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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pr 30. 2022

베리에 대하여

라즈베리와 스트로베리 

  대학교 1학년, 같은 과 친구들과 문집을 만들기로 하고 매달 한편 씩 글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4학년, 비로소 글을 모았다. 내지 디자인과 외지 디자인, 굿즈와 내지 구성 등을 방학 동안 매주 회의를 통해 정했으며. 문집 제목도 정했다. 제목은 ‘라즈베리로 값을 치를 수 없는 나이’이다.


  제목은 친구들의 글 안의 좋은 문장들을 뽑아 정하게 됐다. 참고로 제목은 내 시 안의 문장이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는데,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한 것에서 드러나는 아쉬움이나 슬픔을 담았던 시이기 때문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20살이 되었을 때는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그렇게 느꼈었는데… 글을 쓰는 것도,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하나 선택하기 힘든 지금. 또다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소화도 안 되고 아침도 챙겨 먹는 것이 참 힘들다. 그래서 한동안은 과일을 갈아 아침으로 먹었었다.      


  사실 난 과일을 잘 먹지 않던 사람이었다. 물론 여름의 수박, 겨울의 귤같이 철을 맞은 과일은 맛있지만,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찾아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는 내가 자취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자취생의 재정상태에 과일들은 너무 비싸거나, 혼자 먹기 힘들 정도로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과일을 그냥 포기했다. 대신 대학 행사로 술집을 갔는데 과일 안주가 나오면 열심히 먹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튀김이나 국물류를 먹느라 정신없을 때, 나는 구석에 앉아 큰 접시의 과일을 홀로 차지하고 야금야금 비타민과 수분을 충전했다. 포도, 사과, 배, 멜론, 방울토마토 등. 예쁘게 잘려 세팅된 과일을 뷔페처럼 집어먹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점차 줄어들었다. 사람과 와글와글 몰려하는 술자리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코로나와 여러 가지 일로 과일을 먹지 못했는데, 그렇게 3년, 작년 겨울 그 과일에 대한 설움이 팡 터졌다. 나는 꽂히면 하나만 먹는데 이번에 꽂힌 것은 베리였다. 시큼한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기에 라즈베리 (산딸기), 스트로베리 (딸기) 위주로 정신없이 먹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과일에 집착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딸기를 주기적으로 사다 먹였다. 한 박스에 만 칠천 원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엄마는 딸기를 이리저리 다양하게 사와 내게 먹였고, 남동생 또한 마트에 가면 내 딸기를 꼭 챙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싼 딸기들은 아주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들이 내 생각을 해 준 것이 좋아서 그런지 나는 자취방에 돌아와서도 딸기가 생각이 났다. 그러던 중 친구 동네의 마트에서 딸기를 싸게 파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그 마트를 들리고 있다.      





  딸기는 새콤달콤하다. 내가 좋아하는 잘 익은 딸기의 느낌은 달콤 80%에 새콤 20%이다. 너무 덜 익으면 영 맛이 없고 그렇다고 너무 익으면 식감이 좋지 않으니 적당히 익은 것을 골라 택해야 한다. 딸기를 사 와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칼로 위의 꼭지와 초록색 부위를 잘라내면 큰 볼에 담아 노트북이 있는 책상으로 온다. 그리고 왓챠나 넷플릭스로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한 편 본다. 불은 꼭 끈다. 그래야 딸기가 노트북 빛을 받아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이것이 내가 딸기를 사 온 날 꼭 하는 ‘딸기-루틴’이다. 말이 루틴이지 그냥 사 온 날 바로 먹는다는 것이다. 딸기는 다른 과일에 비해 금방 무르기도 하고, 자취방 냉장고가 좋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에 되도록 딸기는 바로 해치운다. 작은 박스는 하루 만에 다 먹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딸기를 좋아한다. 큰 박스는 사지 못한다. 혼자 해치우기엔 너무 많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박스를 살 때가 있다. 그때는 바로 과하게… 저렴할 때. 그렇다. 가격이 최고다. 큰 박스를 사게 되면, 우선 그날 최선을 다해 먹어야 한다. 아침 먹고 딸기, 점심 먹고 딸기, 저녁 먹고 딸기. 온통 딸기 딸기다. 그러고도 딸기가 남는다면. 그때부터 나는 망국의 조정 대신이 된 기분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딸기를 으깨는 것이다. 딸기를 볼에 넣고 손으로 으깬다. 사실 갈아도 되지만 그러면 딸기의 심 부분이 사라져 식감이 없어지는 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손으로 대충대충 으깨준다. 그리고 그 위에 설탕을 한 줌 뿌린다. 그리고 적당히 휘저어 유리로 된 반찬통에 담는다. 그리고 과제를 하거나 단 것이 당길 때마다 우유에 타 먹는다. 흔히 카페에서 나오는 딸기 라테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 먹는 걸 참 좋아한다. 

