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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Feb 06. 2021

어제도 오늘도 울었다

건강한 울음을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



어제도 오늘도 많이 울었다.


평일에도 충분히 한가롭지만 일요일만 되면 괜히 더 한가롭게 늘어져 있었다. 아마도 길지 않은 직장 생활로 얻은 어떤 감각인 것 같다. 일요일은 완전한 휴식의 날, 재충전의 날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이미 본 옛날 티브이 드라마를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틀어놓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많은 시간을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사지 않을 물건을 눈여겨보거나 빼지 않을 살을 빼고 싶은 마음에 다이어트 운동 영상이나 식단 조절 방법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았다.

누워있는 일이 지칠 때쯤 일어나 빨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나선 또다시 지쳐 드러눕고 그러다가도 또다시 일어나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쩐지 계속 몸이 허하다는 생각에 얼마 전 마트에서 사다 논 냉동 갈비를 꺼내 정성 들여 구워 먹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빨래를 널고 침구정리를 하며 구석구석 바닥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닦아도 닦아도 어딘가에서 나오는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부분 부분은 매직 스펀지를 이용해 박박 바닥을 청소했다. 바닥 청소를 끝내고 힘이 쪽 빠졌다. 원래는 마저 이어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지만 몇 주간 쌓인 배수구에 머리카락을 빼내는 것으로 급히 청소를 마무리하고 발수세정제를 주방 배수구와 세면대, 화장실 배수구에 부었다. 그리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보글보글 거품이 고래가 토해내는 토사물처럼 쏟아져 올라왔다. 한참 동안 흰 거품을 보는데 독한 냄새에 머리가 살짝 아팠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다시 소파에 누워, 낮에 텀블러에 테이크아웃해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스스로 많은 일을 했다고 느껴 피로해졌지만 커피의 얼음들은 아직까지도 전혀 녹지 않았다. 오후를 분명하게 노동을 하며 보냈다. 해가 지고, 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흘러 보내면 얼마든지 사라졌다. 시간은 언제나 그런 속성을 띠고 있었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이 어김없이 왔고 침대에 누웠다. 새로 교체한 침구 시트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머리 위로 약간의 조명만 띄어두고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일어나 따듯한 물을 조금 마시고 화장실에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다시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우유를 렌지에 살짝 돌려 따듯하게 마시고 창문을 닫았다. 몸을 따듯하게 하고 누웠다. 이번엔 진짜로 잠이 들겠다 다짐하면서.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아 유튜브에 잠이 오는 음악을 검색해 한 시간짜리 영상을 틀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며 댓글을 읽었다. 슥슥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다가 길게 적은 하나의 댓글을 읽었다. 내용은 병상에 누워있다가 죽은 엄마에게 전하는 편지였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서 너무 슬펐지만, 한때는 밉기도 했지만 그곳에서는 엄마가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남은 나도 건강하게 지내겠다고. 10년이 지나 성인이 된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언젠가 내가 적당한 때에 그곳에 가서 만나면 꼭 부둥켜안아주자고. 별이 된 엄마를, 엄마의 목소리도 음식 맛도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지만 항상 엄마를 생각한다고, 사랑한다고 적힌 긴 글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흘렀고 글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일어나 둘둘둘 휴지를 말아 가지고 와서 코를 쎄게 풀었다.

핸드폰을 쥐고 글 밑에 댓글을 단 사람들의 메세지를 읽었다. 그중에 한 사람은 4살된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이 영상을 검색해 틀어주다가 이 댓글을 봤다면서, 아직 어린 딸을 두고 떠났을 엄마의 맘을 엄마인 자신이 잠시 생각해도 너무 마음이 쓰리다고, 꼭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말을 전했다. 어느새 나는 오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혼자 있는 빈 집이 울릴 정도로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정확히 8년 전에. 나는 이렇게 울었어야 했다. 나는 불쌍했다. 사람들이 나를 가여워했던 것은 정말 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얼굴을 씻겨낼 정도로 울면서 아프고도 상쾌했다. 어떤 짚고 넘어가야 할, 해야 할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고 내가 그 시간에 전혀 나를 보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때에는 또 내가 나를 볼 수 없었다는 것 또한 이해가 됐다, 그래 비로소야.

밤새 그렇게 울고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이 깼을 때 눈이 아주 무거웠다. 눈이 무거운 김에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아예 눈을 뜨지 말자, 월요일을 맞이할 준비가 나는 아직 안 되었다. 다시 울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상상했다. 기쁜 일 하나 없이 혼자 붕 떠서,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지난 7년간 시간을 보내던 방식처럼, 아주 익숙하게 또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든 살겠다고 살아가는 모습이 어쩐지 스스로 역겹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또 눈을 똑바로 뜨고는 내가 살아있는 걸 어쩌겠어, 나는 살아있고 살 거야! 누군가에게 말을 하듯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외출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이렇게 멀리 나온 것은. 몇 달 만인 것 같았다. 사실은 길어야 불과 몇 주일일 뿐인데, 어제 하루가 유독 길었고 내가 다시 지옥에 떨어져 버린 것 같았다. 따듯한 빛과 9월의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을 탔다. 푸른 풍경 이어진 길 따라 버스로 지나가는 데도 전혀 주변이 눈에 담기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무언가가 시작인 건가, 그 지긋지긋한 권태와 벗어가고 싶어 발버둥 치는 삶, 발버둥뿐인 삶을 살게 되는 건가 생각하며 더 가라앉았다. 이동과 사람의 변화도 나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지난한 시간을 버티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이 하루를 지배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서로를 놀리며 깔깔 웃고,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나는 그랬다.

오늘의 수업에서 시간에 관한 두 가지 관념을 배웠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고정적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반짝하고 강하게 인식이 되는 주관적인 시간. 어떠한 삶의 시간은 현재까지도 삶에 깊숙이 침투한다. 나는 내가 카이로스 시간에 지배당해버렸다고,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벗어나고 싶고, 새로 태어나고 싶었던 오늘까지도. 친구들과 각자의 카이로스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해서 나는 나한테 사로잡혀 있었다. 머릿속에서 어떤 문장들과 말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실 속에서 주고받는 어떤 말들에 나는 샘이 터지듯 눈물을 흘렸다. 주변을 아랑곳 않고.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어렵게 꺼내서 해야 하는 말들을 겨우 늘여 놓았다. 그리고 또 어떤 위로의 말을,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사실 위로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조금씩 이제 나에게 쐬는 빛을 받을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했다.

선생님과 북한산 계곡길을 따라 저녁 산책을 했다. 조심스럽게 몇 가지의 질문들을 더 하셨고 나는 편하게 대답했다. 인적이 드문 길, 마스크를 내리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걸으면서 내 글들을 들여놓을 장소에 관한 새로운 이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빛이나, 시간이 들어간 짧은 문장을 어렴풋하게 떠올렸다. 언제나 이름을 짓는 건 제일 어려운 시작이었다. 핑계이기도 했다. 이름을 짓지 못했으니까 나는 시작할 수 없어, 하고 말아 버리는. 대화를 나누면서 선생님은 내게 신화 속 여신 '아르테미스' 얘기를 들려주었다. 샘물에서 님프와 목욕을 하다 자신의 벗은 몸을 본 악타이온에게 바로 사슴이 되는 저주를 내려버리는 이야기였다. 참지 않는 그의 꼿꼿함, 그의 숭고함, 그의 거침없는 모습들이 꼭 나 같았고 꼭 내가 되고 싶은 모습들이었다. 아르테미스의 샘. 나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이름이 부여된 곳에서 나는 안으로 파고들어있던 깊은 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지상의 물이 부드럽게 곳곳으로 흘러가서 빛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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