서 tmi는 서울보다 일본을 먼저 다녀왔다는 점이다. 


  학습 여행이기에 약 20명의 사람들이 여러 그룹으로 나뉘고, 인솔교사 두 명이 함께했는데, 인솔 과정에서 기차를 놓쳐 우리는 밤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인원수에 맞춰 겨우 발권한 탓에, 우리는 이곳저곳 떨어져서 앉게 되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떨어진 구석에 혼자 앉게 되었다. 사람들과 떨어지자 실수로 인솔 선생님이 나를 기차에 두고 내리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홀로 여행을 온 것 같아 설렜다. 마침 창 밖으로 작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차의 철컹거리는 소리와 잔잔한 빗소리는 호그와트의 기차를 떠오르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번째 기차 또한 호그와트 기차와 비슷하게 느껴져 설렘이 가중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밤이라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열심히 바라보는데,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샐러리 맨’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남자였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너무 정석적인 정장 차림을 하고 있어서 낯설게 느껴졌다. 또, 엄마의 옛날 안경 같은 각진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더니 가방을 위로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리를 꼬고 잠에 들었다. 다리를 꼬고,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모습은 굉장히 불편해 보였는데, 그는 내가 내릴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몸을 꺾고 곤히 잠에 든 남자에게서 이유모를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때만큼은 그 사람이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이로 보였다. 그래서 사탕을 두고 내렸다. 페코짱이 그려진 딸기맛 사탕이었다. 결말도 모르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직도 그 사람과 기차 내부의 모습이 생생하다.     



  마지막은 대학 입학식 날, 천안으로 올라가기 위해 탄 기차이다. 처음 홀로 기차를 탄 경험이기도 하다. 그때의 나는 갓 스물, 혼자 타지를 간 적이 없어 잔뜩 졸아있었다. 그때 내 눈에 두 사람이 띄었다. 내 또래의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로 추정되는 40대 여자였다. 둘 모두 빵빵한 배낭을 가지고, 엄마가 길을 막 설명하는 게 딱 봐도 나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허둥지둥하는 둘의 모습에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게 아닌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들에게 시선을 둔 것도 잠시, 나는 거울로 얼굴을 보기 바빴다. 앞으로 다닐 학교와, 새로 만나게 될 학우들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섞여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했다. 그래서 안정을 취하기 위해 고등학교 친구들과 문자를 했다. 가서 친구를 하나도 사귀지 못하면 어쩌냐는 너스레를 떨자 조금 덜 불안해졌고, 대전쯤 왔을 때에는 여유 있게 풍경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특히 창밖으로 보이는 고층의 건물들은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여담으로 나중에 입학식을 하는 건물에서 마주하고 알았지만, 기차를 탔던 사람도 나와 같은 대학이었다.      


  이런 경험들 이후, 대학교를 본가와 먼 곳으로 가게 되면서 기차를 타게 되는 일은 잦아졌다. 그리고 자연히 기차를 탈 때 느끼던 기대감 같은 것들은 사라졌다. 오가는 길이 똑같으니 감흥이 없어진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해보려 해도 코로나로 필요에 벗어난 이동은 자제하려 하고 있기에 계획만 세울 뿐이다. 그래서 늘 타는 기차만 타게 되지만 봄이 되니 또 어디선가 작은 기대감이 꾸물꾸물 기어 나온다. 요즘은 창밖을 보면, 언젠가 과거처럼 여행하게 되는 날을 기대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타지로 가서 그곳의 거리를 둘러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가게 문틈으로 새어 나온 음식 냄새를 맡는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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