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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Sep 17. 2021

원자의 나

봉합의 시간

  내가 있다. 무리 속에서 우뚝 .  끊어진  고개를 갸우뚱하고  단절된 내가 있다. 나의 주변으로 친구들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  안에 있는 나는 때로 머리가 절단되어 지상을 쉴 새 없이 맘껏 떠돌다 나의 신체로 돌아온다. 어떨 때는 나의 영혼이 정처 없이 끝없는 너머로 나아가다 길을 잃고 다시 복귀한다. 끊어질  끊어지지 않고 결국에는 하나로 뭉쳐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내가 있다.

  공동체의 한문을 풀어보면 한 가지 공(共), 무리 동(同), 몸체(體)를 쓴다. 한 가지의 형상을 이룬 것. 하나의 개체. (요즘 쓰는 단어의 한문을 풀어서 찾아보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사용하는 언어의 명확한 뜻을 모르고, 언어의 이전 모습이랄지,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을지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사용한다. 언어를 비롯하여 수많은 것들을 그냥 그렇게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를 조심하고자 한다. 인식하려고 한다) 공동체는 공통된 도덕관념을 지키려고 하는 무리, 라고 스스로 정의 내렸다. 공통의 가치관과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함께하는 집단. 결속력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는 그룹.

  그러니까 나는 그 어떠한 것에도 속할 수 없다고, 원치 않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수업을 듣고 쓴 메모 종이 조각을 한 데로 모으고, 알 수 없는 낙서로 가득한 글을 보면서, 쏟아지는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이제껏 내가 그렇다고 알고 있던 하나의 개념이 실은 다를 수도 있지라고 돌연 선회했다. 그러니까 공동체도 사실은 어떤 순리를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그걸 이후에 공동체라는 언어를 만들어 부르고, 자연스럽게 한대 뭉친 것이겠구나, 식물이 서로 섞여 숲을 이루고, 때로는 곰팡이조차 뿌리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처럼, 양분을 뺏어가는 잡초 같은 애를 떨쳐내지 않고도 살아가는 것처럼, 엉킨 뿌리를 풀어내지 않고 엉켜서 더 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사람이 모이는 것도, 모여 사는 것 또한 자연의 현상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돌아섰다.

  그리고 내가 부정하고 있는 것들을 보기로 했다. 제일 선두로 있는 건, 사실 나에 대한 부정이다.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지만, 어쩐지 그 시작점에 확실하게 영향을 준 것은 가족이 붕괴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나는 가족의 붕괴를 1초 단위로 보면서, 환경의 격변을 몸으로 느꼈다. 그 작은 공동체가 무너져가자 더 작고 나약한 나 또한 그 속에서, 암 덩어리 같이 커다란 콘크리트에 눌린 것처럼 짓뭉개져 있었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억압된 몸이 되자 나는 나의 몸을 스스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뻐끔거리며 절단된 머리가 하릴없이 공중에 떠다녔다. 가족의 붕괴가 나의 붕괴로 이어진 셈이다.  



  프랙탈 우주론에 따르면 사람과 우주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프랙탈 우주론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를 하나의 입자라고 보고, 그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입자들 속에 또 다른 무한한 우주가 재현되고 있다는 이론이다. 눈 안에 있는 홍채가 성운과 비슷하게 생겼고, 인간의 신경 세포, 뉴런이 우주 거대 구조와 흡사하며, 세포의 분열 과정이 별의 죽음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예를 제시한다. 또한 원자 내부의 모습은 우주의 모습과 닮았고 인간은 원자들의 집합체이며 우주 또한 무수한 원자들의 집합체이다. 이는 곧 모든 만물은 얽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밤하늘을 뚫어져라 보다가 별똥별을 봤다. 다급하게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유성은 우주의 먼지가 대기로 들어오면서 빚어내는 마찰로 불타는 현상에 불과한데, 별똥별을 보며, 우주의 기운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위해 빛을 내고 있다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어버린다. 가끔 우주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믿음을 가진다. 우주의 힘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믿음의 속성은 맹목적인 것도 있지만 자연에 대해서만은 직관의 영역을 수반한다. 영원한 것은 하늘과 우주뿐, 그것은 영원히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내 마음은 늘 새롭게 한층 더 감탄과 경외감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에 있는 도덕 법칙이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하늘’에 대한 묘사를 한 구절이다. 왜 하늘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숭고하게 바라보면서 내 안의 것들은,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그렇지가 못한 지를 잠시 고민해봤다. 끊어져 있는 나를 하나로 인식하고, 그리고 나의 한계는 우주적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언제나 답답하게 누르고 있던 감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영원한 하늘처럼 영원한 문제로. 얼굴 없는 영원이 내게 속삭였다. 아파하면서 하나하나 나를 봉합해 나가자고, 이제는 그럴 수 있도록, 별똥별이 내게 응원의 몸부림을 전해준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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