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쳐가던 도시에서 잊지 못할 곳이 되어가는 과정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255 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위치한 Tier 2 도시 (인구 50만 이상 100만 미만의 도시)인 데라둔은 우타라칸트주의 수도이다. 세계 요가의 중심 도시로 알려진 리시케시에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곳이지만 유명 관광지는 아니기에 트레킹 관광객들만 잠시 스쳐가는 곳.
나도 길어 봤자 트랙킹 시작 전 이틀, 트랙킹 이후 샤워하고 쉬기 위해 하루, 총 삼 박 정도만 생각한 스쳐가는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변수가 많은 법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벌써 데라둔 병원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도 7일 차가 되었다.
10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서 부랴 부랴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을 때만 해도 인대 부분 파열정도라고 생각해서인지, 엑스레이 실에서 골절이라는 진단을 듣고 바로 눈물이 났다. 앞으로 몇 개월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건지 걱정이 앞섰고 한 순간의 불찰을 저지른 내가 미워졌고 트랙킹을 가자고 한 남자친구, 서둘러 뛰어내려 간 가이드 모두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해지는 것은 나에 대한 자책을 멈추는 것보단 쉬웠던 것 같다.
엑스레이 촬영 뒤 정형외과 의사와 상담을 하기 전엔 그래도 비수술로 가능한 수준이란 기대를 했고 의사와 상담 이후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군데도 아닌 두 군데 골절, 수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 발목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을 해 주셨고,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강요하시진 않았다. 인도에서 영어 가능 인구가 많긴 해도 힌디어를 못하면 언어 장벽도 크고, 살아보지도 않은 생소한 곳에서 수술을 해야 하나 고민이 들어 바로 결정하진 못했고약만 받아 들고 나왔다.
이런저런 인터넷 검색 및 발목 골절 후기 등을 보면서 수술을 미루면 회복도 미뤄진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나도 수술 후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 다음날 다시 담당의사 상담 후 입원을 하고 하루 뒤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엔 관광업에 종사하는 인도 사람들의 부풀려진 거짓말과 아무 말 없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인도사람들에게 지쳐있었던 나였는데 병원 생활 일주일차가 되니, 보통의 인도 사람들이 참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중이다.
인도에서 병원생활은 어딜 가나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진실이구나 하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는 경험이다.
앞으로 거쳐야 할 고통 및 재활에 대한 걱정은 당겨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11시에 오기로 한 물리치료사가 몇 번의 문의 끝에 결국 14시에 도착을 했을 때 화도 나고 혼자 병원 생활을 하는 나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 나와 함께 울어준 Kalpna (상상이라는 의미) 간호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칼 파나의 눈물을 위로해 주려면 내가 더 강해져야 했고 난 다시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퇴근 후에도 쪽지로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여동생처럼 대해달라고 얘기해 준 칼 파나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고 이런 고마움을 어떻게 다 전달할 수 있을지!
담당의도 아니면서 매일매일 내 병실을 방문해 주는 Satya 의사 선생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녀는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유학 초기 두유가 너무 싫었으나, 나중엔 추운 겨울철 따뜻한 두유를 스스로 찾아서 사 마실 정도가 되었던 얘기를
하면서 지금은 중국 생활이 그리울 때가 많다고 했다.
나에게도 언젠가 인도 병원생활을 인생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모험담 및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하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늘 병원 점심밥 사진은 덤으로 - 골절 수술 이후 입원이라 점심으로 달걀 2개가 추가가 되어 나오고, 탄수화물은
줄여줘도 된다고 했지만 여전히 밥 한 접시, 인도식 빵
로티도 2개씩 받고 있다. 병원자체가 채식 병원이라 고기메뉴는 없는 게,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 나에겐 더 맞는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