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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pr 12. 2022

우리가 언제 모내기를 해보겠니.

22살! 처음 모를 심어보다!

우리가 언제 모내기를 해보겠니.

      

  모내기라 하면 사실 노동이나 힘든 종류의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직접 모내기를 체험한 입장에서 꼭 그러한 이미지만은 아님을 전하고 싶어 이 수기를 쓴다.


  모내기 체험을 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권유에서였다. ‘우리가 언제 모내기를 해보겠니.’라는 말에 혹했던 우리는 시 교수님께 작품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난다 말씀드리고 수업을 빠졌다. 자고로 모내기라 하면 쨍한 뙤약볕 아래서 땀 뻘뻘 흘리며 하는 것이라 미디어로 배워왔기에 우리 둘은 햇볕 가림 사파리 모자를 주문했다. 후에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때 내 발에 잘 맞는 장화도 샀어야 했다.     


모내기하던 날. 


  막상 모내기를 하러 가는 날이 되자 날이 흐렸다.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나는 량현량하의 ‘학교를 안 갔어.’를 들으며 취소 문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우천에도 강행한다는 말에 우리 둘은 학생회관으로 모였다. 떡볶이 빛깔의 장화를 받았다. 베이지색의 조끼도 받았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없길래 이러다 열댓 명이서 모내기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회관 1층이 다 찰 만큼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내기를 하다니. 순식간에 끝나겠다.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논은 아주 작아 보였는데, 모내기를 시작하자 논은 대관령 목장처럼 넓게 변했다.



  논은 생각보다 움직이기 힘들었다. 단순한 발목을 붙잡는 감각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밟는 족족 높이도 다르고 흙의 량도 달랐다. 매번 발목을 붙잡는 다른 무게가 나를 휘청이게 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레 움직이는데, 함께 이동하던 교수님이 매년 이 활동에서 평균적으로 3명이 넘어진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넘어졌다. 내 앞의 친구와 뒤의 같은 과 후배님이 일어서는 걸 도와줬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후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후배와 선배의 첫 만남의 배경이 논인 게 참 아이러니했다.

     


  모를 심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사각형의 모를 조각 내 한 손에 덩어리를 쥐고 머리카락 심듯 꽂기 시작했지만 내 모는 자꾸 고꾸라졌다. 그 모를 세우려다 노력하면 어느새 줄을 올리는 기합소리가 들렸다. 결국 나는 초반에 모를 얼마 심지 못했다. 내 좌측의 친구와 이름 모를 우측의 학우님은 놀라울 정도로 잘 심었는데, 그분들이 내 몫을 한두 개씩 더 심어 채워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얼추 모심는 게 적응이 되고 허리가 아파질 때쯤 내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장화가 발에서 점차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발바닥 부분이 아닌 곳에 발을 대고 있었다. 그러다 한 번은 넘어질 뻔했고 이러다는 정말 다치겠다 싶어 그냥 장화를 벗어던졌다. 장화를 뒤로 던지자 쟤 돌았나 봐.라는 표정으로 날 보는 학우 분 몇이 보였다. 친구가 정말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때는 진짜 괜찮았다. 물은 시원했고 발은 한결 편했다. 발을 흙에서 빼기도 편해서 모내기도 훨씬 수월했다. 


  한편으로는 이미 이렇게 됐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마음가짐도 있었다. 모내기로 옷을 버린 학우 분들이 ‘그래도 난 쟤보다는 덜 배렸지.’ 하는 생각의 ‘쟤’가 되기로 맘먹은 것이다. 그렇게 모를 심는 과정에서 후배님이 넘어졌다. 친구는 이대로 넘어지면 문창과가 이번 해 모내기 넘어진 인원의 100%를 채우게 된다며 어떻게든 버티겠다고 했다.