  사실 딸기 라테는 카페에 흔하다. 어느 카페든 요즘 딸기 라테가 있지만, 카페에서 먹는 것과 집에서 먹는 것은 다르다. 이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카페에서 먹는 딸기 라테는… 너무 양이 옹졸하다. 물론 맛은 카페가 더 좋다. 하지만 집에서 하면 원하는 양만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데다가 딸기를 매우 많이 먹을 수 있다. 카페는 대체로 딸기가 30%, 우유가 70%이라면 나는 역으로 딸기가 70%, 우유를 30%으로 먹는다. 딸기 라테는 달콤하고 부드럽다면 역 딸기 라테는 상큼하고 딸기가 쇽쇽 씹히는 맛이 있다. 이 외에도 이 으깬 딸기는 요구르트에 올려먹어도 참 맛있다. 생크림 요구르트에 주로 올려먹는데 새콤한 요구르트에 달달한 딸기가 씹히면 그 맛에 홀려 무심코 많이 먹게 되기에 나는 요구르트를 꼭 하나씩만 따기로 스스로와 약속한다. 

    

  종종 생딸기가 아닌 냉동딸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대용량으로 팔기에 부피가 크지만 그래도 꼭 들여놓는 필수 식재료다. 냉동딸기는 생딸기에 비해 달기보다는 새콤한데, 그래서 꿀이 필수다. 사실 과일에 종종 꿀이나 설탕을 뿌리는 건 내게 흔한 일인데, 나는 아까 위에서 이야기 한 산딸기(라즈베리)와 딸기를 철저히 구분한다. 산딸기는 흰 설탕딸기는 꿀이라고    

 

  요건 어릴 적 만들어진 나만의 법칙인데, 산딸기는 새콤, 딸기는 달달로 구분했기에 일어나기도 했던 일이다. 산딸기는 작은 알맹이들이 여럿 붙어있는 작고 뚱뚱한 포도 형태처럼 생겼는데, 어릴 적 내게 산딸기는 너무 셨다. 그래서 엄마 몰래 설탕을 조금 부었다. 엄마가 간식으로 산딸기를 얼려놓으면 우선 비닐봉지를 꺼낸다. 그리고 그 안에 설탕을 두 숟가락 붓고 산딸기를 몇 움큼 집어 붕지 안에 넣는다. 그리고 그 후 봉지 윗부분을 잘 잡고 마구 흔드는 것이다. 롯데리아의 양념 감자처럼. 그러면 산딸기 안의 작은 알맹이들까지 설탕이 속속들이 잘 들어간다. 그리고 봉지를 그릇에 부으면 설탕 산딸기가 된다. 

  산딸기에 설탕이라는 조합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설탕은 산딸기를 달달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바삭하게 해 준다. 설탕이 산딸기에 묻으면 녹는데, 그 이후 또 설탕이 붙으면 녹지 않고 그냥 달라붙는다. 그래서 산딸기를 씹으면 녹은 설탕 덕에 달달하고, 덜 녹은 설탕이 바스락바스락 씹힌다. 나는 이 씹히는 느낌이 정말 좋아 살찐다고 혼이 나면서도 늘 설탕을 뿌렸다.


  이러한 산딸기에 비해 딸기는 설탕보다 꿀이 좋다. 딸기가 물만 차고 맛이 없을 때 설탕을 뿌리면 그저 달기만 하다. 하지만 꿀을 찍으면 은근한 딸기 향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냉동 딸기를 녹여 으깨거나 우유와 함께 갈 때도 꿀을 한 스푼 넣는다. 그러면 이질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단맛이 베어 든다. 그런 으깬 딸기는 그냥 퍼먹기만 해도 새콤달콤 참 맛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식습관도 줄일 때가 되었다. 살이 찌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당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어쩐지 씁쓸하다. 하지만 그래도 치팅데이는 있는 법. 치팅데이에 치킨과 쌀밥 모두 옆으로 치우고 설탕 산딸기, 꿀 딸기를 먹는 날을 그리며 이 글을 쓴다.

만약 미래에 내가 이 글을 본다면 그때는 딸기 정도는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길!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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