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일용 Jun 10. 2024

[홍시생각 22] 초3학생이 교감 선생님 뺨을 때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 교감 선생님 뺨 때려"

어쩌다 TV 뉴스를 보고 있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만드는 자막이 떴다.

즉시 검색을 해봤더니 기사가 줄줄이 나왔다. 

영상 뉴스도 이 매체, 저 매체 다 봤던 것 같다. '폭행 현장'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꼬마 애가 어른의 뺨을, 초등학생이 선생님 뺨을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찰싹찰싹 때리는 게

마치 영화 속 가공의 한 장면 같았다. 서로 잘 아는 어른과 어린애가 좀 심한 장난을 치고 있는 듯도 했다.  

뺨때리기뿐만이 아니었다. 

"XXX"라고 욕설을 퍼붓고, 가방을 휘두르고, 팔뚝을 깨물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인가. 동방예의지국(東邦禮儀之國)을 한자로 쓸 줄 아는 세대에 속한 나에게는 말 그대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5월 3일 오전  '양반 도시' 전주의 한 초등학교 복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바탕 교실 안에서 급우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담임 선생님한테 행패를 부리고서는

제 마음대로 집에 가겠다며 교실 밖으로 나왔다가 거듭 무단 조퇴를 만류하는 교감 선생님한테

또 저런 짓을 한 것이다. 


이 학생은 어머니와 함께 다시 학교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사과는커녕 담임 선생님 팔뚝을 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그 에미에 그 자식이라고 할밖에.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 몇 번씩이나 전학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의무교육 기간에는 퇴학이 안 되고, 달리  어찌해 볼 수가 없으니 

폭탄 돌리기 식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버린 것이다. 


학교측에서는 학부모에게 몇번씩이나 치료를 권유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교사들이 생각해 낸 고육지책은, 통제 불능 현장을 촬영한 확실한 증거물로써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로 학부모를 고발, 학생이 강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던 듯 싶다. 교감 선생님이 뒷짐을 진 채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얻어맞고 있는데 동료 교사가 아무런 제지도 없이 그저 촬영만 하게 된 연유로 짐작된다. 


이 학생은 10일간 등교 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 전북도 교육감이 나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니 앞으로 귀추를 지켜 볼 일이다. 


많은 매체가 '교권 추락'을 이 패륜적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제정신 아닌, 비정상인, 정상이 아닌  어린 초등학생에게 '교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사건은 매사 그렇듯 며칠 지나자 냄비 식듯 금방 잠잠해져버렸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학교, 교사, 학생, 뺨때리기 네 단어가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왜 그럴까.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아픈 상처가 여전히 나를 놔주질 않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한 국민학교(초등학교) 오후 수업시간. 막 점심을 먹고 난 나른한 5교시였다. 옆 짝꿍이 자꾸만 장난을 걸어왔다. 칠판에 판서를 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뒤돌아 보며 "조용히 해"라고 엄하게 주의를 주셨다. 억울한 마음에 "제가 안 그랬는데요" 했더니 교단으로 불러내 다짜고짜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솥뚜껑만한 손으로 얻어맞은 조그마한 체구는 비칠비칠거리다 저만큼 가서 나뒹그러지고, 다시 일어서면 또 얻어맞길 몇 차례 반복했다. 

선생님께서는 "왜 싸전거리에 쌀집이 모여 있다냐? 사람은 혼자 사는 것 아니다" 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주고는 폭행을 멈추셨다.  


그 해 추석 때 어머니께서는 청주 댓병짜리 하나를 쥐어주면서 선생님 댁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선생님을 무진장 싫어하는지 어쩌는지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는 그저 선생님께 당연한 예의 차림으로 심부름을 시키신 것이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발걸음으로 댁을 찾아갔다. 갖다 드리자마자 바람으로 쒱하니 돌아서 달음박질 쳤다.  


50여년 전 겪은 일이다. 선생님께서 '저 혼자 생각만 하고, 이기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주신 것을 진정으로 고맙게 여긴다. 다만, 왜 그런 식으로 가르치셔야 했는지 지금도 서운한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그 당시에 느꼈던 것은, 스승의 회초리에 감춰진 애정이 아니라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내뿜는 공포감이었다.  


학생이 선생님께 폭력을 행사하는 게 교권 추락 때문은 아니다. 반대로 선생님께서 학생을 때린다는 게 교권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자기 자식이 잘못했는데 사죄는커녕 오히려 선생님한테 폭력을 행사하는 건, 교권과 상관없이 그냥 잘못한 짓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생님께 예의를 차려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초등학교 3년생이 선생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기까지 한 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교권 추락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지는 않다. 

이번 사건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이상 행위, 달리 표현하면 미친 짓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보는 게 아니다. 

약간 과장해 말한다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최고 지도자가 비정상적인 짓을 하는 걸  한두 번 봐 오지 않았다. 

어느 새 어린애에게까지 전염됐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은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홍시생각 21] 피바람 부르는 미친 정권, 탄핵이 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