  수월해진 모내기를 하면서 오늘은 밥을 두 그릇 먹어야겠다고 친구랑 이야기했다. 초반부에 모를 심을 때는 너무 못 심어서 난 오늘 밥 먹을 자격이 없다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힘이 들었다. 다들 힘들어 보였는데 어째 줄을 옮기는 기합소리는 점점 커졌다. 다들 악을 쓰는구나 싶어 유쾌한 마음으로 마저 심었다. 막상 모가 모두 심긴 논을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모가 다 심긴 풍경이 푸른 게 참 예뻤다. 하지만 그래도 몸이 지친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 친구와는 이 모내기 경험을 단순한 경험으로 그치게 할 수 없다.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동화도 써서 뽕을 뽑자고 다짐했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날 난 참 단순한 사람이었다. 장화를 벗어던지는 생각은 했으면서 어째서 그 후에 돌아갈 상황은 생각하지 않은 건지 후회스러웠다. 모내기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니 내 바지의 허벅지 부분까지 모두 진흙이었다. 이 상태로는 학생회관에 돌아가지도 못할 것 같아 나는 친구에게 운동화를 부탁했다. 그리고 역말에 있는 자취방까지 양말 발에 진흙투성이인 채로 걸어갔다. 자취방이 가까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진흙 장화를 신은 내 발


                                                              

 모내기는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시야와 기다림)

     


  사실 내 모내기의 경험은 이렇게 내가 보기엔 유쾌하고 남이 보기엔 엉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수필까지 쓰게 된 건 그 경험이 내게 즐겁거나 엉망인 ‘하루’로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내기를 하고 나자 나는 교수님이 왜 그토록 경험이 중요하다 말씀하셨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모내기를 한 이후로, 세상의 모든 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 넓은 논은 누가 다 심었나 가 궁금했고, 요즘은 기계로 심는다는 걸 알게 되자 저 논에서는 몇 명이 먹을 쌀이 나오나 가 궁금했다. 사실 과거 쌀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 하루 굶는 활동을 초등학교 때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냥 배고프다가 끝이었다. 하지만 모내기를 하자 소중함이 확실히 느껴졌다. 쌀을 소중하게 느끼려면 이 밥 한 그릇이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시간이 공을 들였는지 알아야 한다. 쌀이 없을 수도 있으니 소중히 생각하자가 아닌 이 쌀이 여러 사람의 손을 들인 결과물이니 감사히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쌀의 소중함에서 어떻게 보면 모든 먹을 것들은 자연과 사람의 합작품이란 생각이 들어 음식에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농사에는 사람의 노력 외에도 시간의 공도 놓칠 수 없다. 사실 모를 심고 내심 애정이 생겨 학교 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잘 크나 위에서 가만히 바라봤다. 머쓱하지만 어쩐지 내가 있던 곳만 휑한 것 같았다. 그래도 모들이 크면서 색이 바뀌어 가는 건 너무 신기한 광경이었다. 어느 때는 왜 이렇게 느리게 자라나 싶었고 나중에는 남의 집 애가 빨리 큰다는 건 벼에도 적용되는 말임을 알았다. 나는 모가 자라 수확될 때가 너무 기대됐다. 택배도 받는 것보다 기다릴 때의 감정이 더 좋듯이 기다림이 너무 즐거웠다. 하루의 경험으로 한 해가 기대된다는 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었다.



  모내기 외에 손질이나 추수에서도 참가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비록 모내기의 과정밖에 참가 못했지만 모내기는 내게 다른 시야와 기다림의 기쁨이라는 선물을 줬다. 아마 사람마다 제각각의 선물을 받았을 거 같아 다른 학우 분들은 어떤 선물을 받으셨는지 궁금하다. 한편으로 모내기를 한 번 더하면 또 다른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된다.


  만약 모내기를 하게 될 다른 기회가 있다면 또 참여할 것 같다. 괜찮다면 모내기를 함께 했던 친구와 또 참여하고 싶다. 그 친구는 더 잘 심어보고 싶다 했다. 모내기를 하지 않았던 다른 친구는 자신을 심고 싶다고 했다. 위에서 보면 모내기를 하는 우리가 모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준비를 철저히 해 재도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흙투성이가 된 바지가 결국 자취방 세면대를 막고 버려졌기 때문이다. 다시 한다면 모를 친구처럼 잘 심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위에서 봤을 때 빽빽하게 논을 채워주고 싶다. 모에게 선물을 또 받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시 활동을 맡아주신 교수님이 찍어주신 사진 

활동사진 찍으시다 내가 넘어진 모습을 우연히 찍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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