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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Feb 07. 2021

잠만을 원하는 삶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친구가 책을 한 권 빌려줬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라는 제목의 미국 작가가 쓴 소설이다. 편안한 인상을 주는 제목과 다르게 책의 내용은 꽤나 끔찍했다. 이십 대 중반의 주인공 화자는 일 년간 동면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의미 없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매달 내는 요금을 자동이체로 돌리는 등 모든 일상적 삶을 정지한다. 의사에게 심한 불면증을 거짓으로 호소하여 약을 처방받아 끊임없이 약을 먹고 잠에 취한다. 잠만을 원하는 삶.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삶에서 오로지 잠만이, 현실을 피해 눈을 감은 세상만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아픈 상태가 나는 너무나 깊이 이해가 됐다. 그것은 또 자연스레 나의 과거의 시간들을 되짚게 했다.

주말 48시간 동안 40시간 이상을 자고, 일주일이 2-3일로 느껴지게 살았던 나의 오랜 시간들. 지루함 뿐이라 여겼지만 실상은 고통이 가득했던 그 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때때로 현재 진행형이 되기도 한다. 이번 주가 그랬다. 선명한 월요일과 화요일, 빛으로 한 주의 앞을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들어온 어떤 순간, 다시 어둠이 일었다. 가린 기운을 걷어내고자 열심히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고 말아 버리는 나의 습관적인 행동이 있는데, 집에 들어와 몸이 편해지기만 하면 으레 그랬다. 단순히 게으르기 때문이야,라고 넘어가기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어’의 상태여서 몸을 꼼짝하기가 힘들다. ‘무’의 상태, 정지의 상태에 대하여 나는 너무 알고 있다.

나에게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내가 쓴 소설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약 사오 년 전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갑자기 엄마가 죽어서 방황하는 이십 대 여자의 이야기로 이것은 나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나’에게 엄마의 죽음은 세계의 붕괴와도 같았다. 때문에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유일하게 의지를 하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어딘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는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소위 예술하는 한남으로 불륜이나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무엇보다 관계를 할 때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느끼는 ‘나’는 그의 집에 머무르며 며칠을, 몇 주를, 몇 달을 지낸다. 더 깊은 절망의 구덩이로 스스로를 몰아넣는지도 모른 채로.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술김에 그가 던진 한 마디에 머리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듯 충격을 먹는 ‘나’는 그의 집에서 나와 원래 살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한 물건을 보고 잊혀 있던 어떤 기억, 아버지의 불륜에 대한 정황이 조각조각 맞춰지듯 되살아나 다시 집 밖으로 도망치듯 뛰어나간다.

먼 나라에서,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한 여성이 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아프게 묻어둔, 제목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한 나의 첫 소설이 생각났다. 비슷한 이야기의 흐름에 나는 자꾸만 자꾸만 이 이름조차 생소하고 부르기도 어려운, ‘오테사 모시페그’라는 작가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는 사실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를, 끝끝내 완성하고 세상에 발표한 그 용기에 나는 나에게도 ‘때’가 왔음을 느꼈다. 올해 내내 다짐에 다짐을 한, “나는 글을 쓸 거야. 글을 쓰는 사람을 하고 싶어, 우선은.” 이 말을 실행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